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 중인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안)’에 반도체 클러스터 지정 요건으로 ‘수도권 외 지역’을 명시하자, 경기도와 도내 시·군들이 국가 반도체 경쟁력 약화와 기업 투자 위축을 우려하며 강력한 공동 대응에 나섰다.
경기도는 28일 경기도청 율곡홀에서 현병천 도 미래성장산업국장 주재로 도내 시·군 실·국장과 차세대융합기술원,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한국나노기술원 등 관계기관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반도체특별법 시행령(안) 수도권 배제 관련 도-시·군 긴급 현안회의’를 개최했다.
앞서 도는 21일 산업통상부에 시행령안의 수도권 배제 조항을 삭제해 달라는 의견서를 공식 제출(경기일보 28일자 1·11면)한 상태다. 이번 회의는 정부의 수도권 배제 기조에 맞서 도내 시·군별 피해 가능성을 진단하고, 지방자치단체 간의 유기적인 공동 대응 논리를 고도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 반도체 특별법 시행령안 수도권 배제 조항은?…‘수도권 외의 지역일 것’
반도체 특별법 제2조 제2호를 보면, 반도체 클러스터의 정의를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산입법)’에 따른 산업단지,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국가첨단산업법)’에 따른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명시하고, 시행령에서 ‘그 밖에 지정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지역’을 규정하도록 위임하고 있다.
이어 제11조 제5항에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반도체 클러스터 지정 신청 시 갖춰야 할 요건으로 ▲충분한 국내외 기업의 입주 수요 확보 ▲부지 및 통신·용수·전력 등 기반 시설 확보 ▲소요 재원의 조달 실현 가능성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 등을 명시했다.
문제의 발단이 된 특별법 시행령 제정안 제15조 제1항을 보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으로 ▲국토 균형 발전 및 지역 간 산업 격차 해소에 기여할 수 있을 것 ▲수도권 외의 지역일 것 ▲그 밖에 산업부 장관이 정해 고시하는 기준을 충족할 것 등을 규정하고 있다.
경기도는 대통령령 요건에 이미 ‘국토 균형 발전 및 지역 간 산업 격차 해소 기여’라는 내용이 담겨 있어 균형 발전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음에도, ‘수도권 외의 지역일 것’이라고 못을 박은 것은 반도체 특별법의 제정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특히 경기도는 수원·용인·성남·화성·안성·평택·오산·이천 등 8개 시·군이 ‘반도체 클러스터’의 핵심으로, ‘반도체 벨트’ 구축까지 제시되는 상황에서 해당 독소 조항을 반드시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 기업 유치 무산·앵커기업 배후지 차질·북부 중첩규제 심화… ‘3대 피해 우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시·군들은 정부의 시행령(안)이 확정될 경우 지역 산업 생태계가 입을 치명적인 타격에 대해 성토했다. 시·군들이 제기한 우려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집약된다.
첫째 외투기업과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을 유치해 온 지역 전략의 위축이다. 오산시는 글로벌 장비기업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 등과 연계한 연구단지 조성 차질을 우려했고, 부천시는 DB하이텍 기반의 외국기업 투자 협의에 부정적 영향이 미칠 것을 전했다. 과천시는 지식정보타운 등을 활용한 AI·AX 신산업 육성 전략의 타격을, 시흥시는 피지컬 AI 특화지역 조성을 비롯한 전략산업 생태계 위축을 염려했다. 성남시는 판교 중심의 ‘팹리스 10배 육성 전략’이 정부의 수도권 배제 조항과 충돌하며 심각한 정책 혼선을 빚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둘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형 앵커기업과 연계한 배후 지역 조성 계획의 차질이다. 평택시는 삼성전자 5·6공장과 연계한 배후지 조성 및 소부장 투자 유치 악영향을, 화성시는 제3기 소부장 특화단지 지정 준비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수원시 역시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추진 중인 연구특화지역 및 경제자유구역 지정 과정에서 난관이 예상된다고 토로했다.
셋째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수십 년간 역차별을 받아온 경기 북부·동부 규제지역의 피해 심화다. 인구감소지역이자 접경지역인 연천군과 가평군은 중첩규제를 감내해 온 지역에 또다시 수도권 배제라는 대못을 박는 처사라며 호소했다. 고양시는 향후 남북관계 개선 시대를 대비한 거점 성장 잠재력이 위축될 것을 우려했고, 의정부시는 반환공여구역 및 경제자유구역 개발 전략의 차질을, 김포시는 공항·항만 연계 첨단산업 성장동력의 약화를 지적했다.
■ 전문가 “기존 K-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정책 흐름 정면 부정하는 셈”
특별법 제정안에 참여한 반도체 전문가는 정부 시행령(안)의 제도적 결함과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해당 전문가는 “시행령(안) 제15조에 수도권 배제 조항을 무리하게 추가하면서도, 정작 다른 조항에는 ‘수도권 외 지역 우대’라는 표현을 혼용해 법령의 정합성 측면에서 흠결이 난 상황”이라며 “정부가 2019년부터 용인·평택·이천·화성 등을 거점으로 총 1조126조원 규모의 ‘K-반도체 메가클러스터’ 구축을 국가 과제로 추진해 와 놓고, 이제 와서 시행령으로 수도권을 원천 배제하는 것은 기존 정부 정책 방향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미국, 일본, 대만 등 글로벌 반도체 경쟁국들이 인프라와 생태계가 이미 갖춰진 기존 거점을 중심으로 ‘집중 투자 전략’을 펼치며 속도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지리적 위치만을 이유로 수도권을 배제하는 방식은 국가 반도체 공급망 안정성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라는 대의 차원에서도 반드시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 경기도, ‘반도체 올케어 TF’ 가동… 서울·인천과도 공동 전선 구축
경기도는 정부의 입법예고 기간 및 관계기관 협의 과정에 전방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시·군별 입지와 산업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대응 논리를 정교화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도는 자체 ‘반도체 올케어 전담조직(All-Care TF)’을 중심으로 용인·평택 등 생산거점 도시, 안산·화성·오산 등 소부장 특화도시, 경기 북·동부 규제지역의 목소리를 하나로 묶어 정부를 설득하겠다는 구상이다.
아울러 이번 시행령(안)의 직접적인 피해 대상인 서울시, 인천시 등 다른 수도권 광역 지자체 및 유관 연구기관들과도 촘촘한 공조체계를 구축해 수도권 공동 전선을 형성하고 강력한 공동 대응을 이어갈 방침이다.
현병천 경기도 미래성장산업국장은 “반도체 산업은 타이밍과 실행 속도가 생명인 시장인데, 수도권을 일률적으로 배제하는 칸막이식 규제는 국가 경쟁력 관점에서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뿐”이라며 “도와 31개 시·군이 단일대오로 뭉쳐 현장 기업들과 지역 사회의 목소리가 정부 시행령 최종안에 반드시 반영될 수 있도록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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