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강현민 기자】 중동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 제한 조치가 3개월째 이어지면서, 포장재 핵심 원료인 나프타(납사) 수급난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원가 부담이 커진 국내 식품업계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29일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에 따르면 5월 첫째 주 국제 나프타 가격은 배럴당 110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한달 전인 4월 첫째 주(140달러)에 비하면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호르무즈 사태 발발 전인 지난 2월(60달러 선)과 비교하면 여전히 갑절에 가까운 수준이다. 최근 미국과 이란이 합의 수순을 밟고 있다는 소식에도, 수요 증가와 공급 부족 등으로 가격이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내 공급량도 원활치 않다. 지난 4월 수입된 나프타는 1045만배럴로 전년 동기 1967만배럴 대비 반토막 수준이었다. 같은 달 국내 생산된 나프타는 1936만배럴로 전년 동기 2379만배럴 대비 약 18% 줄었다.
나프타는 에틸렌 등의 공정을 거쳐 플라스틱 수지(PE·PP·PET)로 가공되는데, 이는 식품 포장재에 쓰이는 비닐, 용기, 트레이, 인쇄용 잉크 등의 원료로 쓰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나프타 수입량 절반(약 54%)이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들어오는데 전쟁으로 길목이 봉쇄되며 식품 포장재 가격 급등으로 이어지는 도미노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식품산업협회 관계자는 “현재는 전쟁 발발 초기보다는 수급 상황이 나아진 것으로 파악되지만, 전쟁 이전과 비교하면 업체들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이달부터 포장재 가격이 전년 대비 20~30%가량 상승한 곳도 있어, 원가 압박이 커지고 있다는 비명이 나오고 있다. 한 라면업계 관계자는 “전쟁 전만 해도 포장재 비축량이 넉넉했으나, 현재는 겨우겨우 물량을 끌어모아 근근이 버티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현재 오뚜기, 농심, 풀무원, 빙그레 등 국내 주요 식품 기업들은 당장의 생산 차질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오랜 업력을 바탕으로 거래처를 다변화해 둔 데다, 정부와 석유업계 차원의 나프타 수입국 다변화 노력도 병행되고 있어 그나마 사태 확대까지 번지지 않는 모양새다.
빙그레 관계자는 “기존에 확보한 물량이 있어 아직까지는 버틸 만한 상황”이라면서도 “다만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공급사와 향후 몇 개월 치의 재고를 공급받을지를 두고 협의 중인데, 전쟁 여파로 기존보다 수급 논의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오뚜기 등 다른 식품사들 역시 2개월 수준의 비축량을 유지하며 시황을 살피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글로벌 차원의 수요 증가와 공급 지연이 3개월째 누적되고 있어, 수급과 가격 측면 모두 아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여기에 1500원 안팎을 넘나드는 원·달러 고환율 기조도 내수 중심 식품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수입 원자재 의존도는 높은 반면 수출 비중이 적은 업체의 경우 환율로 인한 타격이 고스란히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제품 가격 인상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지만, 정작 식품업계는 일제히 선을 긋고 있다. 서민 물가와 직결되는 품목이 많은 만큼, 가격을 올리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라면이나 즉석밥 등은 국민 생활 필수품이라 가격 인상에 대한 소비자 저항감이 매우 높은 품목”이라며 “여기에 정부 역시 물가 안정과 가격 인상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당분간 업체들 간의 치열한 눈치보기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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