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지분을 6.17%까지 끌어올리며 '인수 로드맵'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변경한 데 이어 연말까지 5000억원을 추가 투입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다만 KAI 노조의 거센 반발과 국내 방산 시장 독과점 논란은 여전히 꺼지지 않는 불씨다. K-방산 지형도가 격변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는 모양새다. <비즈니스플러스> 는 국내 점유율 다툼이 아닌 글로벌 체급 확대라는 관점에서 KAI의 민영화 및 K-방산의 미래를 다시 묻는다. [편집자주] 비즈니스플러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AI 지분 확보를 둘러싸고 국내 방산 시장 독과점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KAI 노조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한화오션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이미 방산 산업 전반에 걸친 수직 계열화를 형성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KAI까지 영향권에 포함될 경우 시장 경쟁 약화와 내부거래 확대, 산업 생태계 왜곡은 불가피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우려가 글로벌 방산 시장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화의 KAI 인수가 왜 독점으로 재단될 수 없는지, 그 근거를 6가지로 정리해 본다.
우선, 한화와 KAI의 주력 분야는 사실상 겹치지 않는다. 한화는 지상방산과 해양방산 분야에서 무기체계를 공급하고 있고, KAI는 항공방산 분야에 특화돼 있다. 두 회사 간 중복되는 시장은 제한적이며, 오히려 양사는 상호 보완적 관계로 평가된다. 기술적 관점에서도 연구개발(R&D) 및 설계 협력, 생산 설비 통합관리 등을 통해 비용 절감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어 독점 이슈가 발생할 여지가 크지 않다. 한화의 엔진, 레이더, 항공전자, 무장, 우주 역량에 KAI의 완제기 체계 개발, 생산 역량이 결합되면 양사의 사업 영역이 겹치기보다는 확장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한화와 KAI의 주 무대는 국내가 아닌 글로벌 방산 시장이다. 최근 양사 모두 수출 비중이 50%를 넘어서며 해외 수주에 사활을 걸고 있다. 경쟁 상대는 이미 국내가 아니라 글로벌 방산 기업들이다. 한화는 미국, 중국은 물론 독일 라인메탈, 영국 BAE시스템스, 스웨덴 사브(SAAB), 노르웨이 콩스버그, 이탈리아 레오나르도 같은 주요국 대형 방산업체들과 정면 승부를 벌이고 있다. 이 기업들은 인수합병을 반복하며 갈수록 덩치를 키워가는 추세다. 양사의 글로벌 방산 시장 점유율이 아직 미미한 수준임을 감안하면, 한화가 KAI를 인수하더라도 국내 시장 독점 여부는 쟁점이 되기 어렵다. 국내 시장 상황만 놓고 독점을 거론하는 것은 단편적 시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방산물자는 구조적으로 기업이 임의로 가격을 올리거나 시장을 지배할 수 없다. 방위사업법은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원가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는 국가 전략자산으로서 방산기업에 대한 강력한 감독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공급망 안정성과 국방력 강화라는 공익적 가치를 우선순위에 두고 언제든 관리감독을 강화할 수 있다. 오히려 기업이 대형화되면 정부의 관리 효율성이 높아지는 측면도 있다. 파편화된 기업들을 일일이 관리하거나 기업 간 불건전한 소모적 경쟁으로 인한 행정적 낭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기업 간 전략적 단일 채널을 통해 국가 안보정책을 훨씬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집행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한화와 KAI의 협력은 독점이 아닌 윈-윈 구조로 이어진다. 양사 협력이 심화되면 대규모 투자, 글로벌 수주 확대, 사업 확장을 통한 시너지가 발생한다. 이는 협력 업체들과의 상생은 물론 국내 방위산업의 외연 확장으로 이어진다. 독점이 아닌 '역량의 집중'으로 방산 생태계를 활성화하고 중소 방산기업 육성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한화라는 플랫폼이 글로벌 수주에 성공하면 수많은 국내 부품사들이 함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통로가 열린다. 한화와 KAI의 통합은 독과점 여부로 재단할 사안이 아니라,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의 경쟁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국가 경제와 지역 산업 생태계 구축에 기여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아울러, 통합과 대형화를 '독과점'이 아닌 '글로벌 경쟁 전략'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현재의 에어버스(Airbus)는 프랑스 아에로스파시알, 독일 다사(DASA), 스페인 카사(CASA)가 국경을 넘어 통합해 성공한 결과물이다. 유럽조차 '독점 우려'보다 '미국에 대항할 체급 확보'를 더 급선무로 판단한 것이다. 국내 시장 파이를 누가 더 가져가느냐는 소모적 논쟁에서 벗어나, K-방산이 글로벌 메이저리그에서 에어버스급 위상을 가지고 경쟁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할 시점이다. 한화는 국내 방산 선도기업으로서 한국이 글로벌 방산 강국으로 발돋움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움직이고 있다. 국내 방산기업 사이의 협력과 통합은 단순한 기업 간 독점 논쟁이 아닌, 대한민국이 세계 4대 방산 강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산업구조 고도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끝으로 유럽 방산기업들의 초국가적 대형화 추세에 대응해야 한다. 유럽은 프랑스 탈레스와 독일, 이탈리아 기업들이 손을 잡으며 '초국가적 대형화'를 지향하고 있다. 글로벌 트렌드는 이미 메가 본드(Mega-bond) 단계에 진입했는데, 한국만 국내 독점이라는 낡은 프레임에 갇혀 K-방산의 손발을 자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탈레스나 레오나르도가 대형화를 택한 것은 독점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정도 규모가 아니면 차세대 기술 개발 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화가 규모를 키워야 하는 이유 역시 국내 독점이 아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차세대 무기 개발을 위한 체력 확보 차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전쟁에서 살아남은 것은 국내 1, 2위라서가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대적할 '체급'을 가졌기 때문이다. 독점 논란에 매몰돼 골든타임을 놓치는 사이 거대화된 유럽과 미국의 공룡들이 글로벌 시장을 완전히 장악할 경우, K-방산이 비집고 들어갈 틈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국내 방산 회사들도 글로벌 경쟁사와 손을 잡기 시작했다. 지난해 LIG넥스원은 에어버스 D&S(Defense&Space)와 통합방공 분야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장원준 전북대 첨단방위산업학과 교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AI 지분 확대는 단순한 기업 투자 차원을 넘어 한국 항공우주, 방위산업의 구조 재편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며 "발사체, 위성, 항공기, 첨단항공엔진, MRO를 하나의 밸류체인으로 묶는 전략은 글로벌 방산 4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하는 국정과제 달성과 함께 미래 우주, 방산 시장의 글로벌 기업 육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충분한 명분이 있다"고 평가했다.
양성모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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