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와 첫 디지털 단독 화보를 촬영한 이후 벌써 6년이 지났네요. 그 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해외 공연을 자주 했고, 브랜드 협업이나 프로듀싱도 하면서 지냈습니다. 고뇌의 시간도 있었는데요. 특히 제가 만드는 곡이 완벽하길 원했다는 거였어요. 그 ‘완벽함’이 사실 ‘게으름’의 우아한 표현이라고 생각하게 됐죠. 내 음악을 내야 하는데, 계속 듣기만 하다 보니 자극도 안 오고, 제가 만든 음악에 자신감이 떨어지더라고요. 지금은 생각 정리가 많이 됐어요. 이번 앨범 작업도 물론 준비를 많이 했지만, ‘완벽함’보다 ‘날 것’의 느낌이 나는 부분도 많아요.
단순한 창작의 고통이 아니었네요. 지금까지 픽보이가 생각해 온 ‘완벽함’을 재정의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생각 정리가 어떻게 됐나요.
우선 무엇을 진짜로 원하는지 찾으려 했어요. 그게 어떤 것이든지요. 스스로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노력도 했어요. 원점으로 돌아가서 ‘왜 음악을 내야 하는가’, ‘거기 어떤 즐거움이 있는가’ 같은 질문을 저 자신에게 해 봤는데요. 결국 누구든 제 음악에 공감하고 즐겼으면 하는 마음이 가장 크다는 답이 나왔어요. 지금까지는 그 근본적 답에 대한 기준을 저에게 너무 가혹하게 적용했던 거죠.
이렇게 생각이 많았는데, ‘음악은 게임’이라고 했던 예전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나요.
제게 음악이 즐기면서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게임 같다’는 사고는 여전해요. 하지만 조금 추가된 생각이 있는데요. 게임도 어느 정도 레벨이 올라가면 재미가 없잖아요. 한 살씩 나이를 먹어갈수록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이 점점 사라지는 것처럼요. 너무나도 꿈꿔 왔던 해외 공연도 가끔은 자극이 되지 않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자극이 없으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 쉽지 않을 텐데요.
음악을 안 들어 보기도 하고 작업 공간을 바꿔 보기도 했어요. 제일 효과적이었던 건 일종의 루틴을 만드는 거였는데요. 최근에 60분마다 알람이 울리는 시계를 샀어요. 딱 정해진 시간만 필요한 일을 하고, 끝나면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서요. 여태껏 생각해 온 보상이 너무 크고 이상적이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일상에서 스스로에게 작은 보상을 줘 보는 거죠. 루틴을 지키다 보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효능감도 생기고요.
재킷과 팬츠는 Diesel, 셔츠는 Cos, 허리에 두른 니트는 Noice, 카디건은 Undercover, 슈즈는 Tods, 벨트 Saint Lauren, 왼손에 착용한 링은 모두 Vaxine, 상단 네크리스와 오른손에 착용한 제품은 모두 Bell&Nouveau, 하단의 네크리스는 모두 Hei.
치열한 고민을 거쳐 나온 오랜만의 앨범 타이틀 곡이 사랑 노래네요. ‘흔해 빠진 노래’는 직접 만든 음악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하루를 채워 주고 싶다는 내용이고, 한 달 전에 공개한 ‘혹시라도’에서는 짝사랑의 설렘이 느껴져요.
모두가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주제가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랑이 가진 아름답고 찬란한 감성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앨범 제목은 ‘Commercial Posh’입니다. 나란히 두기엔 어색한 조합의 단어들인데요.
‘상업적인’과 ‘우아한’이 붙었을 때 느껴지는 이질감이 좋았죠. 대중 가수로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업적 활동이 있잖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 생활을 하면서 그런 순간을 맞을 테고요. 스스로를 지키는 단어가 ‘우아함’이에요. ‘광대’지만 ‘우아한 광대’인 거죠. 저조차 자신을 우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남들이 그렇게 봐 주진 않을 거예요. 이따금씩 삶의 의미를 잃기도 하고, 불만족스러운 상황이 올 때도 있겠지만 중심을 잡기 위한 노력을 두 단어의 조합으로 표현해 봤어요. 이 생각을 앨범 제목으로 내걸었으니,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으로 난생 처음 인트로를 만들었습니다. 찢어지고 늘어지는 전자음들 사이로 모든 수록곡을 조금씩 녹인 1분 정도의 트랙이죠. 마지막에 ‘Commercial Posh’라는 내레이션으로 정체성을 짚어 주고, 바로 2번 트랙으로 연결되는 식이에요.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슬리브리스는 Noice, 진은 Calvin Klein, 슈즈는 Romantic Move, 벨트는 상단부터 Toga, Khaite, Dries Van Noten, 브레이슬릿은 Bell&Nouveau, 링은 Engbrox.
몇 년 동안 ‘무소속’으로 음악을 하고 있어요. 직접 활동 전반을 관리하면서 달라진 건 무엇일까요. 더 좋아지거나, 더 나빠진 것이 있다면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어느 정도의 서포터가 필요한 건 사실이에요. 거창한 건 아니고, 내 음악을 응원해 주고 관련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조력자요. 회사에 소속되면 그런 서포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죠. 그런데 지금보다 자유롭지는 못할 거예요. 혼자 된 후 자립심이 커지고 시야가 넓어졌다는 걸 느끼는데요. 먼저 직접 제안을 받고, 그걸 바탕으로 거래하는 과정에서 조율도 해 보고, 결과가 나오면 뿌듯해요. 또 이전에는 체감하지 못했던 것들, 이를테면 회사에 있을 때 도와 주시던 분들이 ‘나 때문에 고생 많았겠구나’ 싶은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일을 할 때 중요한 건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죠. 홀로 선 픽보이는 어떤 파트너인가요.
항상 만사를 삐딱하게 보는 경향이 있어요. 부정적인 태도와는 좀 다른데, 늘 ‘왜?’를 달고 살아요. 누군가에게는 공격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요. 궁금한 게 많아서 진취적이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없으면 없다고, 있으면 있다고 말하는 것이 하나도 창피하지 않은 걸 보면 솔직한 것 같기도 하고요.
끝내 기획부터 유통까지 전부 혼자서 하는 ‘가내수공업’ 앨범을 완성했습니다. 그 사이 업계 환경도 많이 변했죠. 인공지능(AI)이 음악 뿐만 아니라 전 분야의 판도를 바꾸고 있으니까요.
AI가 옳다, 그르다를 논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단지 이 도구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분명히 알아야 해요. AI가 채울 수 없는 부분도 명확히 인지해야 하고요. AI를 더 써서 스스로를 없앨지, 아티스트가 홀로 노력할지는 각자의 선택이죠. 창작을 하면서 도움을 받는 게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음악을 시작한 게 24살 때인데, 환경이 점점 편리하게 바뀌는 걸 느껴요. 사실 저는 악보를 잘 볼 줄 모르지만 그럼에도 음악을 만들고 있어요. 이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죠. 지인들과 AI 이야기를 할 때가 있는데요. 제 입장은 항상 ‘쓰고 싶으면 써’예요.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AI를 써서 만든 건 다른 누군가도 만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요리사는 요리를 잘 해야 하잖아요. 밀키트를 가져와서 요리사인 척을 하면 안되는 거죠. 다만, 밀키트라는 걸 잊을 만큼의 창작을 해 낸다면 엄청난 요리사로 인정해 줘야 해요. AI를 두고서도 좀 더 유연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슬리브리스는 Noice, 진은 Calvin Klein, 슈즈는 Romantic Move, 벨트는 상단부터 Toga, Khaite, Dries Van Noten, 브레이슬릿은 Bell&Nouveau, 링은 Engbrox.
음악이나 일 이야기를 들어보면 굉장히 이성적인데, 사실은 사랑이 많은 사람이기도 한 듯해요. 픽보이의 곁에는 ‘친구’, ‘가족’, ‘반려견’처럼 애정을 나누는 존재들이 항상 보이거든요.
사랑이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 것 같아요. 이번 앨범에는 처음으로 친구들 이야기를 넣었어요. 2번 트랙 ‘위로’요. 누군가를 달래주는 ‘위로’가 아니고, ‘위로 올라가겠다’는 뜻이죠(웃음). 제 친구들은 너무 대단한 친구들입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관련해 제가 책임지지 못할 말들을 물어 오거나 무례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위로’로 만들었어요. 저도 사람인지라 남들이 저를 친구들과 비교하는 걸 느끼지 못했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자격지심을 갖는다면 끝이 없다고 생각해요. 정말 자주 만나고 좋아하는 친구들이지만, 그들의 직업이 지금과 달랐다면 친구가 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기도 했어요. 그래도 친구였을 것 같아요. 그 점이 저에게는 정말 중요한데요. 어떤 왕관을 쓰고 있든, 그걸 벗어도 같이 있으면 좋고 편안한 친구들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같이 하와이에 다녀왔어요. 해변에서 놀다가 나머지 친구들은 차를 타고 가고, 정원 초과로 박서준과 저만 숙소까지 걸어서 갔습니다. 20분 정도 걸으며 말은 한두 마디 밖에 안 했어요. 아무 말도 안 해도 너무 편했죠. 서준이가 아닌 다른 친구여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그런 친구들이 있는 게 복이고,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아우터는 Diesel, 셔츠는 Lemeteque, 톱은 Givency, 팬츠는 Ferragamo, 슈즈는 Tods, 벨트는 상단부터 Toga,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Khaite, Bell&Nouveau, 아이 웨어는 Rayban by Essilorluxottica, 모자는 Brown hat.
내년이면 데뷔 10주년이네요. 픽보이의 자기소개를 새로 써 본다면요.
‘10’이라는 숫자가 상징적이지만, 크게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아요. 10년 동안 음악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하고, 저를 포함해 주변 모두 무탈한 것도 감사할 일이니까요. 10년차가 되지만 20년차, 30년차가 돼도 음악을 재미있게 대하는 가수로 남고 싶어요. 꾸준히 제 얘기를 하는,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요
‘픽보이’라는 활동명의 ‘피크(Peak)’는 사전적 의미로 ‘최대치’나 ‘정점’이잖아요. 10년 동안 ‘피크’의 의미가 달라졌나요.
‘피크’를 ‘가장 행복한 상태’라고 가정하면 되나요? 요즘은 그냥 제 주위 사람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버지께서 크게 편찮으셨는데요. 아버지와 어머니, 심지어 스스로에게도 괜찮은 척을 해야 하더라고요. 이후로는 저를 포함한 모두에게 별 탈이 없길 바라게 됐어요. 사실 ‘피크’는 ‘정상’이란 뜻인데 고요한 상태가 ‘피크’라니, 다음 음악에 녹여 봐야 겠네요(웃음).
티셔츠는 Helmut Lang, 슬리브리스는 Zara X Willy Chavarria, 팬츠는 Ferragamo, 슈즈는 Camper, 네크리스는 모두 Bell&Nouveau, 브레이슬릿은 Vaxine, 모자는 Attissu, 아이 웨어는 Gentle Mon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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