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N] 박은하의 ‘십이지정’, 띠보다 사람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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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N] 박은하의 ‘십이지정’, 띠보다 사람의 마음이다

뉴스컬처 2026-06-01 13:42:5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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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전통예술단 산조춤. 사진=한빛전통예술단
한빛전통예술단 산조춤. 사진=한빛전통예술단

 

[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열두 띠는 시간의 순서, 계절의 기운, 사람의 성정과 삶의 감각을 품은 오래된 상징 체계다. 박은하가 이끄는 한빛춤꾼들의 20주년 춤판 ‘십이지정(十二支情)·하나의 숨’은 익숙한 십이지를 전통춤의 몸으로 옮긴다. 동물의 외형보다 사람 안에 남은 마음의 기운이다. '십이지'는 열두 동물의 이름을 빌린 시간의 질서다. '정'은 질서를 사람의 감정으로 바꿔 세우는 글자다. ‘하나의 숨’은 여덟 마당에 흩어진 춤과 소리, 장단과 연희를 묶는다. 전통춤에서 숨은 기술 이전의 조건이다. 

전통춤에서 전승은 몸의 반복에 가깝다. 스승의 사위가 제자의 몸으로 옮겨가고, 제자의 군무가 다시 작품 전체의 호흡을 세운다. 정휘 박은하 예술감독은 “전통의 가치는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계속 나아가고, 새롭게 꽃피우는 것”이라며 “한빛춤꾼들이 지나온 발자취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20년을 향해 내딛는 새 출발의 무대”라고 했다. 20주년을 회고하는 문장 안에는 다음 시간을 향한 부담이 짙다. 한국십이체장고춤보존회 한혜경 이사장은 한빛전통예술단의 20년을 “스승과 제자의 끈끈한 인연이 몇 겹의 시간을 거쳐 맺어진 인연”으로 짚었다. 한 이사장은 “깊은 호흡, 아름다운 발과 손길, 한과 흥이 어우러지는 전통춤의 향연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전통춤 계보 안에서 제자와 단체가 함께 축적한 시간의 결과라는 점을 보여준다.

김선경 한빛전통예술단 단장은 “그간의 한걸음이 도전이었고, 매 순간이 정성이었다”며 “지난 세월에 대한 기록이자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약속”이라고 밝혔다. 김 단장은 '십이지정(十二支情)·하나의 숨' 공연은 14명의 단원이 한마음으로 준비한 무대라고 설명했다. 단체의 20년을 한 편의 공연으로 정리하는 일은 화려한 무대보다 꾸준한 연습, 서로의 호흡, 같은 장단을 공유한 시간이 쌓였다는 사실이다.

한빛전통예술단 십이체장고춤. 사진=한빛전통예술단
한빛전통예술단 십이체장고춤. 사진=한빛전통예술단

 

한마당 ‘흥지무’는 공연의 문을 여는 춤이다. 흥지무는 교방춤에 근간을 둔 부채입춤 형태다. 부채는 손끝의 선을 넓히고, 춤꾼의 호흡을 시각적으로 펼치는 도구다. 흥겨움이 묻어나는 춤이라는 뜻처럼, 첫 마당은 무대 전체의 기운을 부드럽게 열어젖힌다. 여인의 아름다움과 흥의 묘미, 절제된 미감과 은근한 교태가 부채의 열림과 닫힘 사이에서 살아난다.

두마당 ‘교방살풀이’는 교방 이미지를 무대화한 춤으로, 여성의 교태미와 화려함을 짧은 수건의 선과 발 디딤의 묘미로 끌어낸다. 세마당은 소리 ‘배뱅이굿’이다. 유상호가 무대에 오른다. 배뱅이굿은 서도 지역 소리의 꽃으로 불리는 판놀음이다. 판소리와 닮은 면이 있지만, 서도 특유의 가락과 익살스러운 재담이 결합한 독특한 극음악이다. 춤 중심의 공연 가운데 배뱅이굿이 들어가는 이유는 분명하다. 십이지정이 말하는 ‘숨’은 소리꾼의 말, 웃음, 재담, 장단까지 포함한다. 세마당은 전통춤의 흐름에 소리판의 익살과 극성을 밀어 넣는다.

네마당 ‘진도북춤’은 전남 진도 지역 북춤에서 왔다. 양손에 채를 쥐고 북을 울리는 방식이다. 농경사회에서 일꾼의 흥을 돋우던 춤이다. 한 손에 부채를 들고 북을 치는 다른 지역 북춤과 달리, 양손의 채가 만드는 가락은 몸의 긴장과 신명을 함께 끌어올린다. 다섯마당 ‘십이체장고춤’은 12가지 특징적인 춤사위가 주가 되는 작품이다. 한과 신명의 두 부분으로 나뉘고, 가락 속 흥의 매력과 전통 형식의 소재, 기법이 조화를 이룬다. 장고는 무용수의 몸에 매달린 또 하나의 심장이다. 치는 손과 걷는 발, 허리의 탄력과 어깨의 열림이 박을 만든다. 박은 다시 몸의 방향을 바꾼다.

한빛전통예술단 사자놀이. 사진=한빛전통예술단
한빛전통예술단 사자놀이. 사진=한빛전통예술단

 

십이체장고춤은 김취홍류 전승 맥락에서 논의돼 온 춤이다. 열두 상징을 사람의 감정으로 바꾸는 작품에서, 열두 사위의 감각은 무대 전체의 중심 감각으로 작동한다. 여섯마당 ‘산조춤’은 자유롭게, 때로는 절제된 감정으로 추는 춤이다. 산조는 악기 독주곡의 즉흥성과 장단 변화가 살아 있는 음악 양식이다. 춤으로 옮겨질 때 산조의 미덕은 정중동의 태도와 감정의 농담으로 드러난다. 산조춤은 빠른 흥보다 응축된 감정을 다룬다. 몸은 크게 흔들리지 않아도, 내부의 기운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일곱마당 ‘연희판굿, 사자놀이’는 경기·충청 지역 농악놀이를 무대화한 작품이다. 상모의 아름다움과 형상, 경쾌하고 힘찬 장단을 내세운다. 뛰어나오는 소고와 버나, 사자, 열두발놀음은 연희판굿의 대미를 장식한다. 관객의 몸까지 장단 쪽으로 끌어당긴다. 십이지가 동물 상징을 품은 공연이라는 점에서 사자의 등장은 상징적으로도 선명하다.여덟마당 ‘소고춤’은 농악의 벅구놀음에서 나온 독특한 춤사위와 가락을 짜임새 있게 무대화한 춤이다. 굿거리, 자진모리, 동살풀이, 휘모리 순서로 이어지는 장단은 사물과 태평소 반주에 실려 신명을 키운다. 소고춤은 공연의 끝을 장식하는 집단 에너지다. 손에 든 소고는 장단을 시각화한다. 군무는 한빛춤꾼들의 20년 호흡을 관객 앞에 펼친다.

한빛전통예술단 진도북춤. 사진=한빛전통예술단
한빛전통예술단 진도북춤. 사진=한빛전통예술단

 

'박은하 한빛전통예술단 '십이지정(十二支情)·하나의 숨'은 오는 2일 서울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에서 열린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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