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여행 왔다가 투표소에 들른 김해 청년부터 생애 첫 표를 행사하기 위해 온 캐나다 유학생, 60년 넘게 거의 모든 선거에 빠짐없이 참여했다는 어르신까지.
BBC 코리아가 29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사전투표가 한창인 서울의 한 주민센터에서 투표를 마치고 나온 시민들을 만났다.
대부분 큰 결심이나 계기 없이, 그저 국민의 권리인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나왔다고 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전국 각지에서 광역자치단체장(시·도지사), 기초자치단체장(시장·군수·구청장), 교육감, 지방의원 등 4000명이 넘는 당선자가 나오는 만큼 후보자 수는 7829명에 달한다.
알아볼 것도, 따져볼 것도 많은 이번 선거. 7~8장의 투표용지를 받아 들 유권자들은 어떤 생각으로 이번 선거에 참여했을까?
'공약, 지키겠죠?'
대부분 사람들은 후보의 '공약'을 참고해 투표했다고 밝혔다.
경상남도 김해에서 서울로 여행을 왔다가 사전투표를 하러 왔다는 박민석(22) 씨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있다. 그에게는 기초과학 분야 투자 및 지원 확대가 중요한 의제다.
"(지금까지 기초과학 분야에서) 정부 정책이 단기적인 성과 위주로 흘러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좀 더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기초과학 분야에 투자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진로 고민을 하고 있다는 박 씨는 "순수 수학 쪽은 지원받기 힘들다는 얘기를 들었다"라고 말했다.
"AI(인공지능) 같은 쪽으로 연결 지어서 연구하면 지원금을 많이 받을 수 있다고 해서요…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그쪽으로 (진로를) 좀 생각하고 있어요."
사범대학교 학생인 김현(26) 씨는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교육 문제나 학생 및 교사 인권에 좀 신경을 써주는 후보 위주로 정책을 주의 깊게 봤다"라고 했다.
어린 자녀를 키우고 있는 최대승(53) 씨는 "교육 관련 공약"이 중요한 기준이 됐다면서 "교육감의 경우 좀 더 미래지향적인 후보가 누구일지 생각하며 뽑았다"라고 말했다.
둘째를 임신 중인 회사원 김지혜(34) 씨도 "아동 정책" 위주로 공약을 살펴봤지만, 이에 앞서 후보들의 '범죄 이력'부터 참고했다고 했다.
"물론 완전무결할 수는 없겠지만, 사회를 책임지는 정책을 담당하실 분들이기 때문에 법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 부분을 우선순위로 봤습니다."
하지만 공약에 대한 관심과는 별개로 공약이 실제로 이행될 것이라는 기대치는 대체로 낮았다.
최대승 씨는 "선거 때마다 항상 비슷한 공약이 나오는 것 같은데, 아직도 안 지켜진 공약들이 많다는 사실이 놀랍다"라며 "공약만 잘 지켜진다면 (한국이) 더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래도…'이번에는 하시겠지'라는 마음으로 뽑았습니다."
두 자녀와 두 조카, 그리고 언니와 함께 투표소를 찾은 박수지(50) 씨는 많은 공약이 4~5년 짧은 기간 내 '완성'하기 어려운 만큼 "공약의 연속성"이 중요하다고 봤다.
"'공약을 다 하겠다'라고 말하는 후보보다는 (사회 문제를) 차근차근 풀어나가서 후임에게 잘 넘겨줄 수 있는 후보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을 보고 투표하냐고요?'
공약을 주로 참고했다면서도, 현실적인 이유로 정당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덧붙이는 이들도 있었다.
박민석 씨는 "후보들이 너무 많고 봐야될 게 너무 많아서 당을 보고 투표하는 게 없잖아 있다"라며 이 경우 "당의 전반적인 방향성" 등을 참고한다고 말했다.
이주경(80) 씨는 60년대부터 거의 모든 선거에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며, 하나의 정치 성향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한국 정치사에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나름의 판단을 내리고 이에 맞는 정당을 지지해왔다는 것.
이 씨는 "지금 손주 둘이 대학에 다니는데 나와는 생각이 180도 다르다"라며 "하지만 대화를 통해 '무엇이 나라를 위해 좋은가'에 대한 방법을 중심으로 (의견차를) 조금씩 좁혀가고 있다"라고 했다.
"정치인들이 사회 양극화가 좀 해소되는 방향으로 노력해줬으면 좋겠습니다."
40대 자영업자인 양모 씨는 "정당이 (투표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건 아니지만, 크게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라고 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나라에서 말은 보수 정당, 진보 정당이라고 해도 말이나 행동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그래서 저는 후보 개인이 말은 이렇게 했는데, 행동은 어떻게 하는지를 보려고 하는 편이에요."
부족한 선택지를 지적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특히 여성 유권자들의 경우 여성 후보가 부족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박수지 씨는 "예전에 비해서는 (여성 후보가) 늘었다고 생각한다"라면서도 "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한 건 사실"이라고 했다.
김지혜 씨도 "시의원 후보 중에는 여성 후보들이 꽤 있었다"라면서도 "그 위로는 (여성 후보를) 잘 찾아볼 수 없었다"라고 했다. 그는 "30대 여성 워킹맘"인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 줄 정치인이 없다고 느껴진다고 했다.
'많은 의미가 담긴 선거 같아요'
일부 사람들은 이번 선거가 대선이나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임에도 후보들의 선거 유세가 치열하고 활발했고, 유권자들도 평소보다 많은 관심을 보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사전투표율은 11.6%로 역대 지방선거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8년간 캐나다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류이현(18) 씨는 이번 선거에서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했다며 "굉장히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이라고 말했다.
"캐나다와 달리 한국에서는 선거철에 (유세) 트럭도 돌아다니고 사람들이 나와서 인사도 해주시고, 후보자들이랑 직접 만날 수 있었어요. 그런 모습이 되게 신기하고 재밌게 느껴졌고, 좋은 경험이라고 느꼈습니다."
20대 초반인 박민석 씨도 "또래 친구를 포함한 주변 지인들이 다들 투표를 하려고 한다"고 했다.
"최근 여러 정치적 사건이 많았다 보니까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된 것 같아요. 어찌 보면 지금 대통령에 대한 평가라든지, 양당에 대한 평가라든지…많은 의미가 담긴 선거 같습니다."
영상: 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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