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5인 이상 기업에 적용되는 현행 근로기준법 일부 조항의 완화가 시급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법 조항 대부분이 중견 이상의 기업 규모와 제조업 중심에 적합한 내용으로만 채워져 있어 소규모의 첨단 산업 중심의 벤처·스타트업 생태계의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일부 조항의 경우 단순히 현실과 괴리된 수준을 넘어 벤처·스타트업의 성장을 가로 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아 주목된다. 주 52시간 제도로 속도와 몰입이 생명인 소규모 조직 장점이 봉쇄 되는가 하면 사실상 해고가 불가능한 법 체제로 과감한 인재 투자를 꺼리게 되는 현상 등이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지목됐다.
아이디어로 먹고 사는 업종들 52시간제에 골머리…장기 채용 부담에 고연봉 베팅 주춤
서울 마포구에서 15인 규모의 디자인·마케팅 업체를 운영하는 강수진 씨(45·여·가명)는 회사 설립 7년차인 올해 들어 폐업 고민이 부쩍 늘었다. 현행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면서 사업을 영위하다 보면 회사 성장은 고사하고 이익을 내기조차 쉽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소규모 디자인·마케팅 업체 특성 상 좋은 아이디어를 내기 위한 고민의 시간이 필요한데 이를 업무 시간으로 규정짓기가 모호해 결과 대비 인건비 지출이 너무 많다. 결과물 없이 고민 중이라고 말하며 각종 수당을 요구해도 거절하면 곧장 범법자가 된다. 그렇다고 고민 없이 마구잡이로 결과물부터 쏟아내라고 할 수도 없다. 신규 업체 입장에서 경쟁력 없는 결과물론 결과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강 씨는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은 6~70년대 공장에나 적용 가능하지 콘텐츠, IT 등 첨단 산업과는 전혀 맞지 않다"며 "공장이야 시간 당 생산량이 정해져 있으니 하루 몇 시간 이렇게 해서 생산량에 맞게 채용하면 그만이지만 우리 같은 디자인이나 마케팅 등 시간 당 생산량이 비례하지 않는 업종까지 시간 규제를 적용해버리면 사업을 하란 소린가 말란 소린가"라고 성토했다. 이어 "좋은 아이디어가 시간 정해 놓고 떠오르는 것도 아닌데 막 말로 마냥 생각 중이라며 결과물을 내놓지 않아도 각종 수당을 챙겨줘야 하는 게 지금의 현실 아닌가"라며 "이런 현실에선 엄청난 자금을 들고 시작하거나 자금을 투자 받지 않는 첨단 산업 분야의 벤처·스타트업은 성장은 고사하고 생존조차 장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서울 구로구에서 20인 규모의 IT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박상훈 씨(38·남·가명)도 창업 3년차에 접어든 올해 당초 목표를 대폭 수정했다. 사업 계획을 실현시켜 줄 사람을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현실을 직시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둔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려면 비슷한 경험을 가진 전문 인력이 필요한데 선뜻 사람을 채용하기가 두렵다. 거액의 연봉을 주고 전문가를 채용하고 난 이후에는 조금 더 낮은 연봉의 유지·보수 인력으로 교체하고 영업 인력을 확충해야 하는데 자발적으로 나가지 않는 한 해고가 불가능하다 보니 섣불리 거액을 투자하기가 부담스럽다. 앞서 덜컥 채용을 결정했다가 저성과 문제로 위로금까지 주고 내보냈던 경험은 그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박 씨는 "우리나라는 엄청난 투자를 받고 시작하지 않는 한 IT 스타트업이 도저히 성장할 수 없는 환경이다"며 "미국 같은 경우 일반 큰 기업 정규직 보다 훨씬 많은 돈을 주는 대신 기간을 정해서 고용하는 게 가능하고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인재 투자와 목표 달성을 병행하는데 우리나라는 그게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식적으로 대기업과 똑같이 주면 누가 스타트업에 올 것이며 그렇다고 스타트업 여력에 주구장창 대기업보다 더 많이 주는 게 과연 가능하겠나"라며 "우리 같은 스타트업이 유니콘으로 성장해 더 많은 경제적 효과를 내도록 하려면 현재 5인 이상은 무조건 따라하는 해고 관련 법 조항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 10곳 중 4곳 "한국 노동규제 심각"…전문가 "벤처·스타트업 예외 조항 시급"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 대한 인식은 다른 스타트업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 2022년 리아스타트업포럼이 발표한 '디지털 산업 고용 촉진을 위한 노동규제 개선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사업 운영 기간이 5년 미만인 스타트업 47곳 가운데 40.4%는 우리나라 노동법 규제가 심각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노동법 규제가 심각하지 않다고 답변한 비율은 19.2%에 불과했다. 스타트업들은 특히 주 52시간제도, 고용경직성 등을 가장 심각한 규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노동 규제 중 개선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야를 묻는 질문에 응답 기업의 51.1%가 '고용경직성'을 꼽았다. 이어 '임금 문제'(19.1%), '주52시간 근로제도'(12.8%) 등의 순이었다. 또 해결 방안으로도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 요건 완화(50%)' '신생기업에 대해 일정기간 해고 규정의 예외(29.5)' 등을 언급했다.
실제로 현행 근로기준법 상 업무 성과 사유의 해고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지난 2020년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4년 연속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에 대해 '부당 해고' 판결을 내렸다(2019구합50861). 당시 재판부는 "저성과 및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고 담당 업무 이행이 불가능하거나 근로 의사가 없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올해 1월에도 비슷한 판결(2024가합69317)이 있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2민사부는 저성과자라는 이유로 억울한 해고를 당했다는 원고의 주장을 받아 들여 피고(사측)에 1억원이 넘는 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원고의 근무성적이나 능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정도를 넘어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최소한에 미치지 못하고 개선가능성도 없어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근로기준법 내용이 과거 60~70년대 공장 생산직에 맞춰 짜여 있어 시간 대비 생산량 측정이 불가능한 첨단 산업에는 전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속도와 유연함, 아이디어가 생명인 벤처·스타트업의 장점을 봉쇄하는 장벽이 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근로기준법 자체가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 보장·향상 및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 도모를 취지로 내세우고 있는 만큼 대대적인 개편·수정 보다는 '5인 이상' 등의 법 적용 인원 기준 상향이나 시간 단위의 실제 근로 기준을 성과로 바꾸는 등의 '핏셋' 개정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행 근로기준법은 과거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 환경을 바탕으로 설정되다 보니 창의성과 유연한 몰입이 중요한 오늘날의 첨단 기술 및 콘텐츠 기반 스타트업 현장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며 "특히 자본과 인력이 한정된 초기 스타트업의 경 엄격한 근로 시간 제한이나 고용 유연성 부족이 오히려 적극적인 인재 채용과 도전을 주춤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스타트업이 마음 놓고 청년 인재를 영입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며 "법의 취지인 근로자 보호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초기 스타트업에 한해 일정 기간 규제를 유예해주거나 업종별 특성에 맞춰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책을 세밀하게 다듬는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고 덧붙였다.
Copyright ⓒ 르데스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