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공정과 노력, 존중의 가치를 상징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오랫동안 묵인돼 온 폭력과 비리, 침묵의 구조가 자리했다. 성적 지상주의와 수직적 위계질서 속에서 문제 제기는 곧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현장을 지배했다. 지도자의 말 한마디가 선수의 진로를 좌우하고, 조직을 떠나는 순간 경력이 끝날 수 있다는 공포는 침묵을 강요하는 장치로 작동해 왔다.
한국스포츠경제는 연중기획으로 특정 개인이나 종목의 일탈을 넘어 한국 스포츠 전반에 뿌리내린 구조적 문제를 짚는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돼 온 문화는 무엇이었는지, 왜 침묵이 이어졌는지, 그리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질문하고자 한다. 더 건강한 대한민국 스포츠를 위한 성찰과 변화를 모색한다. <편집자 주>편집자>
| 서울=한스경제 류정호 기자 | 축구계의 스포츠 윤리 관련 신고가 최근 3년 연속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변이 넓은 인기 종목이라는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상담·신고 건수가 주요 종목 중 높은 수준이다. 축구계 내부의 인권·윤리 관리 체계를 더 촘촘히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스포츠윤리센터는 인권침해와 비리 등 두 가지 대분류로 사건을 접수한다. 인권침해에는 성폭력과 폭행 등이, 비리에는 횡령과 배임, 승부조작 등이 포함된다. 센터가 제공한 ‘2023~2025년 종목별 상담·신고·처리 건수’ 자료에 따르면 축구 종목 상담 건수는 2023년 182건에서 2024년 380건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2025년에는 292건으로 전년보다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신고 건수는 증가세가 더 뚜렷했다. 축구 종목 신고 건수는 2023년 46건, 2024년 91건, 2025년 106건으로 3년 연속 늘었다. 2025년 기준으로는 태권도(143건)에 이어 주요 종목 중 최상위권에 해당한다. 같은 해 야구는 70건, 복싱은 63건, 수영은 61건이었다.
▲늘어난 신고, 단순 비위 증가로만 볼 수 없는 배경
다만 신고 건수 증가를 곧바로 축구계 비위 행위 증가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대한축구협회는 28일 본지 질의에 “스포츠윤리센터의 적극 홍보도 있었겠지만, 협회 자체적으로도 건전한 축구문화 확산을 위해 스포츠윤리센터 및 협회 신문고 기능의 안내와 강화를 꾸준히 추진해 왔다”며 “축구인들의 윤리센터 활용 횟수가 늘어난 것으로 파악한다”고 설명했다.
축구 종목의 특수성도 함께 봐야 한다. 축구는 등록 선수와 지도자뿐 아니라 유소년, 학원축구, 클럽축구, 생활축구까지 참여층이 넓다. 협회는 “신고 건수 증가를 비위 행위 증가로 연계해 판단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온라인 홍보와 다양한 현장 교육을 통해 축구계에 신고 기능을 안내해 왔고, 이를 통해 축구인들의 부정 및 비위 행위 관련 신고 의식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높은 신고 횟수는 타 종목 대비 등록 인구를 비교했을 경우 신고율로 환산한다면 그다지 높은 수치는 아닐 것으로 예측한다”고 덧붙였다. 축구계 전체 규모를 고려하면 단순 건수 비교에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저변이 넓은 종목일수록 피해자 보호와 신고 이후 절차, 지도자 관리, 예방 교육의 실효성은 더 중요해진다.
처리 결과를 보면 축구계 윤리 문제의 복합성도 드러난다. 2025년 축구 종목 처리 건수는 조치 요구 29건, 기각 17건, 각하 20건, 취하 32건으로 집계됐다. 신고가 실제 조치 요구로 이어진 사건도 있었지만, 절차상 요건이나 입증 문제, 신고자 의사 등에 따라 기각·각하·취하로 마무리된 사례도 적지 않았다.
▲예방 중심 전환, 현장 안착이 과제
협회는 지난해 컴플라이언스실을 신설한 뒤 윤리, 인권 분야를 사후 대응보다 예방 중심으로 운영하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협회 신문고 운영 체계 정비, 성희롱·성폭력 관련 지침 및 매뉴얼 정비, 현장 예방 교육과 윤리 캠페인 등을 중점적으로 진행했다. 올해는 스포츠윤리센터와 연계한 현장 교육, 인권보호관 활동 확대, 회원단체 참여 확대, 예방 콘텐츠 강화 등을 추진 중이다.
교육 체계도 확대하고 있다. 협회는 선수와 지도자, 심판, 행정가 등을 대상으로 등록 단계부터 현장 예방 교육까지 다양한 방식의 윤리·인권 교육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JoinKFA 시스템을 통해 성희롱, 성폭력 예방교육 이수 체계를 운영한다. 지도자·선수 등록 과정과 연계해 기본 예방 교육이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포츠윤리센터와 협업한 ‘스포츠윤리런’도 활용하고 있다. 협회는 2026년부터 17개 시도협회를 대상으로 연간 2회 이상 교육 참여를 기본 이행 기준으로 운영하고, 참여 확산을 위해 시도협회 지원금 평가에도 반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소년·성인·여자축구, 생활축구, 심판, 지도자 교육, 국가대표 운영 현장 등 영역별 교육 과정에도 윤리·인권·폭력 예방 내용을 반영하고 있다.
사안 발생 시에는 피해자 보호와 추가 피해 방지를 우선 원칙으로 두고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협회가 마련한 성희롱·성폭력 고충 처리 매뉴얼은 상담, 신고, 조사, 보호, 조치, 재발 방지에 이르는 절차를 구체화하고 있다. 비밀 유지, 불이익 조치 금지, 임시 분리 조치, 2차 피해 예방조치 등도 지침에 명시했다. 축구계 윤리 신고 증가는 침묵하던 문제가 제도권으로 들어오는 과정일 수 있지만, 동시에 신고 이후 보호와 조사, 징계, 재발 방지 체계가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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