일본 정부가 약 104조원을 투입해 엔화 방어에 나섰지만 달러·엔 환율이 다시 160엔 수준에 근접하면서 시장 불안이 커지고 있다. 엔화 가치 하락과 국채 가격 하락(금리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이른바 '재팬 셀링(Japan Selling)' 우려도 확산되는 모습이다.
2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달러·엔 환율은 장중 159.5엔까지 상승하며 일본 정부가 사실상 방어선으로 인식하는 160엔에 바짝 다가섰다. 환율은 지난 4월 말 장중 160.34엔까지 치솟은 뒤 일본 외환당국의 대규모 시장 개입으로 155엔 수준까지 하락했지만 한 달여 만에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4월 28일부터 5월 27일까지 약 11조7349억엔(약 737억 달러)을 외환시장에 투입해 엔화 방어에 나섰다. 이는 한국 외환보유액의 약 17%에 달하는 규모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막대한 자금 투입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다시 개입 직전 수준으로 상승하면서 정책 효과가 제한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확대 정책도 엔화 약세 요인으로 지목된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최근 물가 상승과 에너지 비용 부담에 대응하기 위해 약 3조엔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추진하고 있다. 유류비와 공공요금 지원 확대 등이 주요 내용이다.
시장에서는 추가 재정지출이 국채 발행 확대 우려로 이어지면서 엔화 가치 하락 압력을 높이고 있다고 분석한다.
박상현 아이엠증권 연구원은 "고유가에 취약한 일본 경제 구조에서 공격적인 재정 확대는 국채 공급 증가 우려를 키우고 있다"며 "이는 엔화 약세를 더욱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무역수지 악화도 엔화에 부담을 주고 있다. 일본은 원유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여서 중동 정세 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엔화 약세 압력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일본은행(BOJ)이 이달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엔화 강세 전환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현재 일본 정책금리는 연 0.75% 수준이며, 시장이 예상하는 추가 인상 폭은 0.25%포인트 정도다. 인상 이후에도 정책금리는 1% 수준에 머물게 된다.
반면 미국 기준금리는 연 3.50~3.75% 수준으로 일본과의 금리 격차가 여전히 2.5%포인트 이상 벌어져 있다.
크리스 터너 ING 글로벌시장 책임자는 "엔화 강세로 흐름이 바뀌려면 일본 금리가 내년 1.5% 이상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돼야 한다"며 "현재 정치·재정 여건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시나리오"라고 평가했다.
그는 "향후 몇 달 동안 달러·엔 환율이 160엔 부근에서 움직이거나 162~163엔 수준까지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시장에서는 엔화 약세와 함께 일본 국채시장 불안에도 주목하고 있다.
최근 한 달 동안 일본 국채금리는 주요국 가운데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일본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한 달 새 약 7% 상승했고, 30년 만기 초장기 국채금리는 5% 이상 급등했다.
같은 기간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약 2%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상승 폭이 훨씬 크다.
국채금리 상승은 채권 가격 하락을 의미한다. 엔화 가치 하락과 국채 가격 하락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일본 자산에 대한 투자심리가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카타야 마사쓰키 일본 재무상도 최근 기자회견에서 "일본 국채시장의 변동성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밝히며 시장 불안에 대한 경계감을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중동 전쟁 장기화와 미국의 고금리 기조가 이어질 경우 일본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환율 방어를 위한 추가 시장 개입에도 불구하고 엔화 약세가 지속될 경우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의 정책 부담이 한층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폴리뉴스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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