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에 따르면 공동주택 내부 통행로가 도로교통법상 도로로 분류되지 않아 어린이·노인 등 교통약자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 잇따른 비극에 유가족 호소 절절
지난 3월 울산 북구 소재 공동주택에서 8세 딸을 떠나보낸 이모(40) 씨는 발인식 당시 "밤마다 평생 곁을 지키겠다 맹세했는데 막상 위험 앞에서 아무것도 못 했다"며 깊은 자책을 드러냈다. 학원 차량에서 하차해 도로를 횡단하던 중 단지로 들어오던 SUV에 치여 딸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비로소 단지 내 도로가 법적 도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어린이보호구역에서는 서행하던 차량이 단지 안에서는 속도를 높이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지적하며, 강력한 처벌과 근본적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충북 청주에 거주하는 40대 학부모는 "놀이터로 향하는 아이가 택배차나 배달 오토바이와 마주칠까 늘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생후 9개월 영아를 돌보는 30대 주민 역시 "보행로와 차로 경계가 불분명해 유모차 이동 시 위험을 느낀다"며 외부 차량 진입 규제 강화를 요청했다.
◇ 현행법 적용 불가…국회서 개정안 추진 중
교통안전법 시행령에 따르면 300세대 이상 의무관리 공동주택은 입주자대표회의 등이 횡단보도·과속방지턱·도로반사경 등을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조치만으로 사고를 막기엔 역부족이라고 본다.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김진유 교수는 "불법 주정차에 과태료를 부과하기 어렵고, 사고 발생 시 처벌 강도도 약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충남 보령에서 불법 주차 차량으로 촉발된 사망사고를 언급하며 "일반 도로 수준의 제재가 적용됐다면 예방 가능성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도로교통법은 출입 차단기 등을 근거로 단지 내 도로와 주차장을 도로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음주운전이나 뺑소니가 발생해도 형사처벌은 가능하나 면허 취소·정지 등 행정처분 근거가 불명확하다. 실제로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단지 내 주차장 음주운전자의 면허 취소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해당 주차장이 외부 도로와 차단돼 있고 주차구획선이 설치된 점을 들어 '자동차 주차를 위한 통로'로 판단했다.
이 같은 법적 공백을 메우고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배준영 의원(국민의힘·인천 중구강화군옹진군)이 지난달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단지 내 통행로와 주차장을 도로 범위에 편입시키는 내용이 핵심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음주운전 등에 대해서도 면허 행정처분이 가능해진다. 배 의원은 "주민 입장에서 단지 내 도로는 일반 도로와 체감상 다르지 않다"며 연내 법안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우려 목소리도 존재한다.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이동민 교수는 "모든 사유 도로에 동일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문제, 관리 책임 주체 설정 등 쟁점이 남아 있다"며 특별법 형태의 처벌 근거 마련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 설계 혁신·외부차량 통제…다각적 접근 필요
이동민 교수는 차량 속도를 의도적으로 낮추는 '교통정온화 기법' 도입을 권고했다. 그는 "직선 구간이 많고 차로 폭이 넓어 감속이 어려운 구조"라며 차로 폭 축소, 곡선형 설계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이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충북대 도시공학과 송태진 교수는 화물차·배달 오토바이 사고 비중이 적지 않다고 지적하며, 말레이시아처럼 택배·배달음식을 특정 거점에서만 수령하고 외부 차량 동선과 보행자 동선을 분리하는 모델 도입을 제안했다.
한양대 교통물류공학과 강경우 명예교수는 "대규모 단지는 신축 시 교통영향평가를 거치지만 소규모 구축 단지는 차량 동선 위주로 설계된 곳이 많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노후 단지에 대한 안전진단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 강원본부 이윤형 부교수는 제도 개선과 더불어 운전자·보행자의 안전의식 제고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운전자는 단지 내 제한속도를 지키고 진출입로 주변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당부했다.
Copyright ⓒ 나남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