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한스경제 곽호준 기자 | 자동차도 스마트폰처럼 똑똑해진 시대가 도래했다. 현대차 '더 뉴 그랜저'는 기존의 플래그십에 걸맞은 중후한 외모를 계승하되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플레오스 커넥트', 개인 맞춤형 에이전트 '글레오 AI' 등 최첨단 기술들을 양껏 갖춰 변신을 꾀했다.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기존 하드웨어 중심의 개념을 넘어 소프트웨어가 차량 성능과 기능은 물론 품질까지 제어하고 관리하는 자동차를 일컫는다. 지난 2022년 7세대 출시 이후 약 3년 만에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으로 거듭난 신형 그랜저는 SDV로 전환의 본격 시동을 건 결과물이다. 이는 단순 디자인 변경을 넘어 플레오스를 중심으로 차량의 기본적인 기능은 물론 생성형 인공지능(AI) 탑재, 편리한 사용자 경험(UX)을 집약해 현대차 미래 전략의 방향성을 제시함을 의미한다.
▲ 더 세련된 외모, 더 똑똑해진 실내
부분변경임에도 외모 변화는 꽤 크다. 기존 실루엣과 기품을 자랑하는 비율은 유지하면서 외관 디자인을 멋스럽게 다듬었다. 이번 변화의 핵심은 앞모습. 군더더기 요소는 과감하게 지우고 멀끔한 페이스를 자랑한다. 가로로 길게 뻗은 LED 주간주행등(DRL)도 테두리를 생략하고 네모반듯했던 헤드램프는 부분변경 아이오닉6처럼 길고 얇아져 간결하다. 다소 밋밋했던 라디에이터 그릴은 새로운 메시 패턴을 도입해 입체적이면서 세련돼 보인다. 덕분에 소위 "면도기 닮았다"는 오명은 벗을듯하다.
이 변화는 옆모습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앞 오버행을 15㎜ 늘려 상어 코를 형상화 한 이른바 '샤크 노즈'가 포인트. 옆에서 볼 때 차분하게 수평으로 길게 뻗은 벨트라인에서 느껴지는 기품과 샤크 노즈가 풍기는 스포티함이 절묘하게 공존한다. 이 작은 변화 하나로 자칫 밋밋해 보일 수 있는 앞·옆모습에 시선을 끄는 임팩트가 더해졌다. 지붕엔 툭 튀어나온 샤크핀 대신 히든 타입 안테나로 바꿔 루프라인이 한층 매끄럽다. 그 결과 실물은 이미지만큼 파격적이기보다는 깔끔하고 차분하다.
그래서 웬만한 외장 컬러는 무난히 소화한다. 어두운 블랙과 그레이 계열은 물론 산뜻한 화이트와도 잘 어울린다. 신규 외장 컬러인 '아티스널 버건디'는 독특하면서 가장 눈에 띈다. 전통 옻칠에서 영감을 받은 이 색감은 조명과 각도에 따라 짙은 와인빛과 브라운 톤이 교차하며 묵직한 깊이감을 드러낸다. 개인적으로는 윈도 몰딩과 엠블럼, 휠까지 검게 칠한 '블랙 잉크'가 가장 마음에 든다. 식상할 수 있는 '올 블랙'이지만 플래그십 세단만의 품격과 위엄, 절제미 등이 가장 잘 느껴진다.
내부는 대대적인 업데이트를 거쳤다. 앞좌석 인테리어와 구성은 완전변경(풀체인지)급 변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심에는 디스플레이의 배치에 있다. 계기판과 중앙 모니터를 하나로 엮은 방식에서 벗어나 최신 전동화 모델처럼 바꿨다. 17인치 대화면 중앙 디스플레이는 훌륭한 시인성은 물론 응답성도 빨라 실용적이다. 필요에 따라 최대 3개로 분할해 사용할 수 있고 태블릿처럼 세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조작도 가능해 편리하다. 그 하단엔 비상등, 공조장치 등 운전 중 즉각 조작해야 할 기능들을 물리버튼으로 마련해 직관성도 챙겼다.
계기판을 별도로 마련한 점도 좋다. 운전대 너머 9.9인치 슬림 디스플레이에는 주행에 필요한 핵심 정보인 주행 거리, 연비 등을 간소화해 담았다. 이 주행 정보는 운전자의 취향에 맞게 구성을 넘나들 수 있다. 운전대는 위아래 평평한 '더블 D컷'으로 마련해 시야에 문제가 없다.
이동 경로나 운전자주행보조(ADAS) 등 정보를 담은 헤드업디스플레이(HUD)까지 탑재해 내비게이션을 일일이 확인할 필요도 없다. 다만 엔진회전수(rpm)나 타이어 공기압 등 부가적인 주행 정보는 중앙 디스플레이에서만 확인 가능하다. 해당 정보도 직관성을 위해 슬림 디스플레이에 간소하게라도 담아 개선하면 좋겠다.
시트의 착좌감도 인상적이다. 폭신한 시트는 방석 길이뿐 아니라 사이드 볼스터 등을 체형에 맞게 조절 가능해 장거리 운전 시에도 피로를 느끼기 어렵다. 센터 콘솔도 스타트·오토홀드·서라운드 뷰 모니터 버튼 등으로 간결하게 구성했다. 전반적으로 조작이 간단명료해 이 차에 적응할 시간이나 매뉴얼 책자를 꺼내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 컵홀더를 비롯해 고속 무선 충전 패드도 2개 마련해 스마트폰 충전 문제로 다툴 일도 없다.
이 외에도 다양한 신기술도 탑재됐다. 옵션으로 천장에 심을 수 있는 '스마트 비전 루프'가 대표적인 예다. 기존 파노라마 선루프의 롤 블라인드를 제거하고 PDLC 필름 기술을 적용했다. 이는 천장 상단의 버튼이나 중앙 디스플레이, 음성 인식 등 다양한 방식으로 유리 투명도를 6단계로 조절 가능하다. 이는 실내 개방감을 키우면서도 무더운 여름철에도 뜨거움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우수한 열 차단 성능을 맛볼 수 있다.
▲ 생성형 AI 품고 차량도 스마트폰처럼…새로운 인포테인먼트 경험 제시
이번 변경의 하이라이트는 플레오스의 탑재다. 이 인포테인먼트는 각종 차량 설정은 물론 공조, 내비게이션, 미디어 등 웬만한 주요 기능을 중앙 디스플레이에 집약했다. 화면의 인터페이스는 좌측 '주행 정보 영역'과 우측 '앱 영역'으로 구성된다. 주행 정보 화면은 계기판처럼 속도, 기어, 주행 가능 거리, 경고등 등 핵심 정보를 담아 운전자 입장에서 시선 이동이 최소화돼 마음에 든다. 화면 하단에는 자주 쓰거나 최근 사용 앱 기능이 배치돼 있는 등 스마트폰이나 태블릿과 UX가 유사해 누구나 운전 중에도 쉽게 쓸 수 있다.
운전 중에는 대형 언어 모델(LLM) 기반 '글레오 AI'를 활용하면 확실히 편하다. 사실 아무리 조작이 간결한 인포테인먼트라 해도 고속도로나 복잡한 도심에서는 터치식으로 조작하기엔 부담이 있다. 그래서 스마트한 음성인식 비서 글레오는 그 값어치를 한다. 기존 음성인식 기능이 정해진 로직대로만 작동된다면 글레오는 주행 상황을 이해하고 차량 상태까지 반영해 운전자의 의도를 파악해 명령을 수행해 자유도가 높다.
예컨대 운전자가 글레오를 호출해 "지금 가는 목적지 주차 가능해?"라고 질문하면 주변 교통 상황을 분석하고 이후 주차 가능한 주변 주차장으로 길 안내까지 이어진다. 심지어 좌석 위치 기반으로 상황에 맞게 명령어를 수행해 낸다. 동승석에 앉아 "여긴 좀 덥네 시원하게 해줘"라고 말하면 통풍시트를 켜거나 에어컨 온도를 낮추고 풍량 강도까지 올리는 방식이다.
물론 지속적인 업데이트는 필수적이다. 플레이스와 신형 그랜저의 공개 당시 현대차가 예시로 들었던 명령어는 대부분 잘 수행 해낸다. 그러나 아직은 초기 단계인지 그 외 기능 제어에선 제한된 모습을 보인다. 가령 좁은 골목길을 지날 때 "서라운드 뷰 좀 켜줘"라던지 "크루즈 컨트롤 켜줘"나 "중앙 모니터를 3개로 분할해줘" 등 비교적 자유도가 높은 주행 관련 기능은 지원하지 않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에 대해 이장선 현대차 음성인식개발팀 책임 연구원은 "ADAS 기능은 아직 추가 검토가 필요한 부분들이 있어 적용되지 않았다"며 "이는 관련 법규 문제가 아닌 성능 검증과 안전성 확보 이후 적용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글레오의 음성 인식률과 응답 속도 역시 다듬을 필요가 있다. 운전하면서 글레오 호출 이후 응답 속도가 다소 느려 답답하게 느껴졌고 질문을 설명하는 도중 대화가 갑자기 종료되는 경우도 꽤 많았다. 단 현대차도 이 부분을 인지하고 있었다. 사용자 피드백과 실제 사용 데이터를 바탕으로 응답 속도와 대화 종료 판단 로직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SDV 시대를 향한 첫걸음인 만큼 완성도는 향후 업데이트를 통해 지켜봐야 할 듯하다.
▲ 첨단 섀시 기술로 완성한 안락한 주행…플래그십 품격 완성
신형 그랜저는 △가솔린 2.5 △가솔린 3.5 △LPG 3.5 △가솔린 1.6 터보 하이브리드 등 총 4개 파워트레인으로 운영된다. 이번에 시승한 모델은 가솔린 2.5 모델로 기존 모델과 동일한 직렬 4기통(l4) 2.5ℓ 가솔린 스마트스트림 엔진이 탑재된다. 최고 출력은 198마력, 최대토크 25.8㎏·m를 발휘하며 8단 자동변속기가 맞물려 앞바퀴(전륜구동)를 굴린다.
제원상 대형 플래그십 세단을 끌기엔 다소 부족한 수치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일상에서 주행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다. 출발 시에도 부드럽게 힘이 전달되고 가속을 매끄럽게 이어간다. 가솔린 3.5 엔진처럼 초반부터 풍부한 토크(힘)를 뿜어내기보다는 차분히 힘주어 속도를 끌어올리는 타입이다. 그래서 플래그십 세단 특유의 여유로움과 차분함을 느끼기엔 오히려 가솔린 2.5 모델이 더 잘 어울린다.
이 차의 비약적인 발전은 승차감으로 맛볼 수 있다. 하체 감각은 7세대 초기형 그랜저와 비슷한 폭신한 느낌을 유지했다. 그렇다고 서스펜션이 마냥 말랑말랑하거나 느슨하지 않다. 특히 굴곡이 불규칙한 노면이나 방지턱을 넘을 때 자세를 다시 추스리거나 진동과 충격 등을 흡수하는 능력도 수준급 이상이다.
고속 안정성도 뛰어나다. 평소에는 안락함에 초점을 맞춘 세팅이지만 속도를 붙일수록 차체를 바닥에 진득하게 눌러 붙이는 안정감이 인상적이다. 체감상 느낀 속도감과 계기판 속도계의 차이가 크다. 가령 고속도로에서 계기판 기준 시속 110km로 주행하면 마치 시속 80~90km 정도로 달리는 듯한 기분이다.
이는 기본 주행 성능을 좌우할 섀시를 탄탄히 다진 덕분이다. 엔진룸 내부엔 구조를 최적화해 두께를 두텁게 늘린 '카울 크로스바'를 넣었고 앞바퀴 '스트럿 링'의 강성 역시 향상시켜 차체를 보강했다. 서스펜션에는 '유압제어식 리바운드 스토퍼'를 탑재해 노면에서 전달되는 충격을 효과적으로 걸러낸다. 그 결과 탄탄한 주행 감각과 부드러운 승차감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냈다.
최첨단 주행 기술도 한몫 톡톡히 보낸다. 새로 탑재된 '고속도로 바디 모션 제어(HBC)'가 좋은 예다. 이는 고속으로 달리거나 HDA(고속도로 주행 보조) 작동 시 가·감속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체의 불필요한 상하 움직임 현상 억제를 극대화한다.
여기에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ECS)'이 시너지를 낸다. 내비게이션 GPS 데이터와 카메라 및 레이더 센서를 활용해 실시간으로 노면 정보를 미리 읽어 서스펜션의 감쇠력을 주무르는 스마트한 소프트웨어다. 이러한 업그레이드를 통해 여러모로 한국 환경에 최적화한 플래그십 세단으로 거듭난 것이다.
신형 그랜저의 판매 가격은 개별소비세 3.5% 적용 기준 △가솔린 2.5 4185만원 △가솔린 3.5 4429만원 △하이브리드 4864만원 △LPG 4331만원부터 시작된다. 다만 하이브리드 모델 가격은 세제 혜택 적용 전 기준으로 환경 친화적 자동차 고시 완료 이후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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