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냇머리는 있는 둥 마는 둥 자라지도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사자 갈기 같은 머리숱을 자랑하는 신생아도 있건만 우리 손주는 머리 감기인지 세수인지 한번 쓱 문지르면 샴푸였다.
그 배냇머리도 빠지기 시작했다. 자고 나면 베개에 몇 가닥씩 붙어있는 게 그렇게 신기하고 이뻐서 “머리도 빠지네?” 하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머리카락은 없어도 정수리에서는 왠지 머리 냄새가 나면서 얼굴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이 머리에서 풍성한 머리카락이 자랄까 싶어 하루에는 몇 번씩 문질러 보았다.
언제 처음으로 머리를 잘라주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마 눈썹 밑으로 앞머리가 내려오고 목 뒤쯤 뒷머리가 덮이면서였던 것 같다. 숱이 없으니 문구용 작은 가위로 조금씩 잘라주었다. 몇 가닥 잡고 가위로 쓱 잘라내면 되건만 얼굴 근처에 가위를 대기도 전에 가슴이 두근두근, 소심증이 폭발한다.
아기 때 손톱을 잘라주다 피를 한번 본 후부터 생긴 공포. 보리쌀만 한 손톱을 깎자면 돋보기를 쓰고 심호흡을 한 뒤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손톱도 너무나 부드러워서 살인지 손톱인지 감각으로 구분하기도 쉽지 않았다.
어느 날, 딱 잘랐는데 “어?” 느낌이···. 2초 후쯤 살짝 배어 나오는 피. 서로 놀라 손주와 마주 보고 있자니 다시 2초 후쯤 터지는 울음소리. 그 손을 부여잡고 “미안해···. 미안해···. 어떡해~” 손톱 사건은 그 뒤로도 손주의 손발톱을 깎아줄 때마다 꼭 끼어드는 BGM이 되었다.
아이가 자라며 문구용 가위로 대충 자른 머리가 영 이상하고 훤한 인물을 가리는 것 같아 미용실을 한 번 데려갔다. 의자에 앉히고 목에 커트보를 두르는 것부터 저항이 만만치 않다. '어린이 미용실'이라는 곳이 있어서 의자 앞뒤로 온갖 장난감이 그득한데 아이가 그곳에 눈이 팔려 있는 동안 재빨리 머리를 잘라야 한다.
처음 한두 번은 얼떨결에 커트를 했다. 이모 찬스를 썼다. 가위의 차가운 감촉이 싫은 건지 이발기 소리가 싫은 건지. 이 의자에 앉으면 안 된다는 강한 거부의 몸짓.
얼떨결 커트 뒤에는 미용실 문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으려 했다. 병원이라면 1~2초에 끝나는 찍어 누름이지만 커트는 움직이지 않고 꽤 오래 앉아 있어야 해서 난감한 상황. 여자아이라면 길러서 묶으면 되련만 덥수룩한 머리로 땀을 철철 흘리며 뛰어노는 손주를 보자니 자꾸 늑대소년이 떠올랐다.
궁여지책으로 딸아이가 미용가위를 주문해 화장실 커트를 시작했다. 변기에 앉히고 보자기를 목에 두른 뒤 여러 명이 어르고 달래며 아이의 혼을 빼놓는 사이 재빨리 잘라야 하는 고난도 작업.
결과는 늑대소년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모습. 다니는 미용실 디자이너에게 자문하니 조금 더 자라 멋을 알게 되면 저절로 해결된단다. 그렇게 1~2년 쑥대밭 같은 머리로 유아원을 다녔다.
어느 날 자연스럽게 미용실 의자에 앉아 점잖게 머리를 자르는 손주를 보면서 ‘그동안은 왜 그랬을까?’ 싶을 만큼 알 수 없을 지경이 됐다.
머리를 깎고 온 날은 또 할미의 과장된 리액션이 따라야 한다. “너무 잘생겨서 누군지 모르겠네···?” 빙그레 웃는 손주.
주위에서 가끔 아주 이상한 머리 모양의 남자아이들을 보면 슬며시 웃음이 난다. 엄마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여성경제신문 이수미 전 ing생명 부지점장·어깨동무 기자
leesoomi714@naver.com
이수미 전 ing생명 부지점장·어깨동무 기자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잡지사와 출판사 등에서 오랜 시간 취재 및 편집 업무를 담당하며 콘텐츠 전문가로 활동했다. 은퇴 후 손주의 육아를 전담하게 되면서 겪는 현실적인 고충과 그 속에서 발견하는 소소한 행복을 담은 <할머니의 황혼육아> 를 집필하고 있다. 할머니의>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Copyright ⓒ 여성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