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초호황이지만, 양극화 그늘 더 짙어져
(서울=연합뉴스) 윤선희 선임기자 = # 2017년 한국 무역수지 흑자는 952억 달러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슈퍼사이클 반도체 호황'의 정점이었다. 저금리 시대로 세계 교역이 활발했고, 스마트폰과 메모리가 호황을 맞아 반도체 가격이 급등했다. '반도체 하나가 나라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올해 1∼5월까지 한국 무역수지 흑자가 1천억달러를 넘어 2017년 기록한 연간 최대치(952억달러)를 반년도 안 돼 넘었다.
지난달 수출액은 작년 같은 달보다 53.2% 증가한 877억5천만달러로, 지난 3월 최대치(872억달러)를 갈아치웠다.
2017년과 비교해 규모는 작아도 수출 품목이 늘어났다. 전 세계 인공지능(AI) 투자 경쟁 속에 한국의 반도체와 서버 부품, 전력 장비, 산업용 로봇 산업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수출 전선이 반도체가 선두에서 뛰고, 화장품과 바이오, 농수산식품, 컴퓨터, 선박 등의 산업이 뒤를 받쳐주는 구조가 됐다. 중국에만 의존하던 수출 시장이 미국과 유럽, 아세안 등으로 다양해진 점도 긍정적이다.
# 코스피는 1일 8,788.38로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9천피(9,000) 기대감을 키웠다. 증시에서는 이번 반도체 호황 국면을 AI 인프라 구축에서 로봇 경제로 확장되는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다. 시장 참여자들이 로봇주에 열광하는 이유는 AI 시대가 오면 공장 자동화뿐 아니라 물류 자동화, 서비스 로봇, 휴머노이드로 이어져 관련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오는 5일 한국에 들어와 주요 대기업 회장들과 삼겹살 소주 회동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관련 기업 주가가 급등했다. 코스피는 현 국면은 2000년대 초 인터넷 인프라 구축기와 2017년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합쳐진 모습으로 보인다.
낙관적인 추세가 계속 이어지면 연간 수출 1조달러 달성도 가능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가 목표로 잡은 연간 수출은 7천400억달러이다. 국책 연구기관들은 9천억달러, 증권가에선 1조달러 돌파 가능성도 나왔다. 1조달러는 한화로 약 1천500조원에 이른다. 다만 하반기 펼쳐질 전 세계 시장 상황과 변수를 지켜봐야 한다. 지정학적 위험으로 공급망 차질이 빚어질지 주목해야 한다. 하반기에 전 세계 경기가 둔화하거나 미·중 갈등이 격화할 가능성도 수출시장 변수로 꼽힌다.
# 수출이 초호황을 보이면서 세수는 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양극화 그늘이 짙어졌다.
내수 소비재와 석유화학, 철강, 건설 등 전통적인 제조업이나 내수 중심의 중소·벤처기업들은 부진한 상황이다. 고물가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폐업하는 자영업자들도 늘고 있다.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9.92(2020=100)로 1년 전보다 3.1% 올랐다. 이는 2024년 3월(3.1%) 이후 최대 폭이다. 중동 전쟁 여파로 석유류 물가가 3년 10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오르며 물가지수를 끌어 올렸다.
2024년 기준 외부감사 기업 중에서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을 밑돈 한계기업 비중은 17.1%로 2010년 이후 가장 높다. 일부 대기업의 억대 성과급 잔치 뉴스를 지켜보는 다수의 직장인과 자영업자, 무직자들은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현재 호황이 AI 혁명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탄 소수 국가대표 대기업만의 잔치로 보일 뿐이다.
국민 모두의 지갑이 두둑해지려면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수출 품목이 더 늘어나야 한다. 현재 수출 전선에서는 전 세계 빅테크 기업들의 AI 인프라 투자 확대로 반도체가 전체 수출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 뒤를 컴퓨터 부품과 K-뷰티 등의 일부 산업이 받쳐주고 있으나, 나머지 산업은 힘을 못 쓰고 있다. 반도체 수출 비중이 절반에 가까운 지금 수출 구조에선 반대로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이 꺾이면 한국 경제가 가라앉는 것은 필연적이다. 자동차와 조선 등 전통 제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K뷰티, 바이오헬스, 방산 같은 신성장 동력을 더 키워야 한다.
수출 온기가 내수로,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에도 퍼지도록 해야 한다. 수출 대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이 국내 투자와 고용 확대로 흘러 들어가고, 대기업의 협력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지갑도 더 두껍게 해줘야 한다. 정부는 내수 활성화를 통해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이 겪는 어려움을 덜어주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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