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 유성구 학하동 별밭어린이공원에 세워진 천명각 사진=한소민 소장
인류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별을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밤하늘을 밝히는 별빛 속에 신의 뜻이 있다고 믿었기에 별의 움직임을 읽으며 나라의 안위와 인간의 운명을 헤아렸지요. 그중에서도 유독 특별한 존재가 있었습니다. 제각기 움직이는 뭇별들 사이에서 변함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별, 북극성이었지요. 언제나 한 자리에서 흔들림 없이 빛나는 그 별은 길 잃은 이들에게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알려주는 최고의 길잡이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땅 어딘가에도 북극성의 신성한 기운이 내려와 주기를 꿈꾸었지요. 오래전부터 성전(星田)이라 불렸던 별밭이 바로 그 소망의 증거입니다.
북극성과 북두칠성의 기운이 내려왔다는 학하동에는 별빛이 내려앉은 언덕 별봉과 그 주변으로 별밭이라 불리는 들판이 펼쳐져 있습니다. 신라 말의 승려 도선국사는 범상치않은 이곳의 기운을 읽고서 북극성의 기운이 땅에 떨어진 추성낙지(樞星落地)의 명당이라 감탄했다지요. 또한, 특별한 공간의 가치를 알아본 선각자들은 이곳을 찾아와 한동안 머무르기도 했습니다.
천명각 내부에 있는 '별봉 유래' 소개글 사진=한소민 소장
천명각 뒷편으로 올라가면 혼상이 놓여있다. 사진=한소민 소장
조선의 대학자 우암 송시열은 마흔 중반의 나이에 이곳에 은거하며 여러 해 동안 후학들을 가르쳤습니다. 자연 속에 도가 있다고 믿었던 그에게 별봉에서 마주했던 밤하늘은 단순한 풍경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하늘의 이치를 궁리하고 나라의 나아갈 길을 찾는 영감의 터전이었을 테지요. 지금도 그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향나무가 남아 있어 그 시절을 짐작하게 합니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탄허 스님이 우암의 강학터에 자광사를 세우고 수행의 도량으로 삼았습니다. 시대는 달랐지만 세 명의 현자들은 모두 별봉이 품은 우주의 기운 속에서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을 발견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우암 송시열의 강학터에 세워진 자광사<왼쪽> 송시열의 강학터를 기념하는 성전영당지 비석과 우암이 심었다는 향나무 사진=한소민 소장
옛 사람들은 별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읽으려 했습니다. 별의 움직임을 하늘의 메시지라 여겼기에 관상감 같은 관청을 두어 별을 관측하며 국가의 운명을 점치게 했지요. 혜성의 출현이나 별빛의 변화는 하늘이 인간 세계에 보내는 특별한 징조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러한 하늘에 대한 경외는 서양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나타납니다. 최고신 제우스(로마 신화의 주피터Jupiter)는 하늘과 천둥을 다스리며 신들과 인간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절대적인 존재였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권능 속에서 자연의 질서와 우주의 조화를 보았지요. 밤하늘에서 유난히 밝게 빛나는 목성(Jupiter)이 그의 이름을 지니게 된 것도 이러한 믿음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고대 로마인들은 그 찬란한 빛 속에서 우주를 다스리는 최고신의 권위를 떠올렸을 테니까요.
동양에서는 수 많은 별들 중에서도 북극성을 특별하게 여겼습니다. 중국의 고대 천문사상에서는 북극성 주변을 황제의 궁궐인 자미원(紫微垣)이라 불렀지요. 북극성은 단순한 별이 아니라 세상의 질서와 통치의 원리를 상징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공자는 '덕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북극성이 그 자리에 있으면 뭇 별들이 거기로 모여드는 것과 같다'고도 했지요. 조선시대 조정에서도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한 사인검(四寅劍)에 북극성을 중심으로 북두칠성의 별자리를 새겨 넣어 하늘의 영험한 기운을 담고자 했지요.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사인검에 북극성을 비롯한 북두칠성 등이 새겨져있다. 사인검은 조선왕실에서 제작한 의장용 검으로 용맹한 호랑이 기운을 상징하는 인이 년월일시에 들어간 특별한 날에 제작된 검으로 벽사의 기능을 하고 있다. 사진=한소민 소장
이러한 의미들을 생각해보면 북극성이 내려앉았다는 학하동의 별봉은 더욱 신비롭고도 특별한 장소로 다가옵니다. 우주의 중심이라는 거대한 상징과 신성한 기운이 소박한 마을 안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경외감과 함께 묘한 설렘을 안겨주지요. 목성을 바라보며 신의 권능을 떠올렸던 고대인들이나, 학하동 별봉에 올라 북극성의 기운을 느끼고자 했던 옛사람들이나 그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흔들리는 현실 속에서 인간은 늘 자신을 붙들어주는 중심 하나를, 멀고도 막막하지만 언젠가는 다다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빛을 꿈꾸어왔을 테니까요.
세상의 중심과 닿아 있는 곳. 방황하는 우리에게 길을 찾아줄 신비로운 자리. 멀고도 먼 오래전 그날, 북극성과 북두칠성의 별빛이 눈부시게 내려앉았을 이곳에 오늘은 초여름 햇살이 환하게 쏟아지고 있네요.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한소민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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