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선거 2.0] ① "투표소까지 수백~수천㎞"…200만 유권자의 잃어버린 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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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선거 2.0] ① "투표소까지 수백~수천㎞"…200만 유권자의 잃어버린 한표

연합뉴스 2026-06-01 08:30:01 신고

3줄요약

투표소까지 차로 왕복 10시간·생업 지장…"참정권인가 고행인가"

공관 투표 방식 고수로 14년째 10% 밑도는 투표율, "그림의 떡인 셈"

동포사회 "선진국 우편·전자 투표 도입…IT 강국이 미룰 일 아냐"

[※편집자 주 = 재외국민의 참정권 제한이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아 2012년부터 대선과 총선에서 실시해온 재외선거가 시행 14년째를 맞았지만 현장에서는 물리적 제약으로 낮은 투표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투표를 위해 하루 또는 이틀 생업을 포기하고 비행기 또는 자동차로 10시간을 달려가 재외공관에서 투표해야 하는 현행 제도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2028년 제23대 국회의원 선거에 더 많은 재외 유권자 참여를 일궈내기 위해서는 늦어도 올해 안에 법 개정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연합뉴스는 현행 제도의 문제점과 해외 사례, 개선 방안 및 전문가 제언 등을 담은 기획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제21대 대선 재외선거에서 투표하는 유권자들 제21대 대선 재외선거에서 투표하는 유권자들

중국 베이징 주중대사관에 마련된 제21대 대통령 재외선거 투표소에서 한인들이 투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강성철·박현수 기자 = "미국 뉴멕시코주나 애리조나주 투산 등에서 재외선거에 참여하려면 투표소가 있는 LA 총영사관까지 800㎞를 이동해야 합니다. 왕복 항공료에 최소 1박 이상의 숙박비·식비를 포함하면 1인당 20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들죠. 더욱이 투표일이 평일이라 직장이나 자영업을 며칠 중단해야 하므로 '한 표 던지려다가 한 달 생활비와 직장까지 날리게 생겼다'는 푸념이 안 나올 수 없습니다."

"호주 서부인 퍼스에서 투표하려면 시드니까지 비행기로만 왕복 10시간 걸립니다. 시차와 비행편을 고려하면 최소 2박3일 일정으로 움직여야 하므로 매번 고민하다가 포기하고 있죠."

"브라질 내륙인 마나우스에 사는데 공관이 있는 상파울루까지 3천900㎞ 거리라 자동차로 가려면 쉬지 않고 56시간을 운전해야 합니다. 더욱이 남미 특유의 열악한 치안으로 장거리 이동 시 범죄 표적이 될 위험이 있어서 투표소로 향하려면 죽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아프리카 섬나라 모리셔스에서는 공관이 있는 이웃 섬나라인 마다가스카르까지 1천100㎞를 비행기나 선박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재외선거요? 저희에겐 '그림의 떡'입니다."

대선과 총선 등에 실시되는 재외선거는 해외 거주 유권자가 주권을 행사할 소중한 기회지만, 현행법상 '지정된 재외공관 또는 일부 추가 투표소'에 직접 방문해야 하는 공관투표 원칙 때문에 수많은 유권자가 물리적·시간적 한계로 투표를 포기하고 있다.

국내와 달리 해외 현지는 투표일이 임시공휴일이 아니며 영토가 넓은 국가나 인프라가 열악한 개발도상국에서는 단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수백만 원의 비용과 며칠의 본업 공백뿐만 아니라 이동 중에 범죄와 맞닥뜨릴 위험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재외투표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재외투표

2024년 3월 제22대 총선 재외 국민투표가 시작된 가운데 한 유권자가 일본 도쿄 총영사관에 마련된 재외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낮은 투표율·고비용…'재외선거 무용론'도 등장

재외선거는 200만 재외 유권자에게 선거권을 부여해 참정권 확대와 권익 향상이라는 긍정 효과를 가져왔지만, 낮은 투표율과 고비용으로 무용론도 나오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통계에 따르면 전체 재외 유권자 기준으로 실질 투표율은 대선의 경우 7∼10%에 그치고 있다. 최고로 높았던 것이 2017년 대선으로 10.9%였다. 그나마 대선은 대통령을 뽑는 거라 재외국민에게도 관심과 인지도가 높지만,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의 경우는 정당 투표라 투표율은 2∼4%에 그치는 실정이다.

코로나 시기였던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공관에 투표소를 개설하지 못한 곳도 많아서 투표율이 1.9%에 불과했다.

비용도 문제다. 재외선거는 전 세계 공관에 투표소를 설치하고, 선거 관리 인력을 파견 및 고용하며 투표용지를 외교행낭으로 안전하게 국내에 이송해야 하므로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와 선관위의 자료 등에 따르면 '투표자 1인당 비용'은 국내 선거의 경우 2천∼7천원 안팎이다.

반면 재외선거의 경우 최소 10만∼15만원이 드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재외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하게 하는 데 드는 비용이 국내 선거와 비교해 최소 20배에서 최대 50배 이상 높게 나온다. 코로나 시기에는 투표자 수가 급감해 1인당 투표 비용이 수십만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선거 때마다 수백억 원의 세금이 투입되는 데 비해 투표율은 저조해 '이 제도를 계속 유지해야 하느냐'는 무용론이 나온다.

일부 여론에서는 국내에 거주하지 않아 납세의 의무를 지지 않는 재외 영주권자들이 한국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아 국내 정책에 영향을 주는 것이 합당하냐는 불만도 나온다. 특히 선거 결과가 국내 표심과 다르게 흘러갈 때 이러한 감정적·논리적 대립은 심해지고 있다.

무용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투표 방식을 바꾸지 않을 거라면 차라리 폐지하라'고 말한다. 거리상 제한 등으로 인한 저조한 투표율을 높이려면 우편투표나 전자투표를 도입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법 개정조차 안 되고 있어서다. 결국 '돈은 돈대로 쓰고, 멀리서 사는 재외국민은 투표도 못 하는 구조'가 14년째 반복되다 보니 제도 차제에 대한 회의감이 커진 상황이다.

21대 총선 55개국 91개 재외공관 선거업무 중단 21대 총선 55개국 91개 재외공관 선거업무 중단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2020년 3월 30일 기준으로 주미대사관 등 40개국 65개 재외공관의 재외선거사무를 중단했고 최종적으로는 55개국 91개 공관으로 늘어났다. [연합뉴스 그래픽 자료]

◇ 14년째 현장 투표 고수…"포기 강요하는 제도 개선해야"

그간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선거 때마다 신고신청을 해야 하는 수시명부제에서 직전 선거의 명부 등재자는 신고할 필요가 없도록 하는 영구명부제가 도입됐다. 또 관할구역의 재외국민 수가 3만명 이상인 경우 추가로 재외투표소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투표의 편의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투표율 증가는 미미한 수준이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코로나로 인해서 최종적으로 55개국 91개 공관에서 선거사무가 중지됐고, 36개 공관은 투표 기간을 단축 운영했다.

이처럼 전염병이나 자연재해 또는 전쟁·테러 등으로 공관투표 자체가 불가능해질 경우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도 현 제도의 한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동포사회는 선거법 개정을 통한 우편투표 또는 전자투표 도입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주요 선진국에서 이미 우편·전자 투표 중 하나를 시행하고 있거나 양쪽을 다 도입한 경우도 있는데 'IT 강국'인 대한민국이 보안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계속 미루고만 있는 것인 '직무 유기'라는 지적이다.

고상구 세계한인총연합회 회장은 "재외국민이 투표를 포기하는 이유는 생업이나 직장을 비우기 어려운 시간·거리의 한계, 비행기 푯값이나 숙박 등 투표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적 한계에다가 개발도상국의 경우 도로·교통이 나쁜 인프라와 치안의 한계도 맞물려 있다"며 "지난 14년간 이러한 제도상의 문제가 드러났고, 반복되고 있었으므로 투표 방식의 다양화를 검토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단 한 명의 국민이라도 참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국민의 혈세를 효율적으로 집행해야 한다'는 현실 사이에서 적절한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기존의 선거제도 방식으로는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이다.

이진영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무용론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제도를 없애는 것보다, 안전성이 담보된 우편투표 또는 전자투표 등 접근성을 높이는 법 개정이 선행되어야 비로소 가성비와 가치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외투표용지 등기우편 접수하는 관계자 재외투표용지 등기우편 접수하는 관계자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인천국제공항 국제우편물류센터에서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들이 국내로 회송된 재외투표지를 국내 등기우편 접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wakar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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