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들의 잔혹한 첫사랑, '엔조'와 '뒷자리에 태워줘'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소년들의 잔혹한 첫사랑, '엔조'와 '뒷자리에 태워줘'

엘르 2026-05-31 23:29:27 신고

첫사랑의 정의를 두고 합의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특히 시점이 그렇다. '첫 짝사랑' 파와 '첫 연애' 파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처음 사랑 때문에 눈물을 흘렸거나 최초로 '사랑해'라는 말이 나온 순간의 상대를 첫사랑으로 간주하는 경우도 있다. 분명한 건 첫사랑이 인생 처음으로 인지한 이상적 존재라는 사실이다. 보편적으로 말하자면 한 인간의 삶에 성애적 관점이 점등된 때를 첫사랑으로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새로운 인지를 시작한 인간은 어떤 모습이든 변화한다. 영화 〈엔조〉와 〈뒷자리에 태워줘〉는 두 퀴어의 첫사랑으로 이 탈피의 과정을 묘사하고, 또 다음을 상상하게 한다.


영화 〈엔조〉

영화 〈엔조〉


〈엔조〉는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열여섯 소년 엔조(엘로이 포후)의 이야기다. 석공이 되고 싶다며 방과 후 현장으로 향해 벽돌을 쌓고 깎는 엔조의 속내는 복잡하다. 엔지니어 어머니와 교사 아버지, 명문대 입시를 준비하는 형은 물론이고 수영장 딸린 언덕 위 저택까지 못마땅하다. 가족과 학교의 보호 속에서 인생의 전부를 보낸 엔조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게 다 '가짜'로 보인다. '진짜'는 언덕 아래 공사판에 있는 것만 같다. 굳은살에 생채기가 생길 걸 알면서도 장갑을 끼지 않으려는 엔조의 고집이 괴롭게 느껴지는 건, 실체 없는 '진짜'에 집착하는 미성숙함이 언젠가의 나도 경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다 불만 투성이인데 도무지 반항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그 시절 말이다.


영화 〈엔조〉

영화 〈엔조〉


엔조가 프랑스에서 평화롭고 특별할 것 없는 사춘기를 보내는 와중에 우크라이나는 수 년 째 전쟁 중이다. 공사장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출신 인부들이 징집 이야기를 주고 받는 사이에서 엔조는 스스로가 더 초라하게 느껴진다. 또래 친구들처럼 여자에게도 관심을 둬 봤지만 공사장의 땀과 우크라이나의 포화 만큼 엔조를 매료하지 못한다. 그래서 엔조는 우크라이나 인부 블라드(막심 슬리빈스키)에게 이끌린다. 풍기는 땀 냄새와 뭐든 자유롭고 능숙해 보이는 행동은 엔조가 처음으로 진심을 담은 '진짜'고 '이상'이다. 존경과 동경이 낯선 설렘과 섞여 완성된 엔조의 감정은 끝났을 때야 비로소 '첫사랑'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엔조〉는 청소년보다 가끔 지나온 미성숙의 계절들을 잊은 어른을 위한 영화다. 돌아보지 않으면 그 이름을 온전히 획득할 수 없는 첫사랑의 처절했던 기억들을 부끄럽도록 되살린다.


〈뒷자리에 태워줘〉의 주인공 콜린(해리 멜링)은 엔조처럼 수 틀리면 어디서든 자리부터 뜨고, 진짜와 가짜에 집착하는 인물은 아니다. 외모도 직업도 평범한 그는 가슴 뛰는 연애는 커녕 이상형인 남자를 만난 적도 없다. 일단 연애를 시작해보려 해도 도무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부터 막막하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는 아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기 위해 짝을 찾아 주려 하지만 늘 상대가 콜린의 성에 차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콜린은 펍에서 한 남자를 보게 된다. 남녀노소 누가 봐도 잘생기고 섹시한 바이커 레이(알렉산더 스카스가드)다. 내성적인 콜린이 흘끔거리기만 하는 사이, 레이가 그에게 다가가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적은 쪽지를 건넨다.


영화 〈뒷자리에 태워줘〉

영화 〈뒷자리에 태워줘〉


여기까지는 완벽한 외모에 적극적이고 성격까지 쿨해 보이는 남자가 모든 것이 평범한 남자에게 반해 사랑을 한다는 로맨스 소설 같은 진행을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다. 레이는 대뜸 콜린을 으슥한 골목으로 데려가 바지부터 내린다. 약속을 할 필요가 있는 일이었나 싶을 정도로 과감한(?) 전개에 당황한 건 관객 뿐이 아니다. 둘은 가까워지지만 일반적인 연인보다는 주종관계에 가깝다. 첫사랑을 BDSM으로 시작한 콜린에겐 그게 유일한 정답이다. 레이가 문자로 지시하는 가사를 도맡지만 침대에서 같이 잘 수는 없다. 바이커 남자친구를 위해 어울리지 않는 삭발에 바이커 자켓까지 입어 보지만 그는 콜린의 질문 한 번을 제대로 받아주지 않는다. 콜린의 취침 시간도, 기상 시간도 전부 레이가 결정한다. 콜린은 스스로 무리하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도 레이가 열어 준 새로운 세계에 영원히 머무르고 싶다.


영화 〈뒷자리에 태워줘〉

영화 〈뒷자리에 태워줘〉


〈뒷자리에 태워줘〉는 부모의 자동차 뒷자리에서 레이의 바이크 뒷자리로 옮겨 탄 콜린이 앞으로 어떤 사랑을 하게 될 것인지에 주목한다. 레이의 영화 속 묘사는 매우 불친절한데, 관객은 오로지 콜린의 시선으로만 그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레이는 사랑을 믿지 않는 쾌락주의자처럼 보이지만 진짜 그런 인물인지는 누구도 알 도리가 없다. 그래서 〈뒷자리에 태워줘〉는 콜린이 이 지독한 연애를 통해 자신을 찾기 시작한 후의 시점에서 반추한 첫사랑 이야기로 보인다. 다소 일방적이기까지 한 콜린의 기억 속 레이는 돌아봤을 때 비로소 이름을 가질 수 있는 첫사랑이었다. 콜린이 결국 어떤 질주를 하게 됐는지 확인하기까지 예고 없이 수많은 알궁둥이를 봐야 한다는 점에 주의하자.


관련기사

Copyright ⓒ 엘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