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동의강간죄 도입 요구 커지는데…22대 국회는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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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동의강간죄 도입 요구 커지는데…22대 국회는 ‘침묵’

투데이신문 2026-05-29 18:29: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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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진행된 동의없는 성폭력 관련 재판소원 기자회견 현장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br>
지난 4월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진행된 동의없는 성폭력 관련 재판소원 기자회견 현장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형법상 강간죄 판단 기준을 가해자의 ‘폭행·협박 여부’에서 피해자의 ‘동의 여부’로 전환해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요구가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지만 국회는 여전히 법 개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지방선거 국면까지 겹치면서 ‘비동의강간죄’ 입법 논의가 사실상 멈춰 서며 제도 공백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9일 국회에 따르면 22대 국회가 개원한 지 2년이 지났지만 ‘비동의강간죄’ 관련 법안은 아직 단 한 건도 발의되지 못했다.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협박’ 중심에서 ‘동의 여부’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 골자인 형법 개정안은 이미 지난해 3월 조국혁신당 정춘생, 진보당 정혜경 의원실 등에서 초안을 마련했지만 국회 제출 요건인 의원 10명 이상의 동의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발의조차 이뤄지지 못한 상태다.

‘미투 운동’ 이후 사회적 논의가 확산됐던 20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 10건, 21대 국회에서 3건이 각각 발의됐던 것과 달리, 22대 국회에서는 입법 움직임 자체가 사실상 멈춘 상태다.

국회 논의가 사실상 멈춰 있는 사이 법조계와 시민사회는 헌법소원과 서명운동 등을 통해 강간죄 구성요건 개정 필요성을 다시 공론장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와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탁틴내일, 천주교성폭력상담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등은 ‘동의없는 성폭력’ 재판소원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꾸린 뒤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등을 이유로 지난달 23일 ‘동의 없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재판소원을 청구했다. 공대위는 현재 헌법재판소의 본안 심리 회부를 촉구하는 서명운동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해당 사건은 법원이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를 충분히 인정하지 못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피해자는 성관계 과정에서 수십 차례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재판부는 이를 ‘폭행·협박’ 수준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1·2심 모두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피해자는 상황의 위급성을 느껴 휴대전화로 현장을 녹음했고 약 1시간 분량의 녹취에는 75차례 이상 거부 의사가 담긴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검찰은 피해자의 상고 요청에도 대법원 상고를 제기하지 않았다.

일부 법조계와 시민단체는 성폭력이 대부분 젠더권력, 조직이나 소속집단 내 위계, 사회적 위치 등을 이용해 일어나는데, 이 같은 권력관계를 고려할 때 폭행·협박이 명시적으로 사용되기보다 유형력이 명시적이지 않은 성폭력이 대다수라는 입장이다. 기존 법리가 과거 ‘정조 보호’ 중심 인식 속에서 형성된 만큼 이제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중심 가치로 삼는 현행 법체계에 맞춰 관련 규정을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2024년 상담통계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접수된 강간 피해 상담 218건 가운데 폭행·협박이 전혀 없었던 사례는 70.2%(153건)에 달했다. 물리적 폭행은 없지만 강압이나 압박이 동반된 ‘강제·강압’ 유형도 17.0%(37건)로 집계됐다. 현행 강간죄 판단 기준인 폭행·협박 요건으로는 인정받기 어려운 사례가 전체의 87.2%에 이르는 셈이다.

반면 폭행·협박이 동반된 상담은 12.8%(28건)에 그쳤다. 이중 현재 판례와 학설이 강간죄 성립 기준으로 유지하고 있는 ‘최협의 폭행·협박’에 해당하는 사례는 전체의 7.3%(16건)에 불과했다. 최협의설에 따라 7.3%에 해당하는 사례만 명확한 강간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진보당 정혜경 의원이 지난해 3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비동의 강간죄 및 성범죄 처벌 강화 3대 법안 발의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진보당 정혜경 의원이 지난해 3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비동의 강간죄 및 성범죄 처벌 강화 3대 법안 발의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소장은 지난 27일 국회에서 열린 ‘동의 기준의 성폭력 형사법체계,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나’ 토론회에서 이 같은 자료를 공개하며 “현행 형법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을 기본 구성요건으로 하고 있고 그 해석을 ‘현저히 저항이 곤란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으로 하는 최협의설을 유지하고 있다”며 “현행 법 조항과 판례과 학설은 헌법상 기본권인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에 충분하기는커녕 그를 구조적으로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강간이라는 폭력은 현재 기본권을 보호하고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책무가 있음에도 국가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부작위 상태”라며 “더 나아가 혼란을 야기하고 2차 피해와 위험을 일으키며 성폭력 방지를 지연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비동의강간죄 도입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7월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글로벌 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만 19살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95% 신뢰수준·표본오차 ±3.1%p)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72.2%가 비동의강간죄 도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 같은 목소리에도 입법 공백이 이어지는 배경으로 최근 수년간 강화된 ‘안티 성평등’ 정치 지형이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0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 이후 젠더 이슈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심화된 데다 2022년 대선 과정에서 여성가족부 폐지와 성폭력 무고죄 강화 등을 내세운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관련 논의 공간도 빠르게 위축됐다는 분석이다.

국회가 ‘안티 성평등’ 정서와 선거 정치의 부담 속에서 법 개정을 미뤄오는 사이 과거 한국과 유사하게 보수적인 강간죄 체계를 유지하던 프랑스와 일본 등은 이미 형법을 개정해 강간죄 판단 기준을 피해자의 ‘동의 여부’ 중심으로 전환했다.

반면 비동의강간죄 도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반대 측은 성관계 과정에서의 ‘동의 여부’가 개인의 내심 영역과 맞닿아 있는 만큼 객관적 입증이 쉽지 않아 무고나 과잉 처벌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3월 국회 국민동의청원에는 비동의강간죄 입법에 반대하는 청원이 올라와 5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고 국회에 회부된 바 있다. 자신을 ‘14년 차 성범죄 전문 변호사’라고 소개한 청원인은 “동의 여부는 개인의 속마음에 해당하는 영역인 만큼 사후적으로 이를 판단하기 어렵다”며 “명확한 기준 없이 처벌 범위가 확대될 경우 억울한 처벌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장길완 상임 활동가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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