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동해시 묵호항은 한때 석탄과 시멘트 운송선으로 활기가 넘쳤던 곳이다. 오징어와 명태가 풍부하게 잡히던 시절, 주민들 사이에서는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돌 만큼 번영을 구가했다.
하지만 탄광이 속속 폐쇄되고 어획량이 줄어들었다. 1979년 동해항이 문을 열면서 묵호항의 역할마저 축소되자 과거의 영광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이후 수십 년간 침체의 늪에 빠져 있던 이 작은 항구 마을이 최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주목받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민관 협력을 통해 구석구석 숨겨진 골목을 재조명하기 시작하면서 변화의 물꼬가 트였다. 가벼운 배낭 하나만 메고 찾아오는 도보 관광객들이 늘어났고, SNS에서는 '감성 힐링 명소'라는 입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2020년 서울에서 강릉을 거쳐 동해까지 환승 없이 연결되는 KTX 노선이 개통된 점이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과거에는 자가용이나 버스를 이용하거나 강릉에서 다시 갈아타야 했기에 3~4시간이 소요됐지만, 이제는 절반 수준으로 단축됐다. 코레일 강원본부 집계를 보면 묵호역 KTX 이용객이 지난해 12월 약 2만 명에서 올해 1월 5만 명대로 급증했다. 강릉과 부산 부전역을 잇는 동해선이 지난해 개통되면서 영남권에서 찾아오는 방문객도 크게 늘었다.
동해시도시재생지원센터 유현우 센터장은 과거를 이렇게 회상했다. "2010년 이전만 해도 대형 관광버스를 타고 오는 중장년층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는 감성이 느껴지는 마을로 탈바꿈시키려면 골목에 집중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이곳에는 '누울 자리만 있으면 그 뒤에 집을 짓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희망을 품고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어요. 치열하게 살아가며 만들어진 골목의 역동적 풍경이 오히려 젊은 여행자들에게 특별하게 다가온 거죠." 역과 버스터미널에서 주요 명소까지 걸어서 이동 가능하다는 점도 차 없는 여행자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옥빛 바다와 옛 어촌 건물들이 번갈아 눈에 들어온다. 느린 걸음으로만 포착할 수 있는 소소한 정취가 이곳의 매력이다. 형형색색 벽화가 좁은 길과 어우러진 논골담길은 1941년 개항 이후 축적된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비탈진 언덕 위 판잣집 사이 흙길은 늘 질척거려 '논골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주민들은 언덕 꼭대기 덕장까지 오징어와 명태를 지게로 날랐고, 흘러내리는 바닷물 때문에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이 생겨났다. 그래서인지 이 골목에는 장화가 그려진 벽화와 소품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골목을 빠져나오면 도째비골 스카이밸리가 나타난다. '도째비'는 도깨비의 사투리다. 예전 비 오는 밤이면 푸른빛이 어른거렸는데, 사람들은 이를 도깨비불로 여기며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중심에 자리한 59m 높이 스카이워크에서는 발아래 유리 너머로 펼쳐지는 푸른 바다를 보며 하늘 위를 걷는 듯한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스카이사이클과 자이언트 슬라이드, 도깨비방망이 모양의 해랑 전망대까지 체험하다 보면 어느새 이 마을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묵호동 주민센터 부근 해맞이길을 따라 어달해변 방향으로 내려가면 내리막 끝에서 불현듯 동해가 시야에 들어온다. 아스팔트 도로와 에메랄드빛 바다가 한 화면에 담기는 어달삼거리는 '인생샷' 포인트로 급부상했다. 알록달록한 테트라포드가 놓인 어달항 일대도 필수 방문지로 꼽힌다. 문구류와 식기, 예술품이 진열된 소품 상점과 개성 있는 카페·식당 앞에도 긴 줄이 이어지면서 한적하던 어촌은 전국 청춘들이 모여드는 핫플레이스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이러한 열기는 인접 권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동해시는 무릉별유천지와 추암권역이 젊은 층과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인기를 얻으며 관광객 증가를 이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무릉별유천지 입장객은 2021년 8천339명에서 2022년 13만8천141명, 2023년 17만8천539명, 2024년 20만3천533명, 올해는 26만9천341명으로 해마다 큰 폭으로 늘었다. 강릉~삼척 구간 철도 고속화 사업이 마무리되면 수도권 및 영남권과의 이동 시간이 더욱 단축돼 방문객이 한층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동해시는 관광 흐름이 지속될 수 있도록 도시재생 사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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