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개통 후 관광객 급증…골목·바다·로컬 감성으로 SNS서 인기몰이
동해 전역으로 관광 열기 확산…도시재생·청년창업·관광 인프라 강화
[※ 편집자 주 = 저출산·고령화와 청년 유출로 지역 소멸 위기가 커지는 가운데 연합뉴스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각 지역의 숨은 자랑거리와 이야깃거리를 재발견하는 기획을 시작합니다. 문화·경제·사회 전반에서 인물, 음식, 문화재, 특산물, 관광지 등은 물론 차별화된 경쟁력을 지닌 다양한 아이템을 발굴해 매주 토요일 송고할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지역의 자부심 제고, 관광 활성화,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 등을 추진함으로써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동해=연합뉴스) 강태현 기자 = '#뚜벅이 여행 #낭만 바닷가 마을 #당일치기'
과거 석탄과 시멘트를 실어 나르는 배들로 북적이던 강원 동해시 묵호항.
오징어와 명태 어획량도 풍부해 "개도 만원짜리 지폐를 입에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호황을 누릴 때가 있었다.
그러나 탄광들이 잇따라 문을 닫고 어획량이 급감한 데 이어 1979년 동해항 개항으로 묵호항의 기능이 축소되면서 그 시절의 번성기는 점차 빛이 바래갔다.
쇠락하던 묵호에 다시 활력이 돌기 시작한 건 민간과 공공이 힘을 합쳐 골목 구석구석을 재조명하면서부터다.
이를 계기로 차츰 잔잔한 바닷가 마을에 가벼운 배낭을 멘 '뚜벅이 여행자'들이 하나둘 찾기 시작하면서 묵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힐링 여행지'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골목길 모퉁이마다 보물 같은 바다 풍경을 선사하는 묵호. 이곳에는 이제 새로운 로컬의 낭만이 피어나고 있다.
◇ 기차 한 번이면 닿는 '뚜벅이 여행' 성지…2년 전보다 방문객 2배 ↑
쇠락한 묵호항 일대가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한 데에는 교통이 한몫했다.
2020년 서울에서 강릉을 지나 동해까지 갈 수 있는 KTX 철길이 열리면서 수도권에서 환승 없이 한 번에 동해로 향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수도권에서 동해역을 가기 위해서는 자가용·버스를 이용하거나 강릉행 KTX를 탄 뒤 일반 열차나 버스로 갈아타야 해 3∼4시간이 족히 걸렸지만, 교통 접근성이 개선되면서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절반으로 줄었다.
그 덕에 덩달아 여행자들의 발길도 늘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강원본부에 따르면 2024년 12월 약 2만명이던 묵호역 KTX 이용객은 올해 1월 5만명대로 크게 늘었다.
지난해에는 강릉과 부산 부전역으로 오가는 동해선까지 개통하면서 영남권 관광객들도 증가했다.
쇠락한 묵호를 '힙하게' 탈바꿈하려는 민간·공공의 노력이 켜켜이 쌓인 점도 뚜벅이 여행객들을 이끄는 요인이 됐다.
유현우 동해시도시재생지원센터장은 "2010년 전에는 묵호에 대형 관광버스를 타고 오는 5060세대가 주된 관광객이었다"며 "묵호를 어떻게 하면 감성이 느껴지는 마을로 만들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면서 골목에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유 센터장은 "묵호에는 속된 말로 '누울 자리가 있으면 그 뒤에 집이 들어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지역으로 알려지면서 각지에서 삶이 피곤한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었다"며 "각자가 먹고살기 위해 바둥거리면서 조성한 골목의 역동적인 풍경이 여행자들에게는 특이한 풍경으로 느껴질 법했다"며 골목에 시선을 둔 배경을 설명했다.
이밖에 묵호역과 버스터미널에서 주요 관광지까지 도보 거리가 멀지 않다는 점도 여행 편의를 높여 뚜벅이 여행자들의 만족감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 작지만 알찬 바닷가 마을…옛 어촌에서 청춘들의 '인생샷' 명소로
묵호에는 발길 닿는 곳마다 펼쳐지는 옥빛 바다와 옛 어촌 마을의 정취를 간직한 건물들이 눈에 띈다.
고즈넉하고 아기자기한 로컬의 매력은 자동차 계기판의 속도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다.
그중에서도 색색의 벽화가 좁은 골목길과 조화를 이룬 논골담길은 1941년 개항해 성업을 이뤘던 묵호항의 역사와 치열한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긴 곳이다.
이곳 항구 뒤편 묵호동의 비탈진 언덕에 지어진 판잣집 사이 골목은 질퍽한 흙길 탓에 '논골마을'이라 불렸다.
사람들은 언덕 꼭대기에서 생선을 말리는 덕장으로 오징어와 명태를 지게나 대야로 날랐는데, 오징어 더미에서 떨어지는 바닷물로 늘 질었던 골목은 '남편과 마누라 없이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말까지 남겼다.
그래서 논골담길에는 유난히 장화가 그려진 벽화나 소품이 많이 등장한다.
골목을 벗어나면 어느덧 묵호의 랜드마크가 된 도째비골 스카이밸리가 여행자들을 맞이한다.
'도째비'는 도깨비의 방언이다. 과거 이곳에서는 어두운 밤 비가 내릴 때마다 푸른빛이 일렁였는데, 이를 도깨비불이라 믿은 사람들이 '도째비골'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도째비골 스카이밸리의 중심에는 59m 높이의 스카이워크가 있는데, 유리 바닥 아래로 펼쳐지는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순간, 마치 하늘 위를 걷는 듯한 짜릿한 기분이 든다.
하늘을 달리는 스카이사이클과 아찔하게 미끄러지는 자이언트 슬라이드, 도깨비방망이 형상의 해랑 전망대까지 즐기다 보면 어느새 묵호의 매력에 흠뻑 젖어 든다.
묵호동 주민센터 인근 해맞이길을 따라 어달해변 방면으로 내려오다 보면 길모퉁이를 도는 내리막길 끝에 동해가 펼쳐지는 이국적인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스팔트 도로와 에메랄드빛 바다가 한 프레임에 담겨 어달삼거리는 묵호의 '인생샷' 명소로 떠올랐다.
알록달록한 테트라포드가 놓인 어달항 인근도 놓칠 수 없는 필수 방문 코스가 됐다.
이 밖에도 문구류, 식기, 예술품이 즐비한 소품 가게와 특색 있는 카페·식당에도 긴 줄이 이어지는 등 쓸쓸한 어촌 마을은 어느새 SNS를 타고 전국의 청춘들이 모여드는 명소로 재탄생했다.
◇ 동해 전체로 퍼진 관광 열기…도시재생 사업 지속
묵호에서 시작된 관광 열기는 인근 관광지로 점차 퍼지고 있다.
동해시는 무릉별유천지, 추암권역 등이 젊은 층과 가족 단위 관광객 사이에서 인기를 끌며 관광객 증가세를 견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무릉별유천지의 입장객 수는 2021년 8천339명, 2022년 13만8천141명, 2023년 17만8천539명, 2024년 20만3천533명, 2025년 26만9천341명으로 증가 추세다.
이후 강릉∼삼척 구간 철도 고속화 사업이 마무리돼 수도권과 영남권 이동 시간이 더 줄어들게 되면 관광객들이 더 몰려들 것으로 전망된다.
시는 관광 흐름이 유지될 수 있도록 각종 사업, 정책 등을 시행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KTX 묵호역에서 내려 도보로 관광하는 동선에 있는 인도와 가로등을 정비해 뚜벅이 여행자들의 여행 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 묵호 등 동해에 정착해 창업한 청년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관광객이 급증해 주차난을 겪는 묵호 수변공원에는 주차빌딩을 조성하고 있다. 빌딩은 오는 6월 준공 예정이다.
인구소멸 대응 기금을 활용해 도째비골 화원 조성 등 관광지를 정비하고 청년창업 공간 등 건물 조성에도 나선다.
이 밖에도 씨티 투어 버스·택시 운영, 단체·개별 관광객 인센티브, 해안 인도 정비, KTX 연계 이벤트 등 여러 사업을 펼치고 있다.
유 센터장은 "이미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을이 마음에 들지 않고 불편하면 다른 이들에게도 좋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며 "주민들이 삶의 터전에 대한 만족도가 유지되게 하는 게 좋은 도시·마을의 조건이라 여기고 이를 위해 노력할 예정"이라고 했다.
taet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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