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이 삼성·현대 투자 좌우… '안보'가 '경기'만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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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갈등이 삼성·현대 투자 좌우… '안보'가 '경기'만큼 중요하다

이데일리 2026-05-31 12:00:0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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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국내 주력 산업의 투자 결정에서 경기만큼 안보가 중요해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의 설비투자는 더 이상 메모리 업황 사이클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현대차 등 자동차 업체의 투자 결정도 미·중 갈등과 공급망 재편 등 지정학적 요인에 크게 좌우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화성 캠퍼스. (사진= AFP)


◇ 경기 좋아도 투자 안 늘어…안보·글로벌 영향력 확대

한국은행이 31일 발표한 ‘경제안보 패러다임의 부상과 우리나라 투자의 구조적 전환’ 보고서는 2017년 이후 미·중 패권경쟁,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한국 경제의 투자 결정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 설비투자에서 △지정학적 리스크 △무역정책 불확실성 △공급망 압력 등 ‘안보·글로벌 요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6~2019년 평균 33.1%에서 2020년 이후 48.7%로 급증했다. 이는 메모리 업황이나 가동률 등 ‘시장·경기 요인’(51.3%)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자동차 산업은 변화가 더욱 극적이다. 안보·글로벌 요인 비중이 2015~2019년 25.9%에서 2020~2024년 50.9%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예전과 달리 설비투자와 경기의 동조성은 약화됐다. 2000~2019년 GDP 증가율과 설비투자 증가율의 상관계수는 0.76으로 강한 양(+)의 관계를 보였지만, 2020년 이후에는 0.17로 급락했다. 과거에는 경기가 좋으면 기업들이 공장을 짓고 설비를 늘렸지만, 이제는 경기가 좋아도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크면 투자를 미루거나 경기가 나빠도 안보 차원에서 필요하면 투자한다는 의미다.

황설웅 한은 조사국 과장은 “과거에는 설비투자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수출 증가율, 금리 같은 경기 지표에 민감하게 반응했다”며 “2019년 미·중 무역분쟁 이후 무역정책 불확실성과 지정학적 리스크 등의 영향이 추세적으로 확대되면서 안보·글로벌 요인이 투자 변동에 기여하는 비중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2024년 메모리 업황 회복에도 불구하고 미국 상무부로부터 반도체법(CHIPS Act) 보조금 수혜를 위해 텍사스 공장에 집중 투자했고, 현대차는 2022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통과 직후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공장 건설을 결정했다.

(자료= 한국은행)


◇ 韓, 기술동맹 강화·국내 투자 유인 높여야

한국 기업의 해외직접투자(FDI)도 급증하고 있다. GDP 대비 FDI 비중은 2020년 이후 가파르게 상승했으며, 특히 대미(對美) FDI 비중은 2005년 1% 수준에서 2025년 5%에 육박할 전망이다

한은의 분석 결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아지면 국내 설비투자는 줄어드는 반면 해외직접투자는 늘어나는 ‘자본의 대외 전환’ 패턴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미국 반도체법이나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을 통해 보조금을 받고, 관세 장벽을 우회하며, 글로벌 기술 표준 경쟁에 참여하기 위한 기업들의 ‘이너서클’ 진입 전략이다.

SK하이닉스는 2024년 미국에 38억 7000만달러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반도체법 보조금 45억달러를 확보했고, 삼성SDI는 2022년 미국에 배터리 공장 25억달러 투자를 결정했다. LG에너지솔루션도 2022~2024년 미국 투자를 1억 7000만달러에서 7억 2000만달러로 크게 늘렸다.

공급망 압력이 높아질 때는 한국과 다른 나라들이 다른 반응을 보였다. 반도체와 배터리 같은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한국과 대만에서는 오히려 설비투자가 늘어난다. 부품 부족 사태에 대비해 미리 생산능력을 키우기 위한 선제적 대응이다. 최종 제품을 조립하는 미국·독일·일본·중국 같은 나라에서는 부품 조달이 막혀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투자가 줄어드는 것과 반대다.

이런 변화는 한국 경제 전체 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FDI 신고금액 중 공장·설비 같은 유형자산 투자 비중은 2020년 31.5%에서 2026년 1분기 12.7%로 급감한 반면, 특허·브랜드 같은 무형자산 투자는 13.2%로 늘었다. 한은은 “한국의 경상수지가 삼성·현대차 같은 기업이 수출로 벌어들이는 ‘상품수지’ 중심에서, 해외 공장과 지분투자로 벌어들이는 ‘본원소득수지’ 비중이 커지는 방향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황 과장은 “한국은 반도체·배터리 같은 핵심 부품 공급자로서 협상력이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기술동맹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며 “규제개혁과 첨단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해 핵심 제조공정과 R&D만큼은 국내에 남도록 유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본원소득의 원천도 결국 한국 기업의 제조 경쟁력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국내 제조·수출 기반이 약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료=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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