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대한민국에는 육지 전력망이 닿지 않는 섬의 불을 지키는 이들이 있다. 백령도와 울릉도, 연평도부터 남해안 작은 섬들까지 전국 도서지역 발전소 노동자들은 24시간 현장을 지키며 주민들의 삶과 국가 전력망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머무는 곳은 엔진실 옆 컨테이너 숙소였다. 현장에서는 인력 부족, 노후 설비 문제가 수년째 반복되고 있었다.
섬에서는 별도의 발전시설을 통해 전기를 자체 생산·공급한다. 울릉도와 백령도, 연평도 같은 접경 도서지역부터 남해안 소규모 섬까지 전국 60여개 섬의 전력 공급이 이런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른바 ‘도서 발전’으로 불리는 이 사업은 국가 필수 공공 전력 사업으로 꼽힌다. 의료시설과 통신망, 상하수도 시설은 물론 군사시설 운영까지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방도 없고
화장실도 없고
하지만 정작 섬을 밝히는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섬 발전소 노동자들의 숙소 상태는 낙후됐다. ‘독거도 발전소’도 그중 한 곳이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숙소는 발전소 내부에 설치된 컨테이너다.
사택이 마련되지 않아 임시로 설치한 공간이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이곳에서 수년째 생활하고 있다. 컨테이너 내부에는 주방도, 화장실도 없었다. 바로 옆 엔진실에서 발생하는 소음 때문에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기 어렵다는 게 노동자들의 설명이다. 설치된 지 오래돼 곳곳에 녹이 슬었고, 천장 누수 문제도 반복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섬 지역 발전소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득량도 발전소’와 ‘성남도 발전소’도 역시 별도 사택 없이 발전소 내부 컨테이너를 숙소로 사용 중이었다. 이곳 역시 엔진실과 가까워 소음이 심하고, 주방과 화장실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평도 발전소’의 경우에는 더 심각했다. 숙소가 엔진이 설치된 발전동 내부에 마련돼있다. 엔진실 바로 아래 공간에서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는 구조다.
안전 문제도 심각했다. 현장 노동자들에 따르면 일부 발전소에서는 식수 필터를 한 달만 사용해도 오염이 심해 음용이 어려운 수준이라고 한다. “일부 사택은 누수로 인해 물을 받아놓고 생활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현장에서는 인력 문제와 함께 설비 노후화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일부 발전소에서는 연료탱크와 내부 설비에 녹이 심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엔진실 누수나 누전 우려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 백령도 발전소의 경우 엔진 누유가 발생해도 복구 작업 승인이 늦어져 대응이 지연되기도 했다.
곰팡이 가득·엔진실 소음 속 휴식
오염된 물 마시며 외로운 1인 생활
노동자들은 “엔진실 누수로 누전이나 정전 위험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백령도와 같은 접경지역 발전소는 단순 지방 시설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도 연결된 곳”이라며 “현장 상황은 국가 필수 전력 인프라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하다”고 전했다.
노동자들은 이 상황의 배경으로 현재 도서 발전 운영 구조를 지적했다. 도서발전사업은 ‘농어촌 전기공급사업 촉진법’에 따라 운영되는 국가 정책 사업으로,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통해 지원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현재 구조상 한전이 전력 판매 손실 일부를 부담하고 있어 인력 투자나 설비 투자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현장 노동자들은 “도서 발전은 단순 수익사업이 아니라 국가 필수 공공 전력 사업”이라며 “비용 논리로만 접근할 경우, 결국 인력 부족과 설비 노후화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도서 발전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로 인력 부족 문제를 꼽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현재 현장 인력은 정원 대비 8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부족한 인원을 기존 근무자들이 추가 근무 형태로 메우며 현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상당수 도서 발전소는 최소 인력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고, 일부 현장에서는 야간 시간대 1인 근무 체계까지 유지되고 있었다.
도서 발전 현장은 4조 교대 형태로 운영된다. 각 교대 시간마다 근무자 1명이 8시간씩 발전소 운영을 맡는 구조다. 주간에는 관리자가 일부 현장에 배치되지만 야간에는 사실상 근무자 혼자 발전설비를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도서 발전 업무는 단순 시설 관리와는 성격이 다르다. 육지 전력망이 연결되지 않은 섬에서는 발전소가 멈출 경우 곧바로 정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점에서다. 실제로 도서지역에서는 전력 공급이 끊기면 의료시설과 통신망, 상하수도 시설 운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식수는 오염
설비 노후화
노동자들은 신규 인력 이탈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 노동자는 “근무 환경이나 처우가 워낙 열악하다 보니 새로 입사한 인력이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나가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남아 있는 인력들이 초과근무를 반복하며 버티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인력 부족 문제가 심화된 건 한국전력공사 자회사인 ‘한전MCS’ 전환 이후다. 노동자들은 현재 운영 구조 변화 과정에서 현장 인력난과 처우 문제가 더욱 악화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도서발전사업은 원래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가 직접 운영하던 사업이다.
한전은 1990년대 초반까지 울릉도 등 도서지역 발전소를 직접 운영해 왔다. 그러나 섬 지역 근무를 기피하는 직원들이 많아지면서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고, 이후 도서 발전 운영을 외부에 위탁하기 시작했다.
이후 한전은 퇴직자 단체인 한국전력전우회가 100% 출자한 업체인 JBC와 수의계약을 맺고 전국 도서지역 발전소 운영을 맡겼다. JBC는 1996년부터 울릉도와 백령도 등 전국 60여개 섬 지역에서 발전설비 운영과 배전시설 유지·관리 업무를 수행해 왔다.
그러나 도서 발전 노동자들은 “실제 현장에서는 한전의 지휘·감독 아래 업무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현장에서는 한전이 제작한 업무지침서를 사용했고, 업무 보고와 설비 운영 과정에서도 한전과 수시로 연락하며 업무를 수행해 왔다”고 했다.
이에 도서 발전 노동자들은 현재 운영 구조가 사실상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며 지난 2020년 한전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1심과 2심 모두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광주지방법원은 2023년 6월, 도서 발전 노동자들이 형식상으로는 JBC 소속이지만, 실제 업무 수행 방식은 한전의 지휘·감독 아래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불법 파견
인정됐지만…
재판부는 한전이 업무 지침을 제공하고 관리·감독을 통해 노동자들의 업무 수행에 직접 개입했다고 봤다. 이후 지난 1월 열린 항소심에서도 광주고등법원은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사건 용역계약은 일부 도급계약 성격에 부합하는 특성들도 존재하지만 근로자파견계약의 성격이 더욱 강하다”고 밝혔다.
또 “도서지역에서 근무할 인력 확보를 주된 목적으로 체결된 용역계약”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노동자들이 한전이 제작한 업무 지침서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고, 한전 직원들과 수시로 업무 연락과 보고를 주고받은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또 한전이 JBC 노동자들을 직접 교육·훈련했고, 근태와 인력 운영에도 관여했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한전은 1심 판결 이후에도 직접고용 대신 자회사 전환 방안을 추진했다. 한전은 도서발전사업을 기존 JBC가 아닌 자회사인 한전MCS로 이관하는 방안을 검토했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취하’와 ‘부제소 확약서 제출’을 요구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한전은 한전MCS로의 전환 과정에서 임금 총액 기준 4% 인상과 처우 개선, 고용 안정 등을 약속했고, 당시 다수의 노동자들은 도서 주민 불편 최소화, 국가 공공 전력 유지, 현장 혼란 방지를 위해 현장을 지키며 한전MCS 전환에 동의했다.
그러나 다른 노동자들은 법원이 이미 한전 노동자 지위를 인정했는데 자회사로 이동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반발했다. 노동자들은 특히 소송 취하를 조건으로 내건 점에 대해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갈등은 결국 집단해고 사태로 이어졌다. 한전은 지난 2024년 JBC와의 위탁계약을 종료했고, 소송을 유지한 노동자들은 같은 해 8월 해고 통보를 받았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이후 생계 문제와 건강 악화 등을 호소하며 복직 투쟁을 이어갔다. 한전과 노동자들의 갈등은 이후 장기화됐다.
노동자들은 해고 이후 생계 악화와 건강 문제를 호소했다. 도서 발전 노동자들이 속한 발전노조가 지난해 진행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해고 노동자들의 소득은 해고 이전 대비 23.1% 수준까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60%는 해고 이후 빚이 늘었다고 답했으며,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식대부터 줄이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정전 막으려 전환 선택했는데…”
도서 발전 일선 여전히 ‘인력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노동자들도 많아졌다. 노조 측 조사에서는 응답자 가운데 상당수가 불면증과 우울 증상을 호소했으며,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의심된다는 결과도 포함됐다. 노동자들은 장기간 이어진 해고 상태와 생계 불안, 복직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실제 해고 노동자 가운데 울릉도 발전소에서 근무했던 한 조합원은 해고 이후 생활고와 스트레스를 호소하다 지난해 4월 숨졌다. 노조 측은 해고 이후 정신적·경제적 부담이 커졌다고 주장하며 한전에 책임 있는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한전의 도서 발전 운영 방식과 집단해고 문제가 여러 차례 언급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전을 향해 “공기업이 민간 악덕 기업주보다 못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노동계와 정치권의 압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전은 지난 2월 결국 상고를 포기했다. 한전은 2심 판결 이후 “판결을 수용하고 상고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직접고용 절차에 착수했다. 이에 따라 1차 소송 원고 126명에 대해서는 근로계약 체결 절차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전MCS 전환을 선택했던 노동자들은 직접고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현재 현장에서는 이들을 중심으로 처우 문제와 형평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노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전환 과정에서 약속했던 임금 총액 기준 4% 인상과 처우 개선, 고용 안정 등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실제 현장에서는 급여 감소와 각종 수당 미반영, 역할·직무급 미지급 문제가 이어졌다고 한다. 여기에 인력 부족 문제까지 겹치면서 기존 근무자들의 업무 부담도 더 커졌다는 주장이다. 현장 관계자는 “소송 대신 현장을 지킨 노동자들이 오히려 힘들어진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도서 주민들에게 돌아갔다. 노동자들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한전MCS 전환 이후 도서지역 고장·정전 발생 건수는 이전 3개년 평균 74건에서 125건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전설비 고장과 배전 계통 이상 모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갈수록
처우 악화
주민들은 정전이 발생할 때마다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어야 했고, 현장 노동자들 역시 늘어난 정비와 긴급 출동 업무를 감당해야 했다. 노동자들은 “도서 발전은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 국가 전력망을 책임지는 공공 인프라”라며 “현장의 문제를 방치할 경우 결국 그 피해는 주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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