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O가 바꾸는 위험화물의 법칙… 한국 산업계 '8개의 청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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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O가 바꾸는 위험화물의 법칙… 한국 산업계 '8개의 청구서'

뉴스로드 2026-06-02 13:00:2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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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I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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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해사기구(IMO)가 1일(현지시간) 발표한 HNS(유해·위험물질) 협약 발효를 두고 산업계 전반의 비용 증가만 거론하는 것은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 해석이다. 협약은 모두에게 같은 부담을 지우지 않는다. 해운사와 조선사, 에너지 기업, 보험사가 받게 될 영향은 서로 다르다. 한국이 이 변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한국은 세계 3위 LNG 수입국이자 LNG선·LPG선·화학제품운반선 건조를 주도하는 나라다. 위험화물의 해상 운송 확대는 한국 산업의 수익과 직결된다. 2027년 HNS 협약 발효는 새로운 규제의 시작이 아니다. 해운·조선·에너지·보험 산업의 책임 구조와 보상 체계, 수익 구조가 함께 재편되는 사건이다. <뉴스로드>는 HNS 협약이 국내 주요 기업과 기관에 가져올 기회와 부담을 각각 살펴봤다.

삼성중공업 거제 조선소 전경 [사진=삼성중공업]
삼성중공업 거제 조선소 전경 [사진=삼성중공업]

△조선 빅3, 안전이 가격이 된다

HNS 협약이 가져올 가장 큰 변화는 안전의 가격화다. 위험화물 사고에 대한 선주의 책임이 무거워질수록 화주는 단순히 운임이 싼 선박보다 사고 이력과 안전성이 검증된 선박에 더 높은 값을 지불하게 된다. 가격 경쟁보다 신뢰 경쟁에 강한 한국 조선업에는 유리한 변화다.

본지가 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오션의 공인된 1분기 분기보고서를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협약의 수혜 가능성은 갈렸다. 가장 분산된 사업 구조를 가진 곳은 HD한국조선해양이다. 1분기 매출의 82.3%가 조선 부문에서 발생했지만 엔진기계(8.8%), 해양플랜트(5.6%), 그린에너지(2.0%) 등 비조선 사업 비중도 적지 않다. LNG선이나 LPG선 수요 확대의 수혜를 받을 수 있지만 특정 선종에 대한 의존도는 상대적으로 낮다.

삼성중공업은 구조가 다르다. 조선·해양 부문 매출이 전체의 94.7%를 차지했다. 사업 포트폴리오가 선박 건조에 집중된 만큼 HNS 협약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다. 특히 삼성중공업은 LNG선과 셔틀탱커 등 고부가가치 선종 비중이 높다. 위험화물 운송에서 안전 기준이 강화될수록 기술력과 운항 신뢰성이 선가에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한화오션의 노출도는 더욱 크다. LNG선과 LPG선, 컨테이너선, 원유운반선을 포함한 상선 부문 매출 비중은 2024년 76.4%에서 2025년 77.3%, 올해 1분기에는 82.9%까지 높아졌다. 협약이 안전 설계와 사고 대응 능력을 선가에 반영하는 시장을 만든다면 한화오션이 얻는 수혜도 커질 수밖에 없다.

한화오션은 다른 강점도 갖고 있다. 미국 필리조선소를 보유하고 있어 협약 가입국 시장과 북미 조선 시장을 동시에 겨냥할 수 있다. 캐나다 잠수함 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앞두고 독일 TKMS와 경쟁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안전 규제 강화와 현지 건조 역량을 결합할 경우 협약이 만드는 새로운 시장의 수혜를 가장 크게 받을 가능성이 있다.

변수는 중국이다. 중국 후동중화를 비롯한 중국 조선소들은 LNG선 시장 점유율 확대를 노리고 있다. 그러나 책임 부담이 커질수록 화주들은 검증된 설계와 운항 실적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HNS 협약은 단순한 규제가 아니다. 안전성과 신뢰를 자산으로 쌓아온 한국 조선업의 경쟁 우위를 한층 강화하는 장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코리안리재보험/연합뉴스
코리안리재보험/연합뉴스

△HMM은 자격, 해수부는 비준… 코리안리엔 기회

HMM에 HNS 협약은 비용보다 자격의 문제다. 기존 유류오염손해배상협약(CLC)과 벙커협약처럼, 화학·가스 화물을 실은 선박이 협약 가입국 항만에 들어가려면 국가가 인증한 보험증서나 재정 보증을 갖춰야 한다. 증서가 없으면 입항 자체가 막힌다. 한국이 협약에 가입했는지와 별개로 유럽이나 캐나다 항만에 기항하는 순간 규제의 문턱 앞에 서게 된다. 다만 HMM의 주력은 컨테이너선이다. 가스선이나 화학제품운반선 전문 선사와 비교하면 직접 노출은 제한적이다.

더 큰 부담은 해양수산부에 있다. 이 문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지적됐다. 동아대 지상규 교수는 현행 해양환경관리법이 기름 유출 방제에 치우쳐 HNS 화물 사고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협약이 발효되면 화물 정의 확대, 강제보험 도입, 적용 범위 정비를 위한 법 개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도 현행 상법상 선주책임제한 제도만으로는 위험·유해물질 사고 피해자를 충분히 구제하기 어렵다며 협약 수용과 국내 입법 정비가 필요하다고 봤다.

협약 비준은 국회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법 개정도 함께 따라와야 한다. 해수부에 남은 18개월은 결정을 미룰 시간이 아니다. 협약 가입 여부, 국내법 개정, 보험증서 발급 체계, HNS 화물 통계 관리 방식을 동시에 설계해야 하는 시간이다.

국가 인증 보험의 문제는 결국 선주상호보험(P&I)과 재보험으로 이어진다. 사고당 보상 한도가 2억5000만 SDR, 현재 환율 기준 약 3억6000만달러로 설정된 만큼 HNS 위험은 발생 가능성은 낮지만 한 번 터지면 손실 규모가 큰 위험이다. 이런 위험은 한 보험사가 혼자 떠안을 수 없다. 재보험을 통해 나눠 가져야 한다.

이 지점에서 코리안리의 역할이 커진다. 코리안리는 국내 유일의 전업 재보험사다. 선체보험, 선박건조보험, 초과책임보험 등 해상보험 전반을 인수해 온 경험도 있다. HNS 협약이 발효되면 국내 선사와 보험사가 떠안을 위험을 해외 재보험시장으로 넘기거나 국내에서 일부 흡수하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관건은 데이터다. HNS 협약은 2000여 종이 넘는 위험물질을 다룬다. 물질별 사고 확률, 손해 규모, 정화 비용, 항만별 노출도에 대한 통계가 없으면 보험료를 제대로 매길 수 없다. 발효 전 18개월 안에 인수 기준과 요율 산정 능력, 재보험 분산 체계를 갖추면 코리안리는 새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반대로 준비가 늦으면 위험은 국내에 남고 가격 결정권은 해외 재보험사로 넘어갈 수 있다.

가스공사 전경/사진=연합뉴스
가스공사 전경/사진=연합뉴스

△가스공사 변수, 물량 아닌 소유권

여기서 HNS 협약의 핵심 변수가 나온다. 본지가 협약 본문 제19조를 확인한 결과 LNG는 일반 화물과 다른 분담 규칙을 따른다. 일반 화물, LPG, 기름은 화물을 받은 수취인이 HNS 기금 분담금을 낸다. 그러나 LNG 계정은 다르다. 양륙 직전 해당 화물의 소유권을 가진 자가 분담금을 부담한다. 쉽게 말해 ‘받은 자’가 아니라 ‘그 순간의 소유자’가 낸다.

한국가스공사는 이 규칙의 한가운데에 있다. 가스공사는 2024년 국내 LNG 수입량 4633만t 가운데 3410만t, 74%를 도입한 최대 수입 주체다. 하지만 가스공사의 실제 부담은 수입 물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관건은 도입 계약상 소유권이 언제 넘어오느냐다.

한국의 LNG 도입은 호주, 카타르, 미국 등과 맺은 장기계약이 중심이다. 계약 조건이 도착지 인도 방식이면 양륙 직전 소유권자가 가스공사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가스공사가 분담 주체가 된다. 반대로 본선인도 방식이면 양륙 전 소유권자가 해외 판매자일 수 있고, 이때는 부담이 해외 판매자에게 넘어간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협약은 소유자가 분담금을 내지 않을 경우 그 미납분을 LNG 수취인에게 청구할 수 있도록 한다. 계약상 부담을 해외 판매자에게 넘겼더라도 판매자가 납부하지 않으면 최종 청구서는 가스공사로 돌아올 수 있다는 뜻이다.

가스공사가 발효 전 장기계약의 소유권 이전 조건을 전수 점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규 계약과 갱신 계약에는 HNS 분담 주체, 미납 시 구상권, 납부 증빙 제출 의무를 명확히 넣어야 한다. 협약 대응은 보험 문제가 아니라 계약 문구의 문제이기도 하다.

직수입 기업들도 같은 위험을 안는다. 2024년 기준 LNG 직수입 물량은 1223만t으로 전년보다 32% 늘었고 전체 수입량의 26%를 넘었다. 직수입은 장기계약보다 단기·스팟 계약 비중이 높다. 계약마다 인도 조건과 소유권 이전 시점이 달라 분담 주체를 가리기 더 어렵다. HNS 협약 발효 이후 LNG 직수입사의 경쟁력은 단순한 구매 가격이 아니라 계약상 위험을 얼마나 정교하게 나누느냐에 따라 갈릴 수 있다.

금호석유화학그룹 여수고무2공장 /사진=금호석화
금호석유화학그룹 여수고무2공장 /사진=금호석화

△석화업계, 범용화학에 무겁고 스페셜티엔 가볍다

석유화학업계의 부담은 어떤 화물을 어느 계정으로 얼마나 인수하느냐에 따라 갈린다. HNS 협약 기금은 기름, LNG, LPG 별도 계정과 일반계정으로 나뉜다. 이 구조는 서로 다른 위험물질 사이의 교차 부담을 막기 위한 장치다. 화학물질을 인수한 기업이 LNG 사고 손해까지 떠안지 않고, LNG 수입 기업이 화학물질 사고 부담을 나눠 지지도 않는다. 한국처럼 특정 화물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는 이 분리계정 구조가 일정한 방어막이 된다.

LG화학은 기초유분부터 합성수지까지 수직계열화한 종합화학 기업이다. 협약 적용 화물을 가장 넓게 다룬다. 부담 범위는 넓지만, 분리계정 덕분에 일반계정 안에서 자사 인수 물량 비중만큼만 부담한다.

롯데케미칼은 HNS 협약상 부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큰 기업으로 꼽힌다. 범용 기초화학 중심 구조라 일반계정에 들어가는 대량 기초화물 인수 비중이 크다. 기초화학 부문의 수익성 압박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HNS 분담금 부담까지 겹칠 수 있다.

한화솔루션은 구조가 다소 복잡하다. 케미칼 부문이 여천NCC 합작사업과 연결돼 있어 HNS 협약 발효 이후 위험물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보험료와 물류비 증가 부담이 합작법인에 어떤 방식으로 반영될지가 변수로 꼽힌다. 반면 한화오션은 LNG선과 가스운반선 중심의 친환경·고안전 선박 수요 확대에 따른 수혜 가능성이 거론된다. 그룹 전체로 보면 조선 부문에는 기회가, 석유화학 부문에는 비용 요인이 동시에 발생하는 구조다.

금호석유화학은 네 회사 중 부담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편이다. 합성고무 등 스페셜티 제품 비중이 높아 대량 기초유분을 범용으로 인수하는 기업보다 일반계정 노출이 작다. HNS 협약이 같은 석유화학업계 안에서도 기업별 부담을 다르게 만드는 이유다.

[사진=IMO]
[사진=IMO]

△같은 협약, 다른 청구서

같은 협약이지만 받아드는 청구서는 모두 다르다. 조선업에는 안전 설계가 경쟁력이 되는 시장이 열린다.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처럼 가스선과 상선 비중이 높은 기업일수록 수혜의 폭도 커질 수 있다. HMM에는 비용보다 입항 자격이 중요해진다. 해양수산부는 비준 여부와 국내 법제 정비라는 과제를 동시에 안게 됐다. 코리안리에는 새로운 재보험 시장이 열리고, 한국가스공사는 LNG 특칙에 따라 장기계약의 소유권 구조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 석유화학업계 역시 범용 기초화학 비중이 높은 기업과 스페셜티 중심 기업의 부담이 달라진다. 같은 규칙이 적용되지만 결과는 같지 않다.

남은 시간은 18개월이다. HNS 협약은 발효되는 순간 갑자기 등장하는 규제가 아니다. 어떤 기업은 선박 설계를 바꿔야 하고, 어떤 기업은 계약서를 다시 써야 하며, 어떤 기관은 법을 고쳐야 한다. 각 기업과 기관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HNS 체계의 어느 계정에 속하는지, 어떤 화물을 통해 노출돼 있는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느 단계에서 책임이 연결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다. 준비의 출발점은 대응 전략이 아니라 자기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아르세니오 도밍게스 IMO 사무총장은 협약 발효 요건 충족과 관련해 "국제 책임·보상 체계의 오랜 공백을 메우는 이정표"라며 "위험화물 사고 피해자에게 공정하고 신속한 보상을 제공하고 산업계와 정부에는 법적 확실성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그 법적 확실성이 한국 산업에 새로운 기회가 될지, 또 하나의 비용이 될지는 앞으로 18개월 동안 기업과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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