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브뤼셀 보자르 공연장에서 31일(현지시간) 새벽 막을 내린 퀸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 첼로 부문에서 스무 살 한국인 연주자가 준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탈리아 출신 에토레 파가노(23)가 1위를 차지한 가운데, 김태연이 그 뒤를 이어 두 번째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쇼팽 피아노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 권위 있는 무대에서 한국은 2022년 최하영(첼로), 2023년 김태한(성악)의 연속 우승에 이어 올해까지 3년째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첼리스트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김태연은 예원학교 졸업 후 14세라는 어린 나이에 미국 명문 커티스 음악원의 문을 두드려 합격한 영재다. 지난해 5월 폴란드 바르샤바 비톨트 루토스와프스키 국제 첼로 콩쿠르 정상을 밟으며 국제 무대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이번 성과로 차세대 첼로 연주자 중 가장 주목받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시상식은 다음달 2일 벨기에 워털루 소재 퀸엘리자베스 뮤직샤펠에서 거행된다. 마틸드 왕비가 직접 상장과 함께 2만 유로(약 3천500만원)의 상금을 김태연에게 수여할 예정이다. 이후 10일 브뤼셀을 시작으로 루벤(11일), 하셀트(12일), 브뤼허(13일) 등 벨기에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1~3위 입상자들과 함께 무대에 서는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결선 마지막 날인 30일 밤 10시, 12명의 파이널리스트 중 최종 순서로 무대에 오른 그는 안토니 헤르무스가 이끄는 벨기에 국립교향악단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중국계 미국인 작곡가 팡만의 현대음악 '꽃 소식에 대한 네 편의 송가'와 루토스와프스키 첼로 협주곡을 차례로 선보인 연주가 끝나자 객석에서는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스페인의 알바로 로사노 카메스(20·4위)와 함께 최연소 결선 진출자라는 타이틀, 거기에 늦은 밤 마지막 연주 순서까지 겹쳐 압박감이 상당했을 법하다. 그러나 활을 집어 든 순간 김태연은 폭발적인 에너지와 대담한 해석력으로 청중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수상 직후 눈가를 적신 그는 "솔직히 입상을 기대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이어 "마지막 연주자라는 부담이 있었지만, 이 무대만 마치면 한 달간 이어진 고된 여정이 끝난다는 생각으로 오히려 힘을 얻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주변에서 '강심장'이라 불릴 정도로 무대 울렁증과는 거리가 멀다는 김태연은 "아직 젊으니까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한다"며 포부를 밝혔다. "지금처럼 무대를 즐기면서 꾸밈없이 저만의 색깔을 담은 연주를 들려주는 음악가로 성장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1937년 탄생한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는 신진 음악인의 등용문으로 명성이 높다. 벨기에 왕실 후원 아래 성악,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네 부문이 매년 돌아가며 열리며, 2017년 신설된 첼로 경연은 이번이 세 번째다. 홍혜란(성악·2011), 황수미(성악·2014), 임지영(바이올린·2015), 최하영(첼로·2022), 김태한(성악·2023) 등 지금까지 다섯 명의 한국인이 이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재작년 바이올린과 지난해 피아노 부문에서 입상자 배출에 실패하며 다소 침체기를 겪던 K-클래식은 김태연의 이번 쾌거로 세계 진출의 발판이 되어 온 이 대회와의 인연을 다시 이어가게 됐다.
Copyright ⓒ 나남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