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보수 텃밭... 이념보다 '지역 실리' 우선하는 민심
울산 남구갑은 높은 소득 수준과 교육열로 '울산의 강남', 옥동 학원가는 '울산의 대치동'으로 불리는 대표적인 보수 우세 지역이다. 중산층과 고학력 전문직 계층이 두터워 그간 국민의힘의 견고한 지지 기반 역할을 해왔으나, 이번 보궐선거를 앞두고 바닥 민심이 심상치 않다.
최근 공표된 여론조사들은 국민의힘의 일방적 우세 공식이 깨졌음을 보여준다. 주력 제조업의 정체와 인구 감소, 청년 유출 등 지역 위기가 깊어지면서 유권자들이 정당이나 이념보다 교통, 교육, 주거 등 구체적인 현안을 해결할 적임자를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5월 들어 공표된 여러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전태진 후보와 국민의힘 김태규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치열한 백중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8~19일 ubc울산방송 의뢰로 리얼미터가 진행한 조사(남구갑 거주 만 18세 이상 529명 대상, ARS 방식, 95% 신뢰수준 표본오차 ±4.3%p)에서는 전태진 후보 36.5%, 김태규 후보 42.3%로 나타났다. 22~23일 울산MBC 의뢰로 한길리서치가 실시한 조사(501명 대상, ARS 방식, 95% 신뢰수준 표본오차 ±4.4%p)에서는 전 후보 40.0%, 김 후보 40.5%로 격차가 0.5%포인트까지 줄었다.
24~25일 진행된 여론조사꽃 자체 조사(500명 대상, ARS 방식, 95% 신뢰수준 표본오차 ±4.4%p)에서는 전 후보 40.7%, 김 후보 39.4%를 기록했고, 같은 기간 부산일보 의뢰로 에이스리서치가 진행한 조사(502명 대상, ARS 방식, 95% 신뢰수준 표본오차 ±4.4%p)에서는 전태진 후보 38.0%, 김태규 후보 38.3%로 사실상 동률이 나왔다. (자세한 조사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주목할 점은 '적극 투표층'에서의 지지도다. 전체 유권자를 기준으로 하면 두 후보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양상이지만,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답한 적극 투표층에서는 전태진 후보가 일관되게 우세한 경향을 보였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적극 투표층의 전태진 후보 지지율은 42.5%로 김태규 후보(41.6%)를 앞섰고, 한길리서치 조사에서는 46.0% 대 39.7%로 격차가 벌어졌다. 여론조사꽃 조사(전태진 42.5% 대 김태규 40.1%), 에이스리서치 조사(전태진 45.3% 대 김태규 39.3%) 역시 적극 투표층에서는 전 후보가 앞서는 결과를 보였다.
적극 투표층에서 두 후보의 명암이 갈리는 이유는 진보층의 투표 의지가 강한 반면 보수층 일부의 투표 의향이 떨어진 결과로 보인다. 전통적 보수층의 투표 포기와 관망 기류는 윤석열 전 대통령 계엄 1심 유죄 판결 이후 국민의힘이 명확히 선을 긋지 못했다는 인식과 맞물려 있다. 온건 보수·중도층은 불법 계엄 옹호 논란의 중심에 선 김태규 후보에게 실망하며 투표장으로 향할 동력을 잃고 있고, 이것이 적극 투표층에서의 지지도 격차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김태규에 쏠리는 "윤어게인"이라는 따가운 시선
국민의힘 김태규 후보가 강조하는 "환승 정치, 배신 정치 심판"의 구호는 더불어민주당 김상욱 후보(전 남구갑 국회의원, 현 민주당 울산시장 후보)를 향하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으로 당선된 뒤 탈당해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긴 김 전 의원을 정조준해, 보수 진영의 상처와 배신감을 자극하고 당심을 다시 모으겠다는 전략이다.
김 후보는 민주당 공천을 "낙하산"이라고 비판하며 보수의 자존심 회복을 호소하는 한편, 윤석열 정부에서 권익위·방통위 부위원장을 지낸 국정 경험을 "검증된 경력"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김 후보에게는 '윤어게인' 이미지가 부담 요인이다. 김 후보가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을 옹호해 온 이력이 온건 보수, 중도층의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 보수 성향의 조선일보마저 사설을 통해 그를 '윤어게인 공천'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한 점도 이런 분위기를 뒷받침한다. 보수 핵심층 결집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중도 확장성에는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전태진의 '여당 프리미엄'과 실용 노선
더불어민주당 전태진 후보는 울산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졸업한 울산 토박이다. 울산 학성고와 서울대를 졸업한 변호사 출신으로, 20년간 중앙 부처의 정책 자문을 맡아온 경력을 앞세워 '준비된 전문가'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전 후보는 민주당 '인재 영입 1호'라는 타이틀을 내세워 "이재명 정부-울산시장과 한 팀이 되어 중앙정부의 지원과 국비를 확보하겠다"며 실익을 전면에 내세운다. 진영 대립에 피로감을 느낀 실리형 유권자들이 이 같은 '이재명 정부 원팀론'에 주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공약의 내용과 무게감에서도 차별화를 꾀했다. 문수로 일대 상습 정체를 해소하겠다는 '지하 고속화도로 조성', 옥동 군부대 부지를 활용한 '울산 AI 밸리 조성과 제2국립디지털도서관 및 AI캠퍼스 유치' 등은 교육 환경과 자산 가치에 민감한 남구갑 주민들의 관심사에 정확히 맞닿아 있다.
김태규 후보가 제시한 '국립 울산 탄소중립 전문과학관' 공약과 비교할 때, 전태진 후보의 교통·교육·미래 프로젝트가 "지역 현안과 경제에 더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6월 3일의 선택... 이념의 고수인가, 실리의 수용인가
이번 울산 남구갑 보궐선거는 보수 강세 지역이라는 기존의 구도를 넘어, 향후 정치 지형 변화를 가늠할 시험지로 떠올랐다.
국민의힘 김태규 후보를 선택하는 것은 배신 정치를 심판하고 보수의 자존심을 지키며 정권 견제에 힘을 싣는 선택으로 읽힐 수 있다. 반대로 더불어민주당 전태진 후보를 선택하는 것은 진영 대립보다는 이재명 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지역 발전을 우선하겠다는 실리적 판단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국민의힘이 가진 탄탄한 조직력과 오랜 지지 기반은 김태규 후보에게 유리한 요소다. 그러나 최근 여론조사 흐름은 더불어민주당 전태진 후보 역시 충분히 승부를 겨뤄볼 만한 위치에 올라섰음을 보여준다.
6월 3일 남구갑 주민들의 한 표는 울산의 향후 발전 방향뿐 아니라, 선거 이후 보수 진영의 재편과 야권 내 역학 관계에도 상당한 파장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 번도 더불어민주당이 이긴 적이 없는 '보수의 아성' 남구갑에서 전태진 후보가 승리할 경우, 현 여권에게는 영남 지역주의의 두터운 벽에 또 하나의 균열을 내는 상징적 사건이 될 수 있다.
[폴리뉴스 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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