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파인다이닝 업계는 작은 곤충 하나 때문에 시끄러워졌다. 한 레스토랑이 허가되지 않은 개미를 식재료로 사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식의 실험인가, 식품 안전의 문제인가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한국에서는 현재 식용이 가능한 곤충 10종이 지정되어 있지만 개미는 그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개미를 먹는다는 발상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덴마크의 레스토랑 노마(Noma)는 이미 오래전부터 개미를 식재료로 사용해왔다. 셰프들은 개미가 가진 독특한 산미를 레몬이나 식초 대신 사용할 수 있는 향신료로 해석했고, 개미는 혐오의 대상이 아닌 미식의 재료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곤충이 미래 식량이라는 이야기는 내가 어릴 때부터 꾸준히 들려오던 미래 예측 중 하나였다. 언젠가는 인류가 메뚜기를 먹고, 밀웜으로 만든 단백질을 섭취하며, 곤충 농장이 축산업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들. 하지만 정작 내가 먹어본 벌레라고는 어린 시절 종이컵에 담긴 국물 번데기 정도가 전부다. 미래는 온다고 했지만, 우리의 식탁은 생각보다 천천히 변해왔다. SF 영화들이 상상한 미래 음식 역시 단순히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영화는 곤충을 거대한 산업으로 만들었고, 어떤 영화는 인간을 식량으로 만들었으며, 어떤 영화는 음식을 데이터로 변환했다. 그리고 어떤 영화는 음식 자체보다 음식의 이미지만 남은 미래를 상상했다. 미래 음식에 대한 SF 영화들의 상상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우리는 미래에 무엇을 먹게 될 것인가. 그보다 먼저, 우리는 미래에도 여전히 음식을 음식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바퀴벌레와초밥사이
설국열차 (2013)
바퀴벌레로 만든 단백질 양갱 | 이미지 출처 : 영화 캡쳐, 설국열차 2013
지구가 얼어붙은 미래. 살아남은 인류는 단 하나의 열차 안에서 끝없이 지구를 순환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열차 안에는 분명한 계급이 존재한다. 열차의 가장 뒤칸, 꼬리칸 승객들이 하루를 버티기 위해 받아 드는 것은 검은색 단백질 블록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모른 채 입에 넣고 씹는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 커티스가 식품 생산 구역에 도착하면서 진실이 드러난다. 거대한 통 안에서 꿈틀거리는 바퀴벌레들이 갈려 검은 블록으로 압축되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곤충 자체가 아니다. 열차의 앞칸으로 갈수록 풍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사람들은 와인을 마시고, 스테이크를 썰고, 수조에서 갓 건져 올린 생선으로 초밥을 먹는다. 같은 재난을 겪고, 같은 열차 안에서 살아가면서도 누군가는 초밥을 먹고, 누군가는 생존을 위한 단백질 블록을 먹는다. 설국열차가 상상한 미래는 곤충을 먹는 사회가 아니라, 식량이 충분함에도 누구는 풍요를, 누구는 생존만을 허락 받는 사회다. 영화는 미래 음식의 문제가 기술이 아니라 분배의 문제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쩌면 미래의 식탁은 지금보다 더 풍요로워질지 몰라도, 그 풍요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곤충이 지탱하는 식탁
블레이드러너 2049 (2017)
단백질 농장 | 이미지 출처 : 영화 캡쳐 , 블레이드러너2049 2017
‘설국열차’에서 곤충은 계급의 음식이었다. 가장 아래 계층이 살아남기 위해 억지로 삼켜야 하는 생존 식량이었으나, ‘블레이드 러너 2049’ 영화 속에서 곤충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2049년의 지구는 이미 생태계가 붕괴된 뒤의 세계다. 동물은 대부분 사라졌고, 진짜 나무와 진짜 벌은 희귀한 존재가 되었다. 살아있는 생명체 자체가 부의 상징이 된 시대. 영화 초반, 주인공 라이언 고슬링 K는 외딴 단백질 농장을 찾는다. 거대한 시설 안에서는 더 이상 소나 돼지를 키우지 않는다. 그곳에서 생산되는 것은 곤충 혹은 벌레 형태의 단백질이다. 영화는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식탁에 오르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지만, 관객은 이미 식탁 뒤편의 세계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된다. 여기서 곤충은 ‘설국열차’의 바퀴벌레처럼 혐오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석유나 철강처럼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 산업에 가깝다. 한때 미래 식량에 대한 실험으로 여겨졌던 곤충은 이제 문명을 유지하는 인프라가 된다. 아이러니한 점은 그렇게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음에도 사람들의 식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거리의 누들바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모여 앉아 국수를 먹고, 뜨거운 국물에서 김이 오른다. 영화 곳곳에는 식욕을 자극하는 거대한 홀로그램 광고들이 도시를 뒤덮고 있지만, 정작 그 화려한 이미지 뒤에서 실제 식량은 곤충과 인공 단백질에 의해 생산된다. 곤충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단백질로 가공되고, 산업 시스템 속으로 흡수된다. ‘블레이드 러너 2049’가 보여주는 미래는 곤충을 먹는 사회가 아니라, 곤충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사회다. 식탁 위의 음식은 여전히 익숙한 모습이지만, 그 식탁을 지탱하는 생산 시스템은 이미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되어버렸다.
굶주림의 마지막 금기
소일렌트 그린 (1973)
소일렌트 그린의 배급 식료품 | 이미지 출처 : 영화 캡쳐, Soylent Green 1973
1973년에 개봉한 ‘소일렌트 그린(Soylent Green)’은 미래 식량의 가장 오래된 악몽을 보여주는 디스토피아 영화 중 하나다. 영화가 상상한 2022년의 뉴욕은 인구 과잉과 기후 재난으로 붕괴 직전에 놓여 있다. 바다는 오염됐고 농업은 무너졌으며, 사람들은 더 이상 고기와 채소, 과일을 일상적으로 먹지 못한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거대 식품기업이 생산하는 소일렌트 그린이라는 배급 식품으로 연명한다. 식량 배급일이 되면 사람들은 거리로 몰려들고, 경찰은 폭동처럼 번지는 군중을 통제한다. 음식은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라 생존권이자 권력이 된다. 반면 신선한 고기와 채소는 극소수만 누릴 수 있는 사치품이 된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처음으로 진짜 채소와 고기를 마주하는 장면은 거의 종교적 체험처럼 묘사된다. 그만큼 자연 식재료가 사라진 세계인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미래 식탁에 대한 상상 중 가장 섬뜩한 진실이 밝혀진다. 소일렌트 그린의 원료는 바다 플랑크톤이 아니라 인간의 시신이었다. 식량 부족이 극단에 이르자 사회는 인간을 다시 인간에게 먹이는 시스템으로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수십 년 뒤 현실에는 소일렌트라는 이름의 식사 대용 음료 브랜드가 등장했다.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이 제품은 요리와 식사를 최소화하고 필요한 영양소를 한 번에 섭취한다는 개념으로 주목받았다. 물론 영화 속 식품과는 전혀 다른 제품이지만, 음식의 즐거움보다 효율을 우선한다는 점에서 묘한 연결고리를 가진다. '소일렌트 그린'이 보여주는 공포는 단순한 식인이 아니다. 음식은 더 이상 문화가 아니다. 식탁은 사라지고, 식량은 배급되며, 자연 식재료는 부자의 특권이 된다. 영화가 상상한 최악의 미래는 굶주림이 아니라 인간이 결국 자신을 먹이로 삼게 되는 세계다.
먹고, 일하고, 다시 먹힌다
클라우드 아틀라스 (2012)
비누를 마시는 손미451 | 이미지 출처: 영화 캡쳐, Cloud Atlas 2012
‘클라우드 아틀라스(Cloud Atlas)’의 미래 도시 네오 서울은 ‘소일렌트 그린'보다 더 차갑고 효율적인 세계다. 거대한 기업이 사회를 통제하는 미래 도시에서 복제인간인 '패브리컨트(Fabricant)'들은 패스트푸드 체인점의 직원으로 태어나 정해진 수명이 다할 때까지 같은 일을 반복한다. 배두나가 연기한 손미-451 역시 그들 중 한 명이다. 그녀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솝(Soap)'이라고 불리는 액체 식량을 마신다. 비누라고 적힌 용기에 담긴 이 음료는 음식이라기보다 연료에 가깝다. 맛이나 향, 식사의 즐거움은 중요하지 않다. 시스템이 요구하는 것은 생산성을 유지할 만큼의 에너지뿐이다. ’소일렌트 그린’이 배급 식량의 시대를 상상했다면,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식사 자체가 액체 연료로 대체된 세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는 더 끔찍한 진실을 숨기고 있다. 패브리컨트들은 언젠가 '승천(Ascension)'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얻게 될 것이라고 믿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자유가 아니라 처리 시설이다. 그리고 그들의 몸은 분해되어 다시 솝의 원료가 된다. 그 순간 영화는 단순한 SF를 넘어선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완전히 사라진다. 패브리컨트는 노동자가 되고, 상품이 되고, 결국 식량이 된다.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던 시스템은 사실 처음부터 그들을 소비하기 위해 설계되어 있었던 셈이다. ‘소일렌트 그린’이 식량 부족 때문에 인간을 먹게 되는 사회를 상상했다면,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효율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결과 인간을 재활용하는 사회를 상상한다. 이 세계에서 음식은 더 이상 식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움직이기 위해 공급되는 연료이며, 동시에 인간 자신이다.
음식은 다운로드 될 수 있을까
스타트렉:TNG (1987)
음식 생성 리플리케이터 기계 | 이미지 출처 : 영화 캡쳐 ,Star Trek TNG 1987
앞서 소개한 영화들이 식량 부족과 효율의 악몽을 상상했다면, ‘스타트렉’은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세계에서 음식은 부족하지도 않고, 누군가의 희생 위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인간은 식량 생산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것처럼 보인다. 우주선 안에는 '리플리케이터(Replicator)'라는 장치가 있다. 원하는 음식을 말하면 즉시 만들어주는 기계다. ‘스타트렉' 시리즈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 장면 역시 여기서 나온다. 캡틴 장뤽 피카드는 리플리케이터 앞에서 "Tea. Earl Grey. Hot."이라고 말하고, 곧바로 뜨거운 얼그레이 한 잔을 받아든다. 커피 한 잔, 스테이크, 생일 케이크, 심지어 마티니 한 잔까지 몇 초 만에 눈앞에 나타난다. 식재료를 재배하거나 운반할 필요도 없다. 음식은 더 이상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생성된다. 어쩌면 다운로드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오늘날의 3D 프린팅 푸드와 배양육 산업이 꿈꾸는 미래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부족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도 누구나 원하는 음식을 얻을 수 있는 세계. ‘스타트렉’은 미래 음식에 대한 상상 중 가장 낙관적인 비전을 제시한다. ‘소일렌트 그린’의 시민들이 배급 식품을 얻기 위해 거리로 몰려들고,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패브리컨트들이 액체 연료를 마시던 것과 달리, 이곳의 인간들은 원하는 메뉴를 주문하듯 미래를 소비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작품 속 인물들은 종종 직접 재배한 채소를 이야기하고, 손으로 만든 음식을 특별하게 여긴다. 어떤 캐릭터는 가족이 물려준 요리법을 자랑하고, 어떤 캐릭터는 리플리케이터 음식보다 직접 조리한 식사를 더 선호한다. 기술은 완벽해졌지만 식사는 완성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스타트렉’이 보여주는 미래는 기술이 음식을 대체하는 세계가 아니다. 오히려 기술이 음식의 생산 과정을 완벽하게 해결한 뒤에야 사람들이 음식의 진짜 의미를 다시 발견하는 세계에 가깝다. 인간은 단순히 칼로리나 영양분을 먹는 존재가 아니다. 음식에는 누군가의 손길과 기억, 취향과 문화가 함께 담겨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어느 날, 우리는 버튼 하나로 미디엄레어 굽기의 스테이크와 더티 마티니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에도 누군가는 직접 반죽한 빵을 굽고, 오래 끓인 미역국 국물을 그리워할 것이다. 기술이 완벽해질수록 오히려 진짜 음식의 가치가 더욱 선명해지는 역설처럼.
좋아요를 위한 식사
브라질 (1985)
레스토랑의 서빙 플레이트 | 이미지 출처 : 영화 캡쳐 , Brazil 1985
지금까지 살펴본 영화들이 미래의 새로운 식재료를 상상했다면, 테리 길리엄 감독의 ‘브라질’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영화는 곤충도, 인공 단백질도, 배양육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음식의 실체보다 이미지가 더 중요해진 미래를 보여준다. 영화 속 고급 레스토랑 장면은 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손님들은 거대한 컬러 메뉴판을 펼친다. 메뉴 속에는 구운 오리와 소고기 스튜, 화려한 디저트 사진이 가득하다. 음식 사진은 풍성하고 먹음직스럽다. 하지만 실제로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은 이름만 다를 뿐 거의 똑같이 생긴 작은 덩어리들이다. 오리 요리도, 스튜도, 디저트도 모두 같은 공장에서 찍어낸 산업용 퓨레처럼 보인다. 중요한 것은 아무도 그 사실에 놀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음식의 맛보다 메뉴 속 이미지에 만족한다. 실제 서빙되는 음식은 빈약하지만, 접시에 함께 제공되는 음식 사진은 화려하다. 음식의 실체보다 음식의 연출이 더 중요한 세계인 것이다. 어쩌면 ‘브라질’이 상상한 미래 음식은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 사진부터 찍고, 맛보다 비주얼을 먼저 소비한다. SNS 속 음식은 실제 접시보다 더 선명하고 화려하다. ‘스타트렉’이 음식을 데이터로 만들었다면, ‘브라질'은 음식을 이미지로 만든다. 미래의 문제는 무엇을 먹느냐가 아닐지도 모른다. 언젠가 우리는 곤충을 먹고, 배양육을 먹고, 복제된 음식을 먹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음식의 맛보다 이미지를 먼저 소비하는 시대에 도착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브라질’은 미래의 식량이 아니라 미래의 식탁을 예언한 영화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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