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문영서 기자】 반도체 업황 활황에 국내 증시가 가파른 속도로 ‘팔천피’를 돌파하자 증권업계에서는 1만 포인트 달성 가능성도 높게 점치고 있다. 증시로의 대규모 머니무브가 이어지면서 금융권은 예금금리 인상, 지수연동예금(ELD), 고금리 파킹통장 등으로 대응에 나선 모습이다.
1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예금은행 원화예금 중 정기예금의 말잔 기준 잔액은 지난해 11월 1124조3224억원에서 올해 3월 1099조4574억원까지 줄었다. 코스피지수가 최근 꾸준히 최고치를 경신하며 주식투자가 활발해지자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고객 유치에 나서며 금리를 올리고 있는 가운데, 투자자예탁금은 꾸준히 올라 같은 기간 77조9119억원에서 110조2889억원 수준까지 늘었다.
여기에 증권사가 파산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원금 보장이 약정된 IMA(종합투자계좌)까지 등장하며 은행권으로서는 수익성 보전을 위한 방법이 필요한 상황이다.
ELD, 2년 새 판매 6배…증시 활황이 낳은 역설
은행권이 앞다퉈 내놓는 상품 중 하나는 지수연동예금(ELD)이다. KB국민·신한·하나·NH농협 4개 은행의 ELD 연간 판매액은 2023년 2조2303억원에서 2025년 12조3338억원으로 2년 새 크게 늘었다.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사태 이후 은행권 ELS 판매가 대부분 중단된 공백을 원금이 보장되는 ELD가 빠르게 채운 결과로 볼 수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이효섭 선임연구원은 “증권사로의 머니무브와 더불어 ELS 규제가 강력해지며 판매가 어려워진 점 등이 ELD 판매 증가에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LD는 예금 원금의 대부분을 채권에 운용하고 나머지를 KOSPI200 등 주가지수 옵션에 투자하는 구조다. 원금은 만기까지 보유하면 보장되고,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1억원까지 보호된다. 수익률은 지수 흐름에 따라 최대 연 10%까지 기대할 수 있다. ELS와 달리 지수 급락 시에도 원금 손실이 없어 안정성을 중시하는 투자자들에게 선호된다.
다만 증시 활황기에는 구조적 함정이 있다. 주요 상품에 탑재된 ‘낙아웃(Knock-out)’ 조건이 문제다. 가입 기간 중 지수가 은행이 정한 기준, 통상 20~25% 상승을 단 한 차례라도 초과하면 고금리 약정은 소멸되고 일반 정기예금 수준의 낮은 이율만 적용된다. 지수가 급등할수록 고수익 기회가 오히려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가파른 장세에서는 낙아웃 배리어가 넉넉한 상품, 즉 기준 상승률이 25~30% 이상으로 설정된 상품을 선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코스피가 크게 오르면서 기준점인 20~25%를 넘어 고금리 약정이 소멸한 사례도 적지 않게 나타났다. 코스피는 지난 1년간 75% 넘게 상승했으며, ELD 수익률 확정 기준 지수로 활용되는 KOSPI200 역시 상반기 대비 기준점(15~20%)을 모두 웃돌며 정기예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저 수익률로 낙아웃된 것이다.
현재 연간 코스피 밴드 상단 역시 기존 8000선에서 1만 포인트 이상까지 상향 조정되고 있어 추가 낙아웃 위험 또한 존재한다.
파킹통장, 대기성 자금 쟁탈전으로
정기예금을 이탈한 자금 일부는 증시에 직행하지 않고 요구불예금에 머물고 있다. 요구불예금이란 예금주가 원할 때 언제든지 조건 없이 입출금할 수 있는 은행 예금으로, 언제든 빠질 수 있는 부동자금이 늘고 있다는 의미다. 이를 붙잡기 위해 저축은행권을 중심으로 파킹통장 금리 인상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주요 저축은행들은 최고 7.00%까지 금리를 인상했으며, 한도 확대와 우대조건 완화도 병행하고 있다.
파킹통장은 수시 입출금이 가능하면서도 일반 입출금 통장(연 0.1% 내외)보다 훨씬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상품이다. 증시 대기 자금의 임시 거처로 기능하며, 투자 타이밍을 재는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활용도가 높다. 예금자보호 한도(1억원) 내에서 원금 보장이 되는 것도 강점이다.
시중은행 역시 화장품이나 이커머스 등과 결합한 파킹통장과 모임통장 등으로 고객을 묶어두려는 시도를 진행 중이다. 신한은행은 CJ올리브영과 협업한 ‘올리브영 SOL 통장’을 출시했고, 우리은행은 ‘Npay 머니 우리 통장’의 조기 흥행을 성공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나은행 역시 모임 자금 관리 기능을 강화한 ‘하나모임통장’을 출시하고 나섰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현재 자금이 단기화되는 경향이 강해 단기자금 변동성이 강한 상황”이라며 “그런 단기자금을 잡으려는 의도로 파킹통장 등의 상품이 주목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퇴직연금 자금도 가세…파생결합사채 발행 95조 육박
다만 은행권으로서는 유동성 자금뿐만 아니라 퇴직연금 또한 지켜야 하는 상황이다. 퇴직연금 시장에서 증권사로의 자금 이동이 가속화되면서 퇴직연금 시장에서 증권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26.2%로 전년 대비 약 2%포인트 증가한 반면 은행과 보험사의 비중은 감소하는 흐름을 보였다.
파생결합증권·사채 시장 역시 회복세를 보였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5년 파생결합증권·사채 발행·운용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발행액은 94조9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1조3000억원 증가했다. 발행잔액은 95조1000억원으로 2023년 말 수준을 회복했다.
증가세를 이끈 것은 파생결합사채다. 지난해 파생결합사채 발행액은 69조1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5조6000억원 늘었다. 이 가운데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가 47조5000억원, 기타파생결합사채(DLB)가 21조6000억원을 차지했다. 인수 주체별로 보면 퇴직연금이 31조4000억원으로 전체의 45.4%를 차지했다. 퇴직연금 운용 규정상 원금비보장형 상품 편입이 제한되는 만큼, 원금이 지급되는 파생결합사채로 자금이 집중된 결과다.
ELB는 증권사가 발행하는 원금 보장형 채권으로, 주가지수나 개별 종목 수익률에 연동해 이자가 결정되는 구조다. ELD와 수익 메커니즘은 유사하지만 은행 예금이 아닌 증권사 채권인 탓에 예금자보호법 적용 대상이 아니지만 증권사가 파산하지 않는다면 원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 DLB는 금리·신용 등 주가 외 지표에 연동되는 원금 보장형 사채다. CMA는 수시 입출금이 가능한 증권사 계좌로, 증권사 버전의 파킹통장으로 활용된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는 세제 혜택을 앞세워 은행·증권사 양쪽에서 가입 유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Copyright ⓒ 투데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