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이예서 기자】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중심으로 국내 항공우주 산업의 지형이 변화를 맞았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미래항공 모빌리티 시장 확대를 위해 KAI와 손을 잡았고, 한화그룹은 방산·우주 분야 사업 확장을 위해 KAI 지분을 인수했다. 기업이 각자의 전문 영역을 중심으로 협력 구조를 형성한 만큼 업계에서도 항공우주 산업의 높은 진입 장벽을 돌파할 기회가 열릴 것으로 보고 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항공우주 산업 내 기업 간 협력 모델이 구체화하고 있다. KAI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현대차는 미래 항공 모빌리티 기체(AAM, Advanced Air Mobility) 개발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KAI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추진하고 있는 한화그룹은 계열사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필두로 지분을 늘려가고 있다. 현재 집계된 한화 측의 KAI 지분율은 7.22%다. 특히 한화에어로는 지분율 5% 이상 끌어올리며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변경했다.
협력 모델 구축이 초기 단계에 있지만 효과는 기대할 만하다. 당장 현대차는 AAM 사업 지연을 둘러싼 잡음을 털어내는 동시에 동력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됐다. 국내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상용화 일정 연기 등으로 미국 AAM 전문법인 슈퍼널의 리더십 공백을 겪었던 현대차는 그간 속앓이가 심했다. 조직 개편과 연구개발 중심의 내실 강화로 뒷심을 발휘했지만 사업 차질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시달려 왔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달 초 수직이착륙 전문가인 파르한 간디 박사를 슈퍼널 신임 CTO로 선임하며 분위기를 바꿨다. 여기에 KAI와 공동 개발 소식을 전하며 확실한 전환을 알렸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슈퍼널을 통해 독자 개발을 추진했지만, 결국 KAI와 협력을 강화하며 항공우주 산업의 높은 진입장벽을 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며 “현대차가 보유한 파워트레인·모빌리티 기술과 KAI의 항공 플랫폼 기술이 결합되면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화에어로는 항공 엔진·레이더·센서 등 핵심 부품과 시스템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KAI와의 역할 분담이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KAI는 기체 플랫폼을 만들고, 한화는 그 안에 들어가는 핵심 시스템과 부품을 담당하는 구조로, 양사의 역할이 항공 분야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양사의 파트너십이 강화되면 글로벌 방산·우주항공 시장에서 원팀 전략을 통한 수주 확대를 실현할 수 있다. 한화그룹의 미래 신성장 동력 발굴 경험과 선제적 투자, 해외에서의 성공 노하우를 기반으로 KAI의 수출 경쟁력 제고도 기대된다는 평가다.
뿐만 아니다. 우주 분야에서도 양사의 연결고리가 이어진다. KAI가 중·대형 위성 체계종합 역량을 보유하고 있고, 한화그룹의 또 다른 계열사 한화시스템이 초소형·소형 위성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 포트폴리오 확장 측면에서 시너지를 꾀할 수 있다.
한화그룹과 KAI는 ▲KF-21 수출 경쟁력 강화 및 해외 진출 교두보 구축 ▲국산 전투기 장착용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 개발 ▲특수작전용 헬기 성능개량 사업 제안 등 다양한 방산 분야에서 협력을 이어왔다. 이어 지난 2월 한화에어로와 KAI는 방산·우주항공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하고 미래 핵심 사업 분야에서 중장기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특히 한화의 KAI 지분 확대 배경에는 글로벌 방산 산업의 대형화 흐름에 발맞춘 전략적 행보로 해석된다. 지상 무기체계 중심의 독일 라인메탈은 최근 군함 건조 부문을 인수하고 차세대 레이저 무기 개발을 위한 합작 투자를 단행한 바 있다. 우주 주권이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해외 주요국 경쟁 기업들의 대형화·복합화 추세는 더욱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프랑스의 에어버스와 탈레스,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등 3사는 스페이스X에 대응하기 위해 우주사업을 통폐합했다. 영국의 BAE 시스템스와 미국의 노스롭그루먼그룹은 인공위성 제작 기업과 우주 발사체 기술을 보유한 회사를 각각 인수했다.
업계 관계자는 “항공우주·방산 산업은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분야인 만큼 세계적으로도 기업 간 협력 확대가 이어지고 있으며, 미국 중심의 글로벌 항공우주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내 기업들도 협력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KAI는 국내 유일의 완제기 체계종합업체로서 각 기업의 협력 거점이 되고 있다. FA-50·KF-21 등 고정익과 수리온 등 회전익을 모두 다루는 KAI의 기술력이 한화의 방산 시스템, 현대차의 전동화 역량과 각각 맞물리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항공우주는 특정 기업 하나가 모든 영역을 독점적으로 수행하기보다는 각 기업이 전문 영역을 맡아 협력과 경쟁을 병행하는 구조로 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했다.
한화와 현대차의 접근 방식은 방산과 미래 모빌리티로 뚜렷하게 갈리지만, 두 기업 모두 KAI를 핵심 협력 파트너로 삼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와 한화가 함께 움직인다기보다는 서로 다른 방향성을 가진 기업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KAI와 협력하며 항공우주 시장 접근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항공우주 산업이 높은 기술·인증·공급망 장벽을 가진 만큼 기업 간 전문성을 결합하는 생태계형 협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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