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S전선과 대한전선의 기술유출 공방은 단순한 형사 사건을 넘어 국내 해저케이블 시장의 주도권 경쟁이 격화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 세계적으로 해상풍력과 전력망 투자가 확대되면서 해저케이블이 전선업계의 핵심 성장축으로 떠오르자 선발주자인 LS전선과 추격자인 대한전선 사이의 긴장도 커졌다는 평가다.
28일 경기남부경찰청 안보수사과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대한전선 임원 A씨 등 13명과 대한전선·가운종합건축사무소·설비업체 등 법인 3곳을 검찰에 송치했다.
이번 사안으로 두 회사의 갈등은 더욱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LS전선은 그동안 해저케이블 분야에서 국내 시장을 사실상 선도해왔다. 초고압 해저케이블은 대규모 설비 투자와 장기간 축적된 생산·시공 경험이 필요한 분야다.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수준을 넘어 케이블 설계, 절연 기술, 장조장 설비 운영, 품질 검증, 해상 포설 경험까지 결합돼야 한다. 이 때문에 후발 기업이 단기간에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시장으로 꼽혀왔다.
대한전선은 최근 해저케이블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투자를 확대해왔다. 충남 당진을 중심으로 해저케이블 생산 기반을 구축하고 글로벌 수주 경쟁에 뛰어들면서 LS전선과 직접 맞붙는 구도가 형성됐다. 업계에서는 대한전선이 해저케이블 시장 진입 속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LS전선 출신 인력의 이동과 관련 기술 활용 여부가 갈등의 불씨가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한전선은 해저케이블 시장 진입을 위해 대규모 투자도 이어왔다. 충남 당진 고대부두 일대에 해저케이블 1공장을 구축한 데 이어 초고압직류송전(HVDC) 해저케이블 생산까지 염두에 둔 추가 투자도 추진해왔다. 해저케이블 전용 포설선 확보와 해외 인증 확대도 병행하며 글로벌 프로젝트 수주 기반을 넓히는 데 공을 들였다. 다만 이번 수사가 검찰 단계와 향후 재판으로 이어질 경우 대한전선이 쌓아온 투자 성과와 수주 신뢰도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LS전선은 대한전선의 해저케이블 사업 확장이 자사의 핵심 기술과 노하우를 침해한 결과일 수 있다고 보고 강하게 문제를 제기해왔다. 특히 해저케이블 공장 설계와 생산 공정 관련 정보는 단순 문서가 아니라 수년간 시행착오를 통해 축적한 영업비밀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대한전선은 자체 투자와 독자 기술 개발을 통해 사업을 추진해왔다는 취지로 맞서왔다.
검찰 송치에 대해 LS전선은 "이번 사건으로 수천억원대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지만, 대한전선 측은 "문제가 된 정보는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양측 갈등이 쉽게 봉합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로 시장 자체가 커지고 있다는 점을 든다. 해저케이블은 해상풍력 단지와 육상 전력망을 연결하는 핵심 인프라다. 유럽과 미국뿐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전력망 확충 수요가 커지고 있어 국내 전선업계에는 놓칠 수 없는 시장으로 평가된다. 한 번 공급 실적을 확보하면 후속 프로젝트 수주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기술 주도권과 신뢰 확보가 경쟁의 핵심으로 꼽힌다.
정부가 추진하는 에너지 고속도로 정책에도 돌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에너지 고속도로는 재생에너지 발전지와 전력 수요지를 잇는 대규모 전력망 확충 구상으로 해저케이블과 초고압 송전망이 핵심 기반으로 꼽힌다. 국내 업체 간 기술 분쟁이 장기화하면 공급 안정성 논란이 커질 수 있고 주요 프로젝트의 발주·인증·납기 판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양측의 법적 공방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경찰 수사와 검찰 판단,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영업비밀 침해 여부에 대한 추가 다툼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해저케이블 기술의 범위를 어디까지 영업비밀로 볼 것인지, 인력 이동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과 회사 소유 기술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가 향후 쟁점이 될 전망이다.
갈등이 길어질 경우 국내 해저케이블 산업 전체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유럽과 중국 기업들이 대형 프로젝트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국내 업체 간 소송전이 장기화하면 수주전에서 기술 안정성이나 공급 신뢰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선업계 한 관계자는 "해저케이블은 앞으로 전선업계의 가장 중요한 성장 시장인 만큼 선발 업체와 후발 업체의 충돌은 어느 정도 예견된 측면이 있다"며 "이번 사안은 특정 인력이나 문서 유출 여부를 넘어 국내 해저케이블 시장의 주도권과 국가 전력망 사업의 안정성 문제로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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