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아시아안보회의서 中 공격 '자제'…중국도 호응
미국의 유럽 비판에 동맹국들 "단결 중요…분열은 안돼"
(하노이=연합뉴스) 박진형 특파원 =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을 비롯한 세계 주요 40여개국 안보 수장들이 집결한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가 싱가포르에서 사흘 일정을 마치고 31일(현지시간) 마무리됐다.
미중 정상회담 이후 약 2주 만에 열린 이번 회의에서는 예년 행사 때마다 두드러졌던 미중 갈등은 다소 누그러진 양상을 보였다.
대신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유럽 등 동맹국에 대한 비판에 나서자, 동맹국들은 분열을 우려하면서 단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트럼프 행정부와 견해차를 노출했다.
◇ 美국방, 작년보다 대중 발언 수위 낮춰…중국도 호응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전쟁부) 장관은 전날 연설에서 중국의 아시아태평양 패권을 저지하겠다고 천명하면서도 작년과 같은 대중 강경 발언은 상당히 자제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진정 역사적인 사건"이라면서 "미중 관계는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수년 만에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작년 같은 행사에서 "중국이 무력을 사용해 아시아 현재 상황을 강제로 바꾸려 한다"면서 "중국은 실제적이고 즉각적인 위협"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한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인 셈이다.
특히 지난해 연설에서 중국의 '대만 정복' 가능성을 직접 언급하며 대중 압박에 나선 것과 달리 이번에는 대만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점이 눈에 띄었다.
미 국방장관이 샹그릴라 대화 연설에서 대만을 거론하지 않은 것은 적어도 10년 만에 처음이라고 블룸버그 통신은 지적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이 지역(아시아태평양)에서 불필요한 대립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우리는 중국 측과 군사 대 군사 소통 채널을 열어두고 더 자주 만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의 이처럼 누그러진 자세에 중국도 작년보다 한층 완화된 어조로 화답했다.
중국 측 대표단 단장인 멍샹칭 국방대 교수는 전날 연설에서 헤그세스 장관이 미중 정상회담과 양국 정상 간 합의를 언급한 것과 관련해 "중국과 미국이 서로를 향해 다가가길 희망한다"면서 "양국 군 관계가 건강하고 안정적이며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지난해 중국 대표단을 이끈 후강펑 국방대 부총장이 당시 헤그세스 장관 연설에 대해 "완전히 날조되거나 왜곡된 주장"이라면서 미국의 대중 견제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던 것과 대조됐다.
다만 양측은 모두 '패권주의 반대'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서로를 향한 견제의 메시지도 남겼다.
헤그세스 장관은 "중국을 포함한 어떤 국가도 패권을 행사해 미국과 동맹국의 안보나 번영을 흔들 수는 없다"고 밝혔고, 멍 교수도 "패권주의와 진영 대결이 지역 안보를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멍 교수는 특히 일본을 겨냥, "일부 세력이 전쟁범죄를 미화하고 제2차 세계대전 역사 왜곡을 조장하며 침략 역사를 세탁하려 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또 "군국주의의 뿌리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국가가 국제무대에서 다른 나라의 국방 협력을 논할 도덕적 권위를 가질 수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과거 침략을 겪은 아시아 국가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이에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방위상은 이날 연설에서 "핵무기와 전략 폭격기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그 어느 것도 갖지 않은 일본을 '신군국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이상하다"고 받아쳤다.
또 남중국해와 대만 해협 등지에서 중국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 시도에 대해 "불투명한 군비 증강이나 의도가 보이지 않는 행동은 불신과 오산을 부른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 헤그세스, '국방비 증액 외면' 유럽 비난…동맹국들은 "분열 안돼"
중국에 대한 태도와 대조적으로 헤그세스 장관은 미군 재배치 문제 등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는 유럽 등 동맹국들에 대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비판을 가했다.
그는 전날 연설에서 동맹국을 향한 국방비 증액 요구를 되풀이하면서 "유럽 동맹국들이 자국 국방비를 늘려야 한다는 (우리의) 정중한 요청은 너무나 오랫동안 무시됐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집단적 방위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서 제 역할을 다하기를 거부하는 동맹국들은 우리가 일하는 방식의 분명한 변화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면서 유럽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유럽 국가들이 "규칙 기반의 국제 질서에 대한 공허한 세계주의적 말에 정신이 팔려" 국경을 활짝 열어젖히고 군사력을 텅텅 비게 했다면서 '하드파워'로 뒷받침되지 않는 규칙은 그저 종잇조각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미국의 여러 동맹국은 규칙 기반의 국제 질서, 단결과 협력의 중요성을 옹호하고 분열은 억지력 약화라고 경고하면서 헤그세스 장관의 발언을 우회적으로 반박했다.
딜란 예실괴즈 제게리우스 네덜란드 국방부 장관은 "국제법이 위반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가 국제법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면서 "오히려 우리는 더욱 꾸준하고 용감하게 국제법을 수호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국제법은 불완전할 수 있지만, 역사는 우리에게 그 대안이 훨씬 더 나쁘다는 것을 가르쳐준다"고 덧붙였다.
리처드 말스 호주 부총리 겸 국방부 장관도 규칙 기반의 국제 질서가 완벽하지는 않다면서도 "강대국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과제는 그 질서를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개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강력한 규칙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면서 "그것이 바로 호주 같은 중견국이나 소국들이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말스 장관은 동맹이 지역 안보에 매우 중요하다면서 "이것은 공동의 도전이며 공동의 대응을 요구한다. 이것이 바로 규칙 기반 질서의 본질"이라고 덧붙였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이날 연설에서 "분열은 억지력을 약화하고, 단결은 억지력을 강화한다"면서 동맹국 등의 강력한 연대의 필요성을 부각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미국·유럽·동맹국과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 사이에 틈이 생기면 이를 기회로 삼는 세력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면서 "우리는 그런 상황을 막아야 한다. 협력을 지속해야 하며, 지금이야말로 협력을 더욱 강화해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한편,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이번 회의에서 고이즈미 방위상과 한일 국방회담을 갖고 한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가 참여하는 한일 수색·구조훈련(SAREX)을 내달 7일 실시하기로 했다.
또 양국 병력이 군수물자를 주고받을 수 있는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jh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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