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섭 더봄] ‘그날의 함성’ 들리는 서대문형무소와 안산 자락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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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섭 더봄] ‘그날의 함성’ 들리는 서대문형무소와 안산 자락길을 걷다

여성경제신문 2026-05-29 10:00:00 신고

서대문 독립공원에는 3·1독립선언 기념탑과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이 보존되어 있다. /박종섭
서대문 독립공원에는 3·1독립선언 기념탑과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이 보존되어 있다. /박종섭

서울에 살면서 남산에 올라가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희미하다. 오히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남산을 더 자주 찾는다. 단체로 서울 관광을 오면 남산타워는 거의 필수 코스다.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서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한강의 경치는 프랑스 센강보다 더욱 크고 장엄하다. 찬란한 불빛의 서울 야경은 황홀한 꿈속에 흠뻑 빠지게 한다. 젊은 학창 시절 나도 서울에 올라와 야경을 바라보며 “저렇게 많은 집들 가운데 내 집은 하나 없구나”하고 탄식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남산을 가보고는 머리가 희끗하도록 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뿐만이 아니다.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은 가봤지만 서대문에 있는 독립문은 버스를 타고 오가며 보았을 뿐 가까이 가본 적도 없다.

독립공원에 세워진 3·1독립선언 기념탑이 그날의 외침을 말해주고 있다. /박종섭
독립공원에 세워진 3·1독립선언 기념탑이 그날의 외침을 말해주고 있다. /박종섭

독립의지 새겨진 순국선열추념탑과 독립문

때마침 내가 회장을 맡은 진로상담협회 소속 진로멘토단 회원들과 역사문화 탐방을 하기로 했다. 장소는 서대문 독립공원을 찾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둘러보고 산책로로 잘 가꾸어진 안산 자락길을 걷는 코스다.

서대문형무소를 둘러보는 시간은 1시간 30분, 안산 자락길을 한 바퀴 도는 데 2시간 30분, 정상 부근까지만 가면 1시간 10분 정도면 충분했다. 오전 9시 30분에 만나 먼저 독립공원을 둘러봤다.

독립문역 4번 출구로 나오니 곧바로 약 22m 높이로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순국선열추념탑이 있다. 탑에는 독립운동의 역정이 조각되어 우리 민족의 드높은 독립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공원에는 유관순 열사의 동상과 3·1 독립선언기념탑이 서 있다.

기념탑 뒤에는 그 유명한 3·1 독립선언문이 새겨져 있었고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이 판각되어 그때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또한 손에 독립신문을 높게 들고 서 있는 송재 서재필 선생의 동상이 있다. 그는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을 발간하고 독립협회를 창립하여 국민의 독립 사상과 민권 사상을 크게 키웠던 분이다.

독립문은 자주독립의 상징으로 독립협회에 의해 세워졌다. /박종섭
독립문은 자주독립의 상징으로 독립협회에 의해 세워졌다. /박종섭

공원 잔디밭에는 지나다니며 보았던 독립문이 서 있다. 회원들 대부분이 독립문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독립문은 1896년 서재필과 이상재 등이 중심이 되어 만든 단체인 독립협회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모양은 서재필이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자주독립 정신을 상징하는 독립문은 돌기둥으로 두 개의 문을 만들고 중앙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이, 출입로 왼쪽에는 완만한 돌기둥이 대칭을 이루듯 서 있다. 독립문이 이 공원에 서 있는 것은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의미가 있다. 36년 동안 일제에 나라를 잃고 독립을 위해 싸워온 선조들의 간절함이 얼마나 큰지 독립문에 새겨진 듯하다.

붉은 벽돌의 서대문 형무소는 민족의 아픔을 말해주는 듯 무심하게 서 있다. /박종섭
붉은 벽돌의 서대문 형무소는 민족의 아픔을 말해주는 듯 무심하게 서 있다. /박종섭

서대문형무소에 남은 애국지사의 피와 눈물

다음으로 우리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탐방했다. 붉은 벽돌로 세워진 여러 개의 옥사 건물이 있다. 마치 빼앗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며 흘렸던 애국지사들의 피의 흔적을 보는 듯 숙연해진다. 서대문형무소는 옥사와 사형장·망루 등이 원형 그대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붉은 벽돌 안으로 들어가니 긴 복도 양쪽으로 철창으로 이루어진 좁고 우중충한 감방들이 늘어서 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가슴이 답답할 정도의 비좁은 방이다. 저렇게 좁고 열악한 방에서 언제 나갈지도 모르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불안하고 힘들었을까 싶다.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10월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경성감옥으로 문을 열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에도 감옥으로 사용되어 1987년 11월 15일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할 때까지 운영되었다. 전시실에는 당시 투옥되었던 애국지사들의 사진이 진열되어 있었다.

거꾸로 매달려 물고문을 당하는 이 사진은 우리에게 조국이란 무엇인가 묻고 있다. /박종섭
거꾸로 매달려 물고문을 당하는 이 사진은 우리에게 조국이란 무엇인가 묻고 있다. /박종섭

형무소는 단순히 사람을 철장 속에 가두는 곳만이 아니다. 인간 이하의 대접과 수많은 고문의 현장이다. 실제 이루어졌던 고문실의 전시 모습은 끔찍함과 함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그 고문실에서 행해졌던 고문 기구와 행태는 보는 순간 가슴이 베어지는 듯하다.

그중에서 몇 개의 장면이 질리게 만든다. 손톱 끝을 예리한 송곳 등으로 찔러 고통을 주는 고문 도구가 손끝에 전해온다. 상자 고문은 상자 안쪽에 날카로운 못을 박아 놓고 사람을 조그만 상자 안에 집어넣어 마구 흔들며 못에 찔리게 하는 고문이다.

가장 섬뜩했던 고문은 사람을 거꾸로 매달고 코에 주전자로 물을 붓는 고문이다. 괴로워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참혹한지 숨이 멈추는 것 같았다. 우리의 애국지사들이 이러한 고문을 참고 견뎌내면서 지켜낸 이 나라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유관순 열사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순국한 8호 감방이다. /박종섭
유관순 열사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순국한 8호 감방이다. /박종섭

8호 감방의 유관순과 만세소리

건물은 여죄수를 가두었던 방이 따로 있었다. 거기에는 우리가 잘 아는 유관순 열사가 머물렀던 방이 있다. 우리가 잘 알 듯이 유관순 열사는 이화학당 학생으로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1919년 3월 1일 유관순은 이화학당의 기숙사 담을 넘어 만세운동을 했다. 학교가 임시 휴교로 문을 닫자 고향 천안 아우내장터(현 병천)에서 독립만세를 주도했다. 그러다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다.

1920년 서대문형무소에서 3·1절 1주년에 8호 감방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그 만세 소리는 서대문형무소 옥사 전체로 퍼져 3000명이 넘는 수감자들이 모두 만세운동에 동참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1920년 9월 2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순국하게 되었다. 그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운 고문에 시달렸을지도 상상이 된다.

안산자락길 정상에서 보는 서울시내 모습. 멀리 청와대 지붕이 보인다. /박종섭
안산자락길 정상에서 보는 서울시내 모습. 멀리 청와대 지붕이 보인다. /박종섭

안산 자락길서 마주한 푸른 희망과 역사의 숨결

서대문형무소와 독립공원을 돌아보며 그동안 피부로 접하지 못했던 당시의 상황들을 다시 한번 새길 수 있었다. 오늘날 이 나라가 이렇게 살게 된 것도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목숨을 내건 독립투사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가슴은 먹먹하고 아픔도 있었지만 오늘 이렇게 와 현장을 탐방할 수 있었던 것은 뜻깊고 의미 있는 일이었다.

독립공원과 이어지는 안산 자락길로 걸음을 옮겼다. 데크길로 길이 잘 닦여 있어 걷기에 너무 편리하다. 가는 길에 어린이도 만나고 연세 드신 어른들도 만났다. 그만큼 가족끼리 친구끼리 편히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오르는 길 한쪽 편에는 건강에 좋다는 황토길이 길게 조성되어 있었다. 아카시아 꽃이 만발하여 마치 꿀 향기가 진동을 하는 것 같다. 정상에 올라 내려다보니 무악재와 멀리 푸른 청와대 기와 지붕도 보인다.

처음 와본다는 회원들 중 멀리 가지 않아도 가까운 서울 시내에 이렇게 좋은 환경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며 감탄을 한다. 하루 4시간만 투자하면 역사가 숨 쉬고 역사의 산 교육장인 서대문형무소와 독립공원을 보고 산책길을 걸을 수 있다.

여성경제신문 박종섭 은퇴생활 칼럼니스트
jsp1070@hanmail.net

박종섭 작가

금융권 실무와 대학 사회복지 강의를 거쳐 정년퇴직 후 국민연금공단 노후준비 민간전문강사로 활동했다. 교육 현장과 군부대, 기업 등에서 인성교육에 힘써 ‘대한민국 인성교육 대학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슬기로운 은퇴설계 지혜로운 재무설계> , <가슴 떨릴 때 go! 제주 한 달 살기> , <행복노트> 등이 있으며, 현재 은퇴설계 전문강사이자 칼럼니스트로서 후회 없는 제2의 인생을 제안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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