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重, KDDX 재입찰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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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重, KDDX 재입찰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

투데이신문 2026-05-28 20:11:1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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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차기 구축함 조감도. [사진=HD현대중공업]
한국형 차기 구축함 조감도. [사진=HD현대중공업]

【투데이신문 전효재 기자】 HD현대중공업이 방위사업청에서 주관하는 한국형 차세대 구축함(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사업 입찰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1차 입찰 불참으로 유찰 사태를 빚었으나, 장고 끝에 재입찰 참가 등록을 완료하며 한화오션과 정면승부를 예고했다. 경쟁입찰에 막이 오르며 2년째 지연된 KDDX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게 된 셈이다. 업계에선 HD현대중공업의 이번 결정에 대해 세계 1위 조선사로서 자존심과 국가 발전 기여라는 대의를 지키기 위한 결단으로 평가했다.

28일 HD현대중공업에 따르면 KDDX 사업 참여를 위한 입찰 참가 등록을 전날 완료했다. 회사 측은 “최고 수준의 함정 건조 역량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해군의 전력 강화 및 국가방위산업 발전에 기여하고자 이번 입찰에 참여했다”며 “끝까지 책임 있는 자세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HD현대중공업이 KDDX 사업에 입찰하는 건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해군의 차세대 전력 확보와 국내 함정 기술 자립 측면에서 중요성이 높은데다 선체와 주요 장비, 전투체계 등을 통합해야 하는 고난도 사업인 만큼 수주 결과가 특수선 사업의 경쟁 구도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글로벌 함정 시장 외연 확장과 미국 해군의 ‘마스가(MASGA) 프로젝트’ 참여를 위한 핵심 포트폴리오가 된다는 점에서 포기하기가 어렵다.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선 도전이 필요했다.

관건은 보안 감점이다. HD현대중공업은 2012년부터 2015년 소속 직원들이 경쟁사의 KDDX 설계도를 유출한 사건으로 1.2점의 보안 감점 처분을 받은 상태다. 적용 기간은 오는 12월 6일까지다. 소수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입찰 특성상 제안서 평가에서 보안 감점이 실제 적용될 경우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여기에 기본설계 자료 제공에 따른 불리한 입찰 구도까지 형성됐다. HD현대중공업은 KDDX 기본설계를 한화오션에 제공하라는 방사청의 지시에 반발해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1차 입찰 당시 HD현대중공업이 신중한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함정 건조는 개념설계, 기본설계, 상세설계를 거쳐 선도함 건조 순으로 진행된다. 업계에서는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까지 맡는다는 암묵적 원칙이 있었다. 함정의 뼈대를 설계한 곳이 제작까지 맡아야 결함을 최소화하고, 문제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 가릴 수 있어서다. 이는 1990년대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 사업 당시 시운전 과정에서 수중 방사 소음 문제가 발생하자 기본설계를 맡았던 현대중공업(현 HD현대중공업)과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를 맡은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책임 소재를 두고 갈등을 빚었던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이기도 했다. 하지만 KDDX 사업은 기존의 룰을 흔들었다.

방사청은 기본설계를 맡은 HD현대중공업과 수의계약을 진행하지 않고 상세설계를 경쟁입찰로 전환했다. 한화오션이 HD현대중공업의 군사기밀 유출 이력을 이유로 경쟁입찰 필요성을 제기해왔고, 해당 내용을 지난해 12월 이재명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이에 따라 기업의 셈법은 복잡해졌다. 자금과 인력을 들여 기본설계를 완수해도 상세설계에서 탈락하면 경쟁사에 핵심 기술과 도면만 제공하는 모양새가 된다.

전문가는 방위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경쟁입찰 방식이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한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 방산정책연구센터 정책연구팀 양찬 책임연구원은 “경쟁입찰이 방위산업계에 도입되면 기술력 싸움이 아니라 가격 경쟁으로 넘어가게 될 수 있다”며 “기술이 뛰어나도 최소 조건만 맞추며 저렴하게 완성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이는 납품하는 협력사 등 중소기업에게도 악순환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때문에 기본설계와 상세설계를 같은 기업이 맡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진단도 내렸다. 설계한 기업이 함정을 제작해야 설계 당시의 노하우가 온전히 반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양 책임연구원은 “기본설계 자료 자체는 국가 소유이기 때문에 경쟁사라도 넘기는 것이 당연하지만, 설계 과정에서의 회의록이나 브레인스토밍 자료 등 노하우들은 빠질 수밖에 없다”며 “설계 당시 기술적 철학을 공유했던 사람들이 배를 제작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짚었다.

HD현대중공업의 또 다른 고민은 3년 전 기본설계 당시 책정된 사업비와 큰 차이가 없는 예산 규모였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는 사업비가 축소됐고, 공사 기간도 단축되면서 사업의 리스크가 커진 상황이다. 이에 따라 사업 여건을 종합적으로 살피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HD현대중공업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1차 입찰 불참 배경으로 보안 감점을 피하기 위한 고의적 지연 전략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전문가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상지대학교 군사학과 최기일 교수는 “업계에서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예산 증액을 요청했으나 방사청이 한 푼도 증액해 주지 않았다고 들었다”며 “HD현대중공업은 여러 가지 제반 요건을 고려하며 손익 계산에 들어갔고, 수주 시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쟁사인 한화오션도 마찬가지로 비용적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지만, 수상함 분야의 레퍼런스를 쌓는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장기적 안목의 투자가 될 수 있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HD현대중공업은 재입찰 하루 전까지 고심을 거듭했다. 참여를 결정하면서도 “보안 감점 적용이 법적 근거 없이 부당하게 연장됐음을 확인했다”며 법원에 ‘보안 감점 연장 적용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KDDX 사업의 중요성을 고려해 경쟁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되, 불리한 평가 요소에 대해서는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방사청을 상대로 제기한 KDDX 기본설계 자료 공개 금지 가처분 신청 기각에 대해선 항고한 상태다.

다만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HD현대중공업의 재입찰 참여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결정된 게 아니냐는 의문이 향후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해석으로 이어지고 있다. 앞서 방사청은 1차 입찰에 참여하지 않은 HD현대중공업을 향해 ‘사업 지연 우려’를 언급하며 압박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복수의 전문가들은 갑의 우월적 지위를 가진 방사청에서 입찰 참여에 대한 무언의 압박을 하고, HD현대중공업으로선 방사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번 입찰 참여를 포기할 경우 정부발 후속 사업 수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 전문가는 “이번 사업만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방사청의 사업관리 실패와 리더십 부재를 향한 책임론을 제기했다. 업체 간 경쟁 구도가 장기간 이어졌음에도 사업 추진 방식과 입찰 구조를 빠르게 정리하지 못하면서 사업 지연과 전력화 차질 우려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양 책임연구원은 “양사의 법적 문제 제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방사청이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밀어붙이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한쪽이 문제를 제기하면 그쪽으로 쏠리는 등 전체적인 처리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방사청이 사업자 결정 방식만 빠르게 결정했어도 2년 동안이나 사업에 차질이 생길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사업 지연의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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