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유미 기자 = 우리가 알던 좀비가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문자메시지를 확인하질 않나, 키보드를 두들겨 검색하질 않나. 역대급 지능을 가진 좀비들이 끈적한 액체를 뿜으며 휘젓는 아포칼립스. 그곳에서 살아나온 사람 이야기를 담은 영화 <군체>가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연상호 감독의 신작 <군체>가 심상치 않다. 연 감독이 영화 <부산행>으로 K-좀비 신드롬을 만들어낸 이후 10년 만에 또다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 영화는 정체불명 감염 사태로 봉쇄된 건물 안에서 생존자들이 진화하는 감염자(좀비)들과 맞서는 이야기로 펼쳐진다. 전지현과 구교환, 지창혁과 고수, 신현빈과 김신록 등 출연진만으로도 개봉 전부터 기대를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천만 관객
기대 상승
<군체>는 지난 28일 집계 결과 1일 관객 수 12만5435명, 누적 관객 수 250만3198명을 기록했다(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이로써 가뿐하게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섰다. 관객 19만9759명을 동원해 올해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찍더니, 개봉 첫 주말 박스오피스 최고 스코어도 달성했다.
최단기간 100만 관객 돌파에 이은 200만 관객 돌파까지 연이은 기록 경신을 잇고 있다.
제79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화제 몰이를 한 점도 흥행에 유효했다. <군체>는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받았다. 여기에는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액션, 스릴러, 느와르, 호러, 판타지 등 장르 영화 소수만 참가할 수 있다.
지난 16일 월드 프리미어 공식 상영 후 7분간 기립박수를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영화를 향한 기대감이 더 짙어졌다.
정부 영화 6000원 할인 쿠폰, 석가탄신일 등 연휴와 맞물린 개봉 시기도 <군체> 인기에 한몫했다. 이 기세라면 <왕과 사는 남자> 다음으로 올해 천만 관객을 돌파할 두 번째 영화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겠다.
<군체>는 개봉 전부터 124개국 선판매를 기록했다. <부산행>과 영상미를 비교하면 단연 압도적으로 성장했다는 평이 많다. 시각특수효과(VFX)와 디지털 보정(DI) 등을 결합해 장면 간 이질감을 최소화하고 좀비물 특유의 몰입도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연상호 퐁당퐁당의 법칙, 이번엔 고점 풀매수 무조건 추천” “감독의 사심인지 전지현 클로즈업 얼빡샷(얼굴을 화면에 꽉 차게 담은 장면)이 많았는데 역시 미모가 후덜덜, 극장 가서 볼만하다” “보는 내내 도파민 돌았다” 등 추천 글이 다수 확인됐다.
“연출 자체가 전체적으로 뭔가 오글거린다고 해야 되나?” “결말은 좀 아쉽긴 하다” “이런 영화에 투입된 배우들과 제작비가 아깝다” 등 비판 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장르 영화 특성상 취향이 맞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편안한 킬링 타임용 콘텐츠가,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뻔한 신파와 느슨한 서사로 점철된 밋밋한 콘텐츠가 될 것 같다. 플롯은 삐걱거리는 곳 없이 명쾌하게 흐르지만, ‘떡밥 투척(복선)’과 ‘떡밥 회수(카타르시스)’를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진부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뜻. 궁금하다면 직접 확인해 보는 수밖에.
K-좀비 역사 또 한 번 고쳐 쓰나
진화 거듭해 스마트폰 보는 좀비
<군체>는 소재를 끌어오는 방식에 있어 부족함이 없었다. 연 감독은 “집단지성으로 움직이는 생명체에 맞서는 인간의 개성 혹은 협력을 다루고자 했다”고 말했다. 집단지성은 인공지능(AI)이 학습하며 알고리즘을 완성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스스로 자신 있어 하는 좀비물에 AI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가질 법한 고민을 담았으니, 콘텐츠 트렌드에 시류까지 단박에 잡은 셈이다.
영화는 초고층 빌딩에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해 건물을 봉쇄하며 도입부를 연다. 생물 공학과 교수 권세정(전지현 분)은 전 남편인 한규성(고수 분) 추천으로 일자리를 부탁하려 세미나에 참석한 터다. 권세정은 비밀스러운 초대장도 가지고 있다.
건물 보안 요원으로 일하는 최현석(지창욱 분)은 하반신 장애가 있는 누나 최현희(김신록 분)와 쇼핑몰을 둘러보다가 권세정, 한규성과 함께 무리를 이룬다. 여기에는 테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이봉석과 학교폭력 가해자 학생 둘과 피해자 학생 하나도 속하게 된다.
사람을 물어뜯는 좀비와 이들 좀비를 통제하는 인물 서영철(구교환 분). 이들에게서 벗어나 생존하려는 인물들이 폐쇄된 건물 안에서 협력한다. 이들과 맞서는 좀비는 집단지성으로 정보를 습득하고, 나아가서는 스마트폰과 PC도 다룰 수 있게 된다.
양팔을 앞으로 뻗은 채 어기적거리며 어설프게 걷고 동공 없는 눈을 치뜨는, 피 흘리는 모습은 지금까지 우리가 흔히 보던 좀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연 감독은 여기에 개미처럼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진화한다는 설정을 덧입혔다.
이들 진화하는 좀비에 맞서는 인물들은 협조하는 듯하면서도 각자도생하려 고군분투하고, 반목하는 듯하면서도 서로를 돕는다. 이런 장면들에서 연 감독이 의도하는 바를 단박에 파악할 수 있다. 좀비를 노예처럼 부리는 사람은 영화에 등장하는 서영철이 아니라, 오히려 감독이다. 관객은 연 감독이 부리는 좀비를 보며 흥미를 느낀다.
연 감독이 <부산행>을 선보이고 <반도>를 거쳐 이번 <군체>를 선보이기까지 10년. 그사이 소수 마니아끼리만 회자하던 좀비가 국내 장르물 소재로 단단히 굳어졌다. 그러기까지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활약하던 연 감독의 상상력이 큰 보탬이 됐다.
이쯤 되니 궁금하다. 좀비를 소재로 삼는 콘텐츠는 앞으로도 계속 진화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걸맞은 답을 찾으려면, 아무래도 좀비가 무엇인지, 좀비물이 어떻게 반경을 넓혔는지부터 짚어보는 수밖에는 없다.
집단지성으로
진화한 좀비
좀비의 원형이라 할 만한 모습은 역시 ‘걸어다니는 시체’다. 이후 ‘뛰는 시체’로 진화한 좀비 형태를 보여준 영화는, 대니 보일 감독이 만든 <28일 후>다. 국내에서는 2003년에 개봉했다. 그즈음부터 좀비물은 전 세계로 바이러스처럼 뻗어나갔다.
국내에서는 좀비물이 좀처럼 맥을 추리지 못했다. 한때 홍콩 영화가 성행하며 이마에는 부적을 붙이고 양발을 동시에 굴러 콩콩 뛰어다니는 중국 요괴인 ‘강시’가 유행한 적은 있었지만.
이때 마침 파문을 일으킨 장본인이 바로 연 감독이다. 2016년 개봉한 영화 <부산행>이 1000만 관객을 삽시간에 끌어들였다. 이후 연 감독은 좀비물을 그만의 고유 장르로 소화했다.
2019년 넷플릭스가 <킹덤>을 공개하며 한국형 좀비 바이러스는 세계 곳곳으로 흘러들었다. 갓을 쓴 주인공과 상투를 튼 좀비. 시대를 덧입히자 좀비물은 독창적이고 신선한 장르로 거듭났다. 현존 최고 이야기꾼이라 수식해도 넘치지 않을 김은희 작가가 각본을 맡아 탄탄한 시리즈를 만들며 흥행을 이끌었다.
2020년부터 <#살아있다>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이 한두 해 차를 두고 개봉했다. 이때부터 K-좀비는 지지층이 있는 하나의 장르가 됐다. 오히려 좀비물이 물량 공세를 펼치기 시작한 건 아닌지 의심하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본래 좀비(Zombie)는 부두교 전설에 등장하는 주술로 움직이는 시체를 뜻하는 단어였다. 콩고민주공화국 바콩고 민족 말로 신을 뜻하는 은잠비(Nzambi) 혹은 줌비(Zumbi)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부두교 신자들은 좀비 자체보다는 ‘좀비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한다. 아이티 등 부두교를 믿는 나라에서 활동하는 비밀 결사가 가하는 형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복어나 망둑어가 갖고 있는 생물 독인 테트로도톡신을 넣은 ‘좀비 약’을 사람 피부에 바르면, 그는 거의 가사 상태에 빠진다. 일단 사람이 죽은 줄 알고 장례를 치르면 약효가 풀릴 때를 맞춰 비밀 결사가 찾아와 무덤을 연다.
무덤에 묻혀있던, 약효에서 풀려난 사람은 일어설 수 있지만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는 못한다. 이때 비밀 결사는 그에게 독말풀을 넣은 또 다른 약을 먹이고 두들겨 팬 다음 끌고 가서 좀비로 만든다. 일단 좀비가 되면 노예처럼 부려먹는다는 것이다.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니라는 점,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점에서 좀비는 공포와 가까울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왜 수많은 영화감독과 작가가 좀비에 매료되었는지 알 수 있다.
일본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를 잇는 유망한 젊은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호시노 도모유키는 연재하는 칼럼에 ‘좀비물의 기본 철칙’을 나열한 적이 있다.
가장 두려운
존재는 인간
도모유키는, 좀비물에서 가장 중요한 룰은 ‘정말 무서운 것은, 좀비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좀비로부터 도망치면서 낯선 인간끼리는 작은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커뮤니티 간 충돌이 발생하기도 하고, 공동체 안에서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때 가장 위험한 것은 의지가 없는 좀비가 아니라 타인을 수단으로 삼는 인간이라는 설명이다.
두 번째 룰은 ‘좀비는 감염된다’는 설정이라 한다. 일단 감염된 좀비는 사람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좀비가 계속 늘어나는 데 비해 인간은 점점 줄어든다. 살아가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음에도 인간은 서로를 죽이려 든다. 도모유키는 이 지점이 지금 인간군상이 보여주는 모습과 매우 닮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마지막 룰은 ‘가족이나 연인이 좀비가 되어도, 그(혹은 그것)는 이미 누군가가 알고 있던 인간이 아니라 좀비’라고 꼽았다. 그 와중에도 대개 인간은 소중한 사람이 눈앞에서 좀비가 되면, 좀비라도 지키려 든다. 도모유키는 여기서 ‘인간의 동일성이 무엇에 의해 보장되는가’라는 명제를 생각하게 한다고 했다.
이 세 가지 룰은 <군체>에서도 작동한다. 폐쇄된 건물 안에 살아남은 사람들을 구하러 가지 않는 건물 밖 사람들. 죽어가는 사람을 지켜보면서도 결코 구하러 가지 않는 생존자들. 이들이 도모유키가 꼽은 첫 번째 룰을 증명한다.
두 번째 룰 역시 <군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서영철을 인간 백신이라 생각하고는 그를 방패 삼아 구조받으려 작전을 짜고, 그를 살리려는 대신 타인을 쉽게 죽음으로 내모는 인물들. 빠르게 구조받기 위해 임무를 수행하던 일행 일부를 저버리려는 인물들. 이렇게 각자 살아남고자 발버둥 치며 커뮤니티에 소속된 일행을 한 명씩 저버린다면, 과연 마지막에 남은 인물은 혼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군체>는 세 번째 룰도 확인시킨다. 가족을 지키려다, 오히려 좀비가 된 가족에게 목숨을 잃는 인물. 그가 죽기 전까지 지키려던 것은 무엇일까? 그가 노력한 시간은 모두 헛수고라 할 만한가? 이런 물음표들이 줄을 지어 떠오른다.
도모유키는 글 마지막에 스스로가 ‘인간임과 인간이 아님의 경계에 상당히 끌리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무엇을 기준으로 인간이라고 부를 것인지 고민하다 보면, 역시 좀비라는 설정 혹은 장치와 맞닿는 어느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포칼립스서 주인공으로 살아남기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계기
인간을 닮았으나 인간은 아닌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진짜 인간을 미워하기보다 훨씬 편안하다. 직장 상사를 욕하기보다 스크린과 모니터 안에서 삐거덕거리며 움직이는 좀비에 대고 삿대질하는 편이 덜 해롭기에. 다들 그렇게 좀비에 빠져든다.
도모유키가 나열한 세 가지 룰이 아니라도 좀비물은 매력을 발산하는 장치를 몇 개 더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는 멸망하는 세계관, 즉 아포칼립스다. 대중문화에서 아포칼립스는 요한 묵시록에 등장하는 종말 이미지와 맞물려 세계의 멸망, 세기의 멸망(종말), 대재앙이나 재난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영화 안에서 인물들은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하며 삶을 이어나간다. 이들 중 살아남는 자는 오직 주인공뿐이다.
누구나 각자의 삶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는다. ‘나’를 중심으로 일상이 펼쳐지고 주변인이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렇다 해도 현실에서 진짜 주인공이 되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이다.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등장인물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이 등장인물들은 절대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세상 따위가 망해버리기를 한두 번쯤은 소망한다. 그 상상력으로 지은 멸망하는 세계에서는 등장인물 역할을 벗고 주인공 옷을 입길 꿈꾼다. 주인공은 그 꿈 속에서 사람을 닮았으나 사람은 아닌 좀비를 무찌르고 영웅이 된다.
인간이 신이 되고자 하고, 영웅이 되고자 하는 욕망은 신화와 전설이 구전되던 때부터 이어져 왔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플루타르코스가 카이사르, 알렉산드로스 대왕, 폼페이우스 등 고대 영웅을 서술한 전기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아직도 플롯을 공부하는 작가와 영화감독에게 교과서처럼 여겨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군체> 막바지에 다다른 주인공은, 좀비만 아니었다면 결코 연대할 리 없는, 건물 밖 사람과 합심해 적을 무찌른다. 괜찮은 사람이 주인공이 되어 마지막에 믿을 구석이라고는 비슷하게 괜찮은 다른 사람밖에 없다는 뜻인 걸까 싶기도 하지만. 어쩌면 연 감독은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연 감독이 <군체>에 권선징악을 추구하는 계몽을 섞은 것은 아니다. 좀비가 만든 아포칼립스에서는 악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목숨을 잃는 데 마땅한 이유가 없다. 좀비 바이러스를 옮거나 옮기는 방식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다를 바 없다.
좀비물 매력
세 가지 룰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는 어떻게 구분하는가. 인간다움은 무엇에 의해 유지되는가. 좀비물을 보며 이런 질문들에 답하다 보면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진다. 어떻게 살 것인가. 관객과 독자가 이 근원적인 문제에 당도하는 상황을 지루하지 않게 지속해서 만들어낼 수 있다면, 좀비는 다양한 콘텐츠 안에서 꾸준히 진화해 나갈 것이다.
<younm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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