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의 물가 상승세가 다소 둔화됐지만 서비스 부문의 가격 압력이 다시 높아지면서 향후 유럽 통화정책 방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실업률은 예상과 달리 개선됐으나 경기 회복세는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독일 연방통계청이 29일 발표한 2026년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속보치에 따르면, 유럽연합(EU) 기준 소비자물가지수(HICP)는 전년 동월 대비 2.7% 상승했다. 이는 4월의 2.9%보다 0.2%포인트 낮아진 수치로 시장 전망치인 2.8%도 소폭 밑돌았다.
물가 상승세가 둔화된 가장 큰 배경은 에너지 가격 상승 압력 완화다. 에너지 가격 상승률은 4월 10.1%에서 5월 6.6%로 크게 낮아졌다. 이란 전쟁 이후 급등했던 국제 에너지 가격이 일부 안정된 데다 독일 정부의 연료세 인하 정책이 물가 부담을 줄이는 데 기여한 것으로 분석된다. 경제분석기관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연료세 인하 조치가 없었다면 독일의 물가 상승률이 3.0% 수준까지 올랐을 것으로 추산했다.
상품 물가 상승률도 4월 2.9%에서 5월 2.2%로 하락했다. 특히 식료품 가격 상승률은 같은 기간 1.2%에서 0.4%로 크게 둔화되며 전체 물가 안정에 힘을 보탰다.
반면 서비스 부문에서는 다시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는 모습이 나타났다. 서비스 가격 상승률은 4월 2.8%에서 5월 3.1%로 상승했다. 이는 4월 수치가 약 3년 반 만의 최저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다시 반등세로 돌아선 것으로 해석된다.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도 2.5%를 기록해 전월의 2.3%보다 높아졌다. 근원물가는 기조적인 물가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로, 유럽중앙은행(ECB)이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중요하게 참고하는 수치다.
시장에서는 독일의 이번 물가 지표가 다음 달 발표될 유로존 전체 물가 흐름을 가늠하는 선행 신호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유로존의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3%로 예상되며, 이는 4월의 3.0%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ECB의 통화정책에도 변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ECB는 지난 4월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물가 상승 압력이 다시 확대될 경우 6월 회의에서 추가 긴축 또는 정책 조정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고용시장에서는 예상 밖의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독일 연방고용청에 따르면 5월 계절조정 기준 실업률은 6.3%로 전월보다 0.1%포인트 하락했다. 계절조정 실업자 수 역시 전월 대비 1만2000명 감소해 시장 예상치인 1만 명 증가 전망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기록했다.
그러나 고용당국은 이번 실업자 감소를 경기 회복의 신호로 해석하기에는 이르다고 평가했다. 연방고용청은 4월 고용지표 부진에 따른 기저효과가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하며, 독일 경제가 아직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진입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연방고용청은 “실업자 수가 감소했지만 올해 봄 경기 회복은 아직 충분한 추진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 역시 향후 수개월 동안 실업자 수가 다시 증가할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기업들이 이란 전쟁 등 지정학적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신규 채용이나 구조조정 결정을 미루고 있어 노동시장 회복 속도가 제한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계절조정 전 실업자 수는 295만 명으로 전월보다 5만8000명 감소했다. 독일의 실업자 수가 300만 명 아래로 내려간 것은 5개월 만이다. 기업들의 구인 수요도 회복 조짐을 보였다. 5월 구인 건수는 64만300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000건 증가했다.
독일 경제는 물가 상승세가 둔화되는 긍정적 신호를 보이고 있지만, 서비스 물가 반등과 경기 회복 지연, 지정학적 리스크 등 복합적인 변수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 하반기 경제 흐름에 대한 불확실성은 지속될 전망이다.
이창우 기자 cwlee@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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