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묘 더봄] 잡부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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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묘 더봄] 잡부 스타일

여성경제신문 2026-05-31 13:00:00 신고

나는 10년 잡부다. 하루 종일 공구 나르고, 쓸고, 치우다 해가 졌다. 잡부는 단순히 기술이 없다는 자조만이 아니다. 먼지 쓸기·폐자재 치우기·망치 찾기·사다리 붙잡기·담배 심부름·커피 타오기·장갑 줍기·시멘트 부스러기 긁기. 말하자면 늘 ‘누가 좀 하지’ 싶은 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이다. 벽돌 쌓은 사람은 남아도 시멘트 포대를 나른 사람은 기억되지 않는다. 그래도 잡부 없는 공사판은 하루도 굴러갈 수 없다.

오늘 최대 성과는 양수 씨가 집수리 계약을 따냈다는 거다. 적어도 한 달은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 팔려가길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양수 씨는 한때 시멘트 미장이 ‘오야’를 거쳐, 이제는 명함에 [집수리·인테리어 대표 김양수]라고 박고, 목수와 칠장이, 잡부를 불러 쓰는 어엿한 사장님이다. 

이 바닥에 팔방미인으로 통하는 양수 씨는 눈썰미가 좋고 행동이 재발라서 하수도면 하수도·타일이면 타일·보일러 깔기·지붕 얹기까지 못 하는 게 없다. 요즘엔 목수 뒷일까지 거들더니 나무도 제법 다룬다. 

그에게 들어오는 일은 대개 헌집 고치는 일이다. 헌집 수리는 새집 짓는 일보다 고되다. 한 군데 막으면 옆이 터지고, 한 군데 세우면 다른 데가 무너진다. 하수도 뚫어놓으면 수도관이 새고, 벽을 헐면 기둥이 흔들리는 식이다. 요즘 AI가 어쩌고 데이터가 어쩌고 하지만, 헌집은 기계보다 먼저 냄새로 읽어야 한다. 벽의 습기·방 안의 곰팡내·마루가 내려앉은 각도. 양수 씨는 그런 걸 보고 안다. 이 집은 아직 버틴다. 저 집은 곧 주저앉는다.

대청마루 벽을 털어내느라 흙먼지를 뒤집어쓴 양수 씨가 해머를 내려놓았다. 나는 재빨리 사다리와 빠루를 챙겼다. 기술자는 다음 자기 일을 보지만, 일머리 있는 잡부는 누가 “야!” 하기 전에 한발 먼저 움직인다.

합판으로 어설프게 덧댄 천장 귀퉁이를 뜯어내자 쥐똥과 흙먼지가 와르르 쏟아졌다. 그런데 그 속에서 뜻밖에도 서까래가 말끔히 드러났다. 썩어빠진 줄 알았던 헌집은 순식간에 대들보 번듯한 한옥 마루가 되었다.

“소화 원년이면··· 1926년이니께, 아따, 백 년은 된 집이구만. 그럼 서까래도 조선 소나무겄고. 조선 소나무는 가늘어도 아따, 단단혀.”

양수 씨가 핸드폰 플래시로 대들보를 비추며 중얼거렸다.

“아따, 이 썩어빠진 집에다 뭔 명상집을 헌당께 참말로 요상시럽다 했더니, 아따, 이런 걸 노리고 그랬구만.”

양수 씨는 말끝마다 ‘아따’를 친다. 추임새처럼, 기합처럼, 자기 말을 스스로 북돋는 장단처럼. 그 바람에 아무리 힘든 얘기도 농담처럼 가벼워진다.

“아따, 나는 말여. 온종일 벽돌 쌓고, 시멘트 문지르는 일은 재미가 없어부러. 서울 처음 올라와 먹고살기 을메나 막막했쟌커써. 그때는 사우디 가는 게 출세길이었거든. 그래서 기술을 배웠지. 기술자. 아따, 어엿한 미쟁이 기술자.”

그는 웃으며 자기 어깨를 툭툭 쳤다.

“근디 이제는 이 일도 배우려 드는 사람이 없어 해먹기 어려봐부러. 맨 노친네들뿐이니 말여. 아따, 노친네들 데리고 일 나가면 내가 양로원 원장 같당께.”

미쟁이로 잔뼈가 굵은 그는 한쪽 어깨가 내려앉고 한쪽 귀도 먹었다. 똑바로 서 있어도 몸이 어딘가 S자로 휜 것처럼 보였다. 굳은살 박힌 손바닥·깨진 손톱·휘어진 허리·시멘트 독이 오른 손·겨울 새벽 냄새·땀 밴 작업복. 그의 에스라인은 몸에 새겨진 이력서였다.

“아따, 요즘 에스라인 맹기느라 운동을 했더니 어깨쭉지가 뻐근혀. 그래도 이 에스라인은 아무도 못 따라와. 오빤, 잡부쓰따일~”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챗GPT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챗GPT

양수 씨는 삽을 땅에 꽂더니 말고삐라도 잡듯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그 휜 몸을 흔들며 말춤을 추었다. 한쪽으로 더 기울어진 어깨가 출렁거리자 춤은 우스꽝스럽다기보다 기묘하게 슬퍼 보였다.

“아침에 빈 몸으로 나가면 밥 주지, 술 주지. 오빤, 잡부쓰따일~ 헌집 고치고 나면 앉은뱅이 일어서드끼 살아나고. 오빤, 잡부쓰따일~ 막힌 곳도 뚫리고 을메나 좋아. 내 오장육부가 확 뚫린 기분이여. 아따.”

그 말의 절반은 소위 ‘몸빵’으로 공사판에서 살아온 힘겨운 노동을 둘러대는 위안일 것이다. 하지만 ‘오장육부가 확 뚫린 기분’만은 거짓 같지 않았다. 양수 씨가 번듯한 업체 하청을 마다하고 스스로 잡부 출신이라 밝히며 헌집 수리를 맡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헌집 수리는 그에게 밥을 주고 술을 주었다. 일하는 동안 그는 다섯 번의 밥상을 받았다. 일 시작 전 라면에 식은 밥 말아 먹기. 해장술 한 잔. 아침 참에 막걸리 한 잔. 점심에는 찌개와 김치가 있는 뜨끈한 밥상. 오후 참에는 다시 막걸리. 안주라고는 풋고추·오이·된장이 전부였다.

사실 밥은 5분 안에 먹어 치우는 간식이고, 양수 씨의 주식은 막걸리였다. 하루 열 통도 모자랐다. 그런데도 술에 취해 일을 놓거나 쓰러진 것을 본 적은 없다. 그는 그것을 두고 술 먹고 힘쓰는 타고난 잡부 근성이라고 했다.

“어이, 목 좀 축이제. 약이 안 들어가니 영 힘을 못 쓰겄구만.”

펌프 물에 담가둔 술병을 들고 가는 일은 언제나 잡부인 내 몫이다.

오후 참이 끝나면 해는 금방 진다. 이제 뒷일만 남는다. 장비를 챙기고, 공사 쓰레기를 트럭에 싣고, 썩은 기둥과 깨진 벽돌과 콘크리트 덩어리를 푸대에 담아 폐기장에 넘긴다. 그제야 잡부의 하루가 끝난다.

양수 씨가 장갑으로 얼굴의 흙먼지를 털었다. 나는 양수 씨 말투를 흉내 내며 마감을 알렸다.

“막걸리로 소독하고 괴기로 기름칠을 싹 허야제. 이게 잡부스타일이여.”

양수 씨는 트럭 운전대를 잡더니 또 추임새를 넣듯 노래했다.

“아따, 잡부가 뭔 힘이 있간디. 받으라면 받고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파라면 파고 싸라면 싸는 사람이지. 난 힘 없당께. 아따. 예, 한 잔 줍쇼. 오빤, 잡부쓰따일~.”

트럭은 흙먼지를 뒤로 밀며 천천히 산길을 내려갔다. 적재함에서는 젖은 시멘트 냄새와 막걸리 쉰내가 뒤섞여 올라왔다. 

“아따, 집이든 사람이든 말여.”

양수 씨가 앞만 보고 말했다.

“안 무너질 것 같아도 푹 꺼져부리고, 아따, 다 끝난 것 같은디 또 버티는 것도 있당께.”

양수 씨는 운전하면서도 손끝에 묻은 시멘트를 자꾸 엄지손톱으로 긁어냈다. 아무리 씻어도 저 시멘트 독은 며칠은 간다. 

여성경제신문 김정묘 작가·시인·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원
kkmyo@hanmail.net


☞미니픽션=아주 짧은 분량 속에 완결된 서사를 담아낸 초소형 소설을 말한다. '한 뼘 소설', '손바닥 소설(掌篇小說)', '플래시 픽션(Flash Fiction)' 등으로도 불리며 주로 설명은 생략하고 상징이나 묘사를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끝맺는다. 짧은 틀 안에 소설적 재미와 철학을 압축해 놓은 '문학의 에스프레소'라고 할 수 있다. 

김정묘 작가·시인·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원

시와 소설을 쓰며, 명상과 소리선, 글쓰기를 접목한 '글테라피' 문학치유 활동을 하고 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글쓰기 명상'을 통해 참여자 내면의 소리를 회복하도록 돕고 있다. 시집 <하늘연꽃>  외, 소설집 <지금산에 사는 벽려씨> , 산문집 <마음 풍경>  외, 숏-필름(미니픽션 영상) - <오래된 어제> <뼈의 내력> <새의 길> <빗소리> 등이 있다. 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원.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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