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서울대 이전 계기 신림동에 고시촌 형성
로스쿨 도입, 월세 폭등에 '현대판 쪽방촌'으로
고시원 규제완화 검토, 거주 존엄성 차원 접근을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1975년 서울대학교가 반세기에 걸친 대학로 시대를 접고 신림동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관악산 자락의 빈민촌 일대가 거대한 대학 타운으로 바뀌었다. 청계천과 한강변 무허가 판자촌 철거로 이주해온 이곳의 빈민들은 작은 집을 잘게 나눠 학생들에게 하숙을 놓았고, 일부는 대출을 받아 다세대 건물을 짓고 수험생들을 받아들였다.
당시 사법시험과 행정고시, 외무고시 출제 교수, 합격자의 상당수가 서울대 출신이었던 탓에 다른 대학 고시생들까지 정보를 얻기 위해 신림동으로 몰려들었다. 몸 하나 겨우 누일 크기의 방에 책상과 침대만 들여놓고, 복도 끝 공동화장실을 함께 쓰는 형태의 고시원이 이 무렵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다.
서울대 이전이 낳은 신림동 고시촌은 1984년 지하철 2호선 완전 개통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고시생들의 필독서였던 허영의 '헌법학개론', 곽윤직의 '민법총칙', 조순의 '경제학원론'을 머리맡에 두고 밤을 새우는 수험생들이 골목마다 넘쳐났다. 그렇게 고시원은 단순한 숙소를 넘어 입신양명을 꿈꾸던 청춘들의 욕망과 좌절이 뒤섞인 상징적 공간이 됐다.
그 시절 고시원은 가난했지만, 목표와 방향만큼은 분명한 공간이었다. 눅눅한 이불, 퀴퀴한 공동화장실과 옆방 학생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얇은 합판 벽은 불편했지만, 언젠가는 이곳을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설사 고시에 붙지 못하더라도 최소 7급 공무원이나 공기업은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들에게 있었다.
고시원의 이런 생태계가 바뀐 건 밑바닥에서 올라와 상고 출신 사시 합격과 대통령 당선 신화를 쓴 노무현 정부 때였다. 노무현은 서울대 법대를 정점으로 한 국가 엘리트 구조를 깨고 법조 구성을 다양화하겠다며 사시를 없애고 로스쿨 제도를 도입했다.
로스쿨은 법학 지식 대신 학부 성적과 법적 적성을 따지는 대학원 체제라서 고시원에 장기간 머물며 시험을 준비할 필요가 없어졌다. 수험생들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취업준비생과 비정규직 노동자, 독거 중장년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 고시원은 더 이상 '공부하는 방'이 아니라 '살아야 하는 방'으로 바뀌었다. 전셋값과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는 자들이 마지막으로 밀려들어 가는 현대판 쪽방촌이 된 것이다.
정부가 고시원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정부는 11년 전 고시원이 독립 주거 시설로 활용되지 못하게 개별실 내 욕조 설치 제한 등 각종 규제를 도입했는데, 이를 손질하겠다는 것이다. 세 부담이 커지는 현실을 인정해 고시원을 도심 주거 대안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아무리 정책이 바뀌고 시설이 개선되더라도 고시원이 품고 있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과거 고시를 준비하던 청춘도, 오늘날 월세 부담에 밀려 들어온 서민도 언젠가는 이 방을 나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하루를 견딘다. 정부의 고시원 규제도 이런 믿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고시원을 채우는 사람들의 얼굴은 달라졌지만, 더 나은 삶을 향한 그들의 열망은 그대로다. 고시원이 누군가의 절망이 머무는 종착역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징검다리로 남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j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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