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웅익 더봄] ‘당기시오’ 문구 뒤에 숨은 위험···비상구는 왜 잠겨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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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웅익 더봄] ‘당기시오’ 문구 뒤에 숨은 위험···비상구는 왜 잠겨 있나

여성경제신문 2026-06-01 10:00:00 신고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 /그림=손웅익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 /그림=손웅익

우리 동네에 멋진 박물관이 생겨서 구경 간 적이 있다. 주로 어린이들이 많이 오는 시설이다. 시설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중 비상계단이 잠겨있는 것을 발견했다. 1개 층만 그런가 하고 다른 층에도 가 보았지만 모두 잠겨있었다. 비상계단은 말 그대로 비상 상황에 대비해서 안전하게 대피하라고 만들어 둔 계단이다.

관리 사무실에 가서 담당자에게 비상계단이 잠겨있다고 했더니 화재가 발생하면 중앙통제실에서 자동으로 문을 열어준다고 하면서 평소에는 관리상 문을 잠가둔다는 것이었다. 비상계단은 말 그대로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피난할 수 있는 계단인데 비상상황은 화재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고 주장해도 소용이 없었다. 만에 하나 실내에서 흉기 난동이 발생한다면 가까운 비상계단으로 피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결국 소방서에 전화해서 그 전시시설의 비상계단 관리에 대한 위험성을 직접 조사해 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조사를 마친 후 건축법에는 어긋나는 것이 없으므로 지금처럼 관리하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는 소방서 담당자의 연락을 받았다. 나도 평생 건축을 했는데 건축법에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법이 문제가 아니라 실제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비상계단이라고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대로 넘어갈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며칠 후 시설 책임자로부터 내가 제기한 문제를 잘 인식했다는 답변과 함께 자유로이 비상계단을 이용하게 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건물의 출입문에 ‘당기시오’라는 문구를 볼 때도 마음이 불편하다. 들어가든 나가든 진행 방향대로 문을 밀고 가면 자연스러운데 가던 방향과 반대로 문을 당기라고 하니 불편한 것이다. 출입문의 경우 특히 안쪽 실내 방향으로 당기게 되어 있는 경우는 갑자기 밖으로 열었을 때 외부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부딪히는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려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문은 피난 방향으로 열려야 한다는 원칙에 어긋난다. 화재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급히 외부로 피난해야 할 때 문이 안으로 잡아당기게 되어 있다면 상당히 위험하다. 특히 대량의 인원이 한꺼번에 피난하는 경우 문을 실내 방향으로 당기는 것은 위험하다. 문을 당겨 열기 전에 뒤쪽에서 사람들이 밀려온다면 그야말로 대형 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다.

덕수궁 석조전 /그림=손웅익
덕수궁 석조전 /그림=손웅익

그런데 이렇게 피난 방향으로 모든 문이 열려야 한다는 원칙에 반하는데도 그냥 묵인하고 넘어가는 시설이 있다. 은행 출입문이다. 모든 은행 출입문은 안쪽으로만 열리게 되어 있다. 추측하기에 은행 강도가 쉽게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과거에 이런 발상을 누가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직도 이런 문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놀랍다.

은행 업무를 마치고 나가는 사람들은 습관대로 문을 밖으로 밀었다가 열리지 않자 다시 당기는 모습을 보게 된다. 지금은 은행의 안전장치가 완벽하고 CCTV도 거미줄처럼 깔려있는 세상이다. 오히려 강도가 든 비상 상황을 가정한다면 출입문 근처에 있는 고객들이 쉽게 대피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나의 이런 논리를 아무리 주장해도 문 여는 방향을 바깥 방향으로 바꾸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하니 답답해진다.

어떤 경우는 문이 너무 무거워 힘이 약한 노인이나 어린이들은 아예 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에 있는 아모레퍼시픽 사옥도 그런 경우다. 세계적인 건축가가 설계했다고는 하나 힘이 약한 노인이나 어린이들은 보호자를 함께 데리고 화장실에 가야 한다. 화장실 출입문이 무거워 밀고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건축가들이 자기 디자인에 매몰된 탓에 범하는 사소하지 않은 오류라고 할 것이다.

피난 방향 원칙= 건축물에서 재난 발생 시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경로를 뜻하며, 소방안전 규정상 출입문은 피난하는 사람들이 밀고 나갈 수 있는 방향으로 개폐되도록 설계하는 것이 기본이다.

여성경제신문 손웅익 건축사·수필가
wison777@naver.com

손웅익 건축사·수필가 

한양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오랜 기간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해 온 환경·생태 전시 설계 전문가로 코엑스아쿠아리움 부사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건축가의 여행스케치> , <건축가의 아침산책> , <작은집이야기> 등이 있으며, 일상에서 접하는 건축물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글로 풀어낸다. 점차 잊혀가는 마을과 도시의 풍경을 스케치와 글로 남기는 작업을 지속하며 도시의 기억을 기록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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