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도 의지력도 운의 영역…불평등은 불합리한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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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도 의지력도 운의 영역…불평등은 불합리한 비극"

연합뉴스 2026-05-29 07:22: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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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저자 새폴스키 교수 서면 인터뷰

"우린 생물·환경 상호작용의 결과일 뿐…자유의지는 없다"

로버트 새폴스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로버트 새폴스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우리 모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생물학적 요인과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환경의 상호작용에 따른 결과에 불과합니다."

세계적인 신경과학자인 로버트 M. 새폴스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최근 국내에서 번역·출간된 책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문학동네 펴냄·원제 'Determined')에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란 없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폈다.

내 의지로 무언가를 선택했다는 것은 착각일 뿐, 모든 것은 짧게는 몇 초 전, 길게는 몇 세기 전에 이미 결정돼 있다는 주장을 신경과학과 심리학, 물리학, 역사학을 넘나들며 풀어낸 이 책은 출간 후 학계 안팎에서 적잖은 반향을 일으키며 주목받았다.

매 순간 선택에 직면하고,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무언가를 선택했다고 당연히 믿어온 이들에겐 새폴스키 교수의 대담한 주장은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새폴스키 교수는 그러나 연합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A와 B 사이에서 A를 선택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사람이 A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라는 질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유롭게 A를 선택했을 때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런 식으로 본다면 정작 중요한 것의 99%를 놓친다는 것이 내 주장의 핵심"이라며 "'어떻게 상황이 전개돼 그 사람이 이 시공간에 존재하며, A와 B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나의 선택에 이르기까지 작용한 모든 선행 요인에 대해 질문한다면, 결국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유전적·환경적 요인에 따른 결과물이라는 결론에 이른다는 것이다.

"지능도 의지력도 운의 영역…불평등은 불합리한 비극" - 2

새폴스키 교수는 청소년기 겪은 신앙적 위기를 통해 일찌감치 자유의지가 없다는 믿음을 처음 갖게 됐다고 했다.

그는 "어릴 때 매우 독실한 신자였는데 14살 때 여러 현자의 주석을 공부하던 중 내가 통제할 수 없고, 신의 뜻으로 여겼던 나의 한 성격 특성이 사실은 신이 나를 정죄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며 "신이 나를 이렇게 만들고서 그 모습에 화를 낸다는 사실이 나를 몹시 괴롭혔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새벽에 잠에서 깨어 "신은 없고, 자유의지도 없다. 우리는 생물학적 기계일 뿐이고 우주는 무관심하며 어떤 목적도 없다"는 깨달음을 얻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 막연한 믿음은 훗날 그가 하버드대에서 생물인류학을, 록펠러대에서 신경내분비학을 공부하고 저명 신경과학자로 자리 잡는 동안 확신으로 굳어졌다.

그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반박하는 사람에겐 자유의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달라고 역으로 질문을 던진다"며 "신경과학, 내분비학, 아동발달학, 유전학, 문화인류학 등을 공부한 다음 그 모든 결정요인에서 자유로운 행동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지 증명해 달라고 하면 아무도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은 어떤 행동을 이유로 누군가를 칭찬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다는 의미다.

새폴스키 교수는 "반세기 넘게 자유의지가 없다고 믿고, 그에 대해 글을 쓰고 가르쳐 왔음에도, 누군가가 나를 화나게 할 때마다, 혹은 내가 한 일로 칭찬받을 자격이 있다고 판단할 때마다 내가 얼마나 자동적이고 반사적으로 자유의지의 믿음에 빠져드는지 스스로 놀란다"고 털어놨다.

이어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하는 행동에 더 너그러워지고, 내가 무언가를 당연히 받아야 한다는 확신도 덜 갖게 됐다고 믿고 싶다"며 "여전히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책 속에서 새폴스키 교수는 대학 졸업식장의 졸업생과 환경미화원을 예로 들어, 이 두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을 모두 바꾸면, 졸업 가운을 입은 사람과 쓰레기통을 비우는 사람이 바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인의 부나 성취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에 달린 것이라면 이에 따른 차별은 불합리한 것이 된다.

그는 "타고난 지능도, 의지력이나 끈기를 갖는 것도 순전히 운의 영역"이라며 "자유의지가 없다면 누군가의 필요가 다른 사람의 것보다 더 우선시돼서도 안 된다. 당신보다 덜 배려받아야 마땅한 사람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불평등은 어떤 사람들은 자신과는 무관한 이유로 평균보다 나은 대우를 받고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평균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두 끔찍한 비극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번 책 이전에도 '행동', '스트레스'로 국내에 독자층을 형성해온 새폴스키 교수는 "800억 개의 뉴런을 한데 모으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일을 할 수 있는 뇌가 만들어지는데, 왜 20∼30%의 사람들에게서 뇌가 고장 나 '정신질환' 상태가 되는 것일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새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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