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준의 오목렌즈] 121번째 기사입니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대기업 마케팅팀 직원들이 5월18일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고 ‘탱크데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이벤트를 기획할 수 있을까? 심지어 날짜를 위에 떡하니 박아놓고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까지 썼다. 박성준 센터장(다소니자립생활센터)은 “이것은 단순 마케팅 실수가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폭거이자, 기업 경영을 망치는 자폭행위”라고 규탄했다.
생각보다 파급력이 크다. 따지고 보면 마케팅 담당자가 날짜 하나 잘못 잡아서 사건이 이렇게 커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연상 작용을 일으키지 않을 대한민국 사람은 없다. 그 정도를 눈치 못 채면서 그런 대기업 마케팅팀에 있다고 그러면 그건 자리 잘못 잡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거는 몰랐다라는 건 핑계고, 고의성이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본인이 굉장히 역사의식이 없거나, 그런 쪽에 아무런 죄책감이 없는 일베라서 가벼운 생각을 갖고 그렇게 한 것 같다.
이번 오목렌즈 전화 대담(5월28일 목요일 20시)에서는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스타벅스 탱크데이 사태’를 조명해봤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 공휴일은 아니지만 그날 그런 식으로 조롱 이벤트를 개시한 것은 마치 광복절이나 3.1절에 ‘일본 여행 상품권’을 내걸고 이벤트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9월11일에 맞춰 ‘에어플레인 데이’라며 항공권을 상품으로 제공하는 이벤트를 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김상욱 교수(경희대 물리학과 교수)는 본인 페이스북을 통해 “탱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육상에서 가장 강력한 살상 무기였다”며 “1980년 신군부는 광주시민의 시위 진압에 탱크를 투입했다”고 환기했다.
미치광이 살인마가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칼로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자. 사망자들을 추모하는 날, 어떤 기업이 ‘식칼 데이’라는 이벤트를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것은 정치적 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라면 넘지 말아야 할 선에 관한 문제다. 불매 운동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그런 큰 기업에서 일어났는지 우선 정확히 밝혀져야 할 것 같다. 유사한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면.
이번 사태는 단순히 스타벅스 코리아의 문제가 아니라 정용진 회장을 필두로 하는 신세계 그룹의 위기와도 직결돼 있다. <그래픽=챗GPT AI 제작>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스타벅스 코리아의 모기업(지분율 67%)인 이마트(신세계 그룹 정용진 회장이 28% 지분을 보유하고 있음)는 광주와 인연이 깊다. 박 센터장은 “신세계 여자 프로농구팀이 한때 광주를 연고지로 했던 적도 있고 신세계라는 그룹하고 광주가 함께 걸어왔던 역사가 있다”고 역설했다. 실제로 1997년 10월 신세계 그룹은 ‘태평양 여자 농구단’을 인수해서 ‘신세계 쿨캣’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짓고 광주광역시를 연고로 삼았다. 그 이후 약 9년간 운영해오다가 2006년 연고를 경기도 부천으로 옮겼다. 현재 광주로 들어오는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고속버스 터미널 및 복합 공간(유스퀘어)은 2024년부터 신세계가 인수해서 소유하고 있으며, 인근에 신세계 백화점과 이마트가 자리잡고 있다. 나아가 신세계 그룹은 해당 터미널 부지에 3조원을 투자해서 대규모 개발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터미널 기능을 전부 지하화해서 특급호텔, 공연장, 주상복합시설을 조성하고 기존의 백화점을 신축 및 재개장하는 엄청난 프로젝트인데 ‘2033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동훈 대표이사(광주신세계)는 “전남광주특별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재탄생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런데 신세계는 결과적으로 광주시민들에게 역대급 배은망덕으로 남게 됐다.
물론 신세계 그룹이나 정용진 회장과 과도하게 연결지어 공격하는 여론을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목소리들도 있다. 그렇다면 그저 스타벅스 코리아의 마케팅 직원들이 책임질 일이라는 걸까? 신세계 그룹의 총수이자 오너 정용진 회장의 전적이 있어서 그렇게 쉽게 넘겨버릴 수가 없다. 정용진 회장은 2022년 1월 소위 ‘멸공 스캔들’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저 북한과 공산주의가 싫다는 표현의 자유로 해석될 수 없는 것이 멸공론이다. 북한에 대해 더 강하게 비난하지 않는 너희들은 북한과 가깝지? 종북이구나. 이런 식으로 한국 내 진보세력을 탄압하고 공격했던 색깔론의 현대사가 선명하고, 미국에서는 매카시즘의 광기로 발현됐다. 극우 유튜버나 우파 정치인도 아닌데 시가총액 10위권의 대기업 총수가 굳이 인스타그램으로 멸공론을 설파할 필요가 없다. 일부 우파 진영의 강력한 지지를 얻었을지 모르지만 이런 오너 리스크로 인해 신세계 그룹 계열사들의 주가는 순식간에 빠졌고 도합 24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 당시 유통업계에서는 이런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대기업 총수는 자신의 한 마디가 그룹 전체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말을 최대한 아끼는 게 일반적인데 정 부회장은 스스로 논란을 만들어내고 있다. 경영 철학에 대한 소신 발언도 아니고 철지난 멸공 발언으로 구설에 오르는 건 그룹 이미지에 나쁜 영향만 미칠 것이다.
전국민을 상대로 사업을 벌이는 대기업이 오너의 구설로 ‘우파 기업’처럼 돼버린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정용진 회장의 행보가 일베들을 신세계 유니버스로 불러들인 동력으로 작용했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탱크데이 이벤트를 기획한 곳은 스타벅스 코리아 본사 ‘커머스팀’이다. 커머스팀에는 20~30대 직원 5명이 있는데 이들이 탱크데이를 만들어서 위로 올렸고 팀장, 기획 담당 임원, 전략기획본부장, 대표이사까지 4단계 결재를 거치는 과정에서 아무도 문제를 발견해서 커트하지 않았다. 이벤트 실행 과정에 사회적, 문화적, 법적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검토하는 법무팀의 피드백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신세계측은 스타벅스 코리아 내부에서 무사안일적으로 ‘관행적’인 결재를 해버린 것으로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제대로 검토를 안 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 뿐 고의적으로 이런 이벤트를 기획한 사실은 확인하지 못 했다는 것이다. 특히 수사권이 없는 내부 조사의 한계상 해당 직원들의 폰을 제출 받지 못해서 고의성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는 후문이다. 박 센터장은 “그러니까 결재 라인을 건너 뛰어 직보를 한 것도 아니고 결재 라인을 일일이 다 거쳤는데 날짜와 이벤트 이름의 연계성 그런 것들을 커트해낼 수 있는 사람이 1명도 없었다는 얘기라는 건데”라며 아래와 같이 비판했다.
그냥 건성으로 봤다는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커머스팀의 다른 직원들도 뭐라고 한 마디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경찰 수사로 고의적으로 기획하거나 묵인한 사람들을 밝혀내야 한다.
거듭해서 박 센터장은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이라고 지탄했다.
커머스팀의 보고를 결재할 사람들 중에는 분명 5.18을 알고 있는 30대도 있고 40대도 있고 50대도 있을 거 아닌가? 그 시절 광주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있을 것 아닌가. 아무래도 정용진 회장을 비롯한 윗선의 눈치를 보는 조직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늘상 말씀드리는 거지만 총수들이 그렇게 오너 리스크를 발생시킬 때마다 드는 생각이 뭐냐면 참모로 이상한 사람을 두고 있거나 아니면 옆에 있는 참모를 참모로 인정 안 하거나! 둘 중에 하나다. 일개 직원들이 미스를 했다고 하기도 애매한 게 그 윗선의 라인들이 누구 눈치를 봤겠는가? 뻔한 거 아닌가? 분명히 이걸 잘라야 되는 건데 제대로 봤으면. 근데 윗선 눈치를 보고 그래 탱크! 그래 물탱크로 여기겠지? 오케이! 쭉 간 것이 아닌가 싶다. 신세계가 공식 발표한 조사 결과를 누가 믿겠는가? 혹시라도 지금 만약 정용진 회장이 멸공의 연장선상 전략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방치했다면 완전히 판단 미스가 났다.
지난주 화요일(5워26일)에 이뤄진 정용진 회장의 공개 사과도 ‘대국민 어그로’로 작용했을 뿐이었다. 이딴식으로 할 것이라면 차라리 사태 초기에 발빠르게 나왔던 서면 사과문으로 그쳤어야 했다. 무엇보다 전체 발언 중 말미에 ‘사족’이 치명적이었다.
지금은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나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각자 생각은 다를 수 있겠지만 더 나은 세상을 미래세대에게 남겨주고 싶단 마음만큼은 우리 모두 같다고 믿는다.
이번 탱크데이 사태를 두고 마치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피력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5.18 민주화운동과 박종철 열사를 모욕한 것이라고 과대 해석하는 너희들과는 생각이 다르지만 하도 난리치니까 바짝 엎드려줄게. 그러니 적당히 하자.
박 센터장은 “생각의 차이가 있다는 이런 메시지 자체가 신세계 월드에 일베를 불러모으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래도 선해해서 처음 회장님의 서면 사과문을 보고 참 깔끔하게 빠르게 나왔다고 봤는데 주변에서 빨리 안 꺼지니까 직접 나서야 되겠습니다. 이런 조언을 듣고 굳이 본인 등판을 한 것 같은데 괜히 나와서 안 해도 될 소리를 했다. 마지막의 사족은 탱크데이의 공범이라는 점을 자백한 것이나 다름 없다. 진짜 국가에서 직접적으로 기념일로 지정한 민주화 운동의 날인데 그런 국가 구성원들의 보편적인 생각에 반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도 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박종철기념사업회 강석령 이사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가치를 벗어난 것이라서 문제 삼은 건데 마치 그냥 여러 다름 중 하나인 것처럼 이야기한 것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최성용씨(성공회대 열림교양대학 강사)는 페이스북에서 “(말미에 사족을 붙인 것은) 맥락상 나는 5.18이나 현재의 논란에 대해 생각이 다르다는 완곡어법으로 들린다”며 “서두에 두괄식으로 배치한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드리고 여러분의 용서를 구한다는 문장을 뒤에서 번복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정용진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명백하게 드러나는 전제가 있다. 그는 근본 가치나 공공선 같은 것에 호소하며 통합을 말하지만 거기에는 5.18이 누락되어 있다. 5.18을 우리 사회의 근본 가치를 구성하는 일부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각자 생각은 다를 수 있는” 갈등적 사안으로 남겨둔다. 이는 5.18 유가족과 박종철 유가족, 광주시민과 국민에게 사죄하면서도 5.18에 대한 자신과 신세계의 입장을 밝히지 않은 점과 상통한다. 즉 그는 5.18을 우리 사회의 근본 가치의 일부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2가지 점에서 해롭다. 하나는 당연하게도 5.18의 의미나 위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노골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재차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탱크데이 역시도 그저 얼핏 보면 지나칠 만큼 간접적인 (그렇기에 더욱 악의적인) 방식으로 5.18을 부정했다. 그렇다면 정용진의 사과는 과연 무엇에 대한 사과이며 반성인지 모호해진다. 그는 과연 무엇을 잘못했다고 여기는 것인가. 이유가 무엇이든 국민 여러분의 마음에 아픔과 상처를 드린 것이 잘못이라는 건 ‘잘못’이 무엇인지 규정하는 걸 눙치겠다는 선언에 지나지 않는다.
시기적으로 지방선거 정국과 맞물렸는데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민주당과 이재명 대통령이 기업을 탄압하고 있다는 식으로 정치 공세를 일삼고 있다. 박 센터장은 “제일 화나는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라며 “국민의힘이 이번에 개헌안의 국회 통과 과정에서 5.18이 헌법 전문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저지했던 것이 멀마 전”이라는 점을 환기했다.
그런데 이 마케팅이 5.18을 연상시키고 잘못된 거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국민의힘이 대기업에 대한 탄압이라고 주자한다? 국민의힘은 정말 대한민국의 정당이 맞는가? 정치 공세를 하더라도 대국민 다수 여론을 좀 살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탱크데이 사태를 두고 50대 50으로 여론이 비등비등한가? 그랬다면 정용진 회장이 공개 사과까지 했겠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민주당이 계엄을 비호하는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 해산 청구를 하는 걸 반대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걸 보면서 아무리 선거 기간이라고 하지만 너무 선을 넘었고 정당 해산의 빌미를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 같다. 너무 죄송한 말씀인데 장동혁 대표는 한국 정치사 역대 최악의 제1야당 대표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그동안 일부 국민의힘 대표자들이 망월동 묘역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했고, 일부 의원들은 5.18 단체들로부터 감사 인사를 들을 만큼 우파 정당도 5.18 문제에 대해서는 보편적인 인식을 하고 있다는 ‘공든 탑’을 어느정도 쌓아놨는데 이번 사태로 물거품이 됐다.
이런 현실이 너무 슬프다. 지금 국민의힘이 정치 공세를 할 게 아니라 민주당과 한 목소리로 스타벅스 코리아를 규탄했다면 오히려 지방선거에서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의 수준을 너무 떨어뜨린 게 아닌가 싶다.
Copyright ⓒ 평범한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