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이예서 기자】 국내 유일 전차 생산 기업이자 ‘전차 명가’로 불리는 현대로템이 AI 기반 미래 전장 체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차가 전장을 지배하던 시대를 넘어 AI가 군집 로봇과 무인체계를 통제하는 전쟁 환경이 현실화되면서, 단순 무기 제조를 넘어 소프트웨어·로봇·인공지능(AI)을 결합한 ‘지능형 전장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에 나선 모습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 방산 AI 기업 안두릴(Anduril)과 협력에 나선 현대로템이 산업통상자원부와 국방과학연구소(ADD) 국책 과제까지 연이어 따내며 미래 무인전장 체계 선점에 나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AI 기반 지휘통제와 무인체계 통합 운영 역량 확보를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방산업계가 기존 하드웨어 중심 경쟁에서 AI 기반 소프트웨어 경쟁으로 재편되는 흐름 속에서 현대로템의 전략에도 관심이 쏠린다.
현대로템은 지난 7일 안두릴과 유·무인복합(MUM-T) 지휘통제체계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안두릴은 AI 기반 전투 운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미국 방산 기술 기업이다. 양사는 이번 협약을 바탕으로 유인 전투체계와 무인 로봇·드론을 연계 운용하는 MUM-T 통합 지휘통제체계 개발에 협력할 계획이다.
특히 현대로템은 다목적 무인차량 HR-셰르파와 다족보행로봇 등 무인 플랫폼에 안두릴의 AI 운영체계 래티스(Lattice)를 적용할 예정이다. 래티스는 무기체계 센서를 기반으로 표적 추적과 전장 상황 분석 등을 수행하는 시스템이다. 향후 주요 지상무기체계 플랫폼에 래티스를 적용해 유인 전투차량, 무인 로봇과 드론 간 군집제어 및 자율 임무수행 기능을 강화한다는 게 회사 방침이다.
양사는 이동형 대(對)드론 관제 시스템 구축도 추진한다. 안두릴의 드론이 공중에서 적 드론을 탐지하면 차륜형장갑차 등 기동무기체계가 작전 상황 분석과 지휘관의 임무 결정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미래 방산 시장은 하드웨어 중심에서 AI·소프트웨어 기반 체계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며 “안두릴과의 협력을 통해 AI 지휘통제 역량과 무기체계 간 상호운용성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다. 현대로템은 지난 26일 산업통상자원부와 ADD가 각각 발주한 ‘자연어 명령 기반 이종·다중 로봇 통합 관제 시스템’과 ‘피지컬 AI 기반 통합 시뮬레이터·모듈형 로봇 시스템’ 연구개발 과제의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피지컬AI 기술 고도화에 모든 역량을 쏟고 있다”며 “앞으로도 대한민국 육군이 믿고 사용할 수 있는 유·무인복합 무기체계 개발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산자부 연구개발의 핵심은 인간의 자연어 명령만으로 서로 다른 다수의 무인 플랫폼을 동시에 통제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데 있다. 기존처럼 관리자가 개별 로봇을 정형화된 명령어로 조종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AI가 상황을 분석하고 임무를 수행하는 지능형 무기체계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이다. 현대로템은 해당 기술을 다목적 무인차량 HR-셰르파와 다족보행로봇 등에 적용해 군집 단위 통합 운용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ADD 과제 역시 미래 전장 변화와 맞닿아 있다. 현대로템은 실제 전장 환경을 가상으로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 기반 시뮬레이터와 모듈형 무인로봇 플랫폼 개발에 나선다. 시뮬레이터가 구축되면 실제 장비 투입 이전 단계에서 다양한 임무 환경을 반복 검증할 수 있어 개발 효율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
모듈형 무인로봇 플랫폼에는 바퀴형 이동장치와 로봇팔, 폭발물 탐지장비 등 다양한 임무 장비가 탑재된다. 중앙 서버와 연결이 끊긴 상황에서도 현장에서 자체 판단이 가능한 엣지(Edge) AI 기술도 적용될 예정이다. 미래 전장에서 통신 두절 상황까지 고려한 자율 운용 능력을 확보하겠다는 의미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기존 전차·장갑차 중심의 전통 방산 이미지를 넘어 AI·무인화·소프트웨어 기반 첨단 기술 기업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사업”이라며 “무인 차량 HR-셰르파 등 기존 플랫폼 사업과 연계해 미래 전장 대응 역량을 강화하는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는 이번 수주가 단순 과제 확보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한다. 상지대학교 최기일 군사학과 교수는 “최근 군 내부에서도 피지컬 AI와 휴머노이드 로봇 도입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이번 과제들은 정부가 앞으로 어떤 방산 기술을 중요하게 볼 것인지를 보여주는 선행 신호”라고 말했다.
이어 최 교수는 “피지컬 AI는 단순 휴머노이드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무인 지상차량과 드론, 다족보행로봇 등 AI 기반 자율체계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라며 “미래 전장은 사람이 장비를 직접 조작하는 수준을 넘어 AI 기반 무인체계가 스스로 판단하고 임무를 수행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현대로템과 현대차그룹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글로벌 로봇 기업 보스턴다이나믹스를 인수하며 휴머노이드·다족보행 로봇 분야 핵심 기술을 확보했다. 이후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필두로 피지컬 AI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그룹 계열사인 현대로템이 기존 방산 플랫폼 기술에 피지컬 AI 역량을 결합해 미래 무인전장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줄 것이라는 게 업계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방산 분야에서 피지컬 AI와 무인체계가 핵심 흐름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연구개발 과제는 입찰과 평가를 거쳐 사업자가 선정되는 만큼 연속 수주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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