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푸드를 여행 기념품처럼 구매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마스크팩이나 캐릭터 상품처럼 가볍게 들고 갈 수 있는 제품들이 한국 여행 기념품의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한국에서 직접 맛본 음식의 재료를 자국으로 가져가려는 '경험 기반 소비'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단순히 먹어보는 데 그치지 않고 여행 중 경험한 한국의 맛을 집에서도 재현하려는 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한국에 여행 온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전통시장이 새로운 기념품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는 기름집에는 일본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으며 소셜미디어(SNS)에서는 한국 여행 중 꼭 들러야 할 장소로 전통시장 내 기름집이 언급되고 있다. 또 실제 구매 인증 사진과 방문 후기가 공유되고 있다.
한국산 들기름과 참기름을 맛본 SNS 이용자들은 다른 국가 제품보다 향이 고소하고 풍미가 깊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고 있다. 지난 1988년부터 참기름과 들기름을 직접 착유해 판매해온 것으로 알려진 서울 중부시장 내 한 기름집도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해당 매장에서는 맛의 보존을 위해 전통방식 그대로 참기름과 들기름을 착유하고 있었으며 참기름과 들기름뿐만 아니라 고춧가루도 직접 빻아 판매하고 있었다.
또 재고를 대량으로 쌓아두지 않아 신선한 들기름을 맛볼 수 있다는 점 역시 이곳만의 강점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외국인 관광객 수가 늘어나면서 휴대와 선물이 편한 소용량 제품도 함께 판매하고 있다. 매장 한편에는 일본어 안내문과 함께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포장 상품들도 진열돼 있다.
일본인을 상대로 판매하고 있던 매장 관계자는 "일본 사람들이 정말 많이 온다. 몇 달 전에는 요미우리 신문사 기자가 한 병만 사갔다가 50병을 추가로 주문하기도 했다"며 "이후 직원들과 함께 다시 방문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에 인기 아이돌 멤버들이 중부시장 주변을 방문한 이후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더 늘었다"며 "최근에는 참기름이나 들기름처럼 한국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향과 맛을 찾는 관광객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일본에서 김치를 직접 담가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고춧가루를 찾는 수요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다만 일본에서는 김치용으로 쓰기 좋은 굵은 고춧가루보다는 가는 고춧가루를 구매해 가는 손님들이 많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일본인 히토미 씨(53·여)는 "한국에 여행오기 전에 지인들이 한국 기름은 일본 기름보다 맛있다고 추천해줬다"며 "여행 기념품으로 참기름과 들기름을 꼭 사보라고 해서 방문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냄새를 맡아보니 맛이 없을 수가 없는 냄새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구매한 곳에서 먹는 방법도 자세히 알려줘서 일본에 돌아가면 가족들과 함께 한국식으로 요리해 먹어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참기름과 들기름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은 곶감, 동결건조 딸기, 말린 망고 등 건과일류와 간식도 기념품처럼 구매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들은 시장 상인들과 가격을 흥정하거나 구매 전에 시식을 요청하며 제품의 맛과 원산지, 보관 방법 등을 꼼꼼히 확인하는 등 적극적으로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또 멸치, 김, 오징어채 등 한국식 반찬 재료를 구매하는 외국인들의 모습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일부 관광객들은 직접 제품을 비교하며 "어떤 것이 더 짜지 않은지", "집에서 어떻게 요리하면 되는지" 등을 상인들에게 상세히 묻기도 했다.
인삼 가게 앞에서는 인삼으로 달인 물을 시음해보며 효능과 복용 방법에 대해 질문하는 외국인들도 눈에 띄었다. 한 상인은 "예전에는 홍삼 캔디, 제리와 같이 낱개로 포장된 기념품들이 많이 판매됐는데 요즘은 실제로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는 식재료를 찾는 손님들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인도에서 온 하밈 씨(Hamim·남·62)는 "인도에 돌아가서 가족들이랑 회사 직원들에게도 나눠줄 기념품을 사고 있다"며 "인도에도 감은 있지만 곶감을 먹지는 않는다. 한 번 먹어봤는데 생각보다 달고 입에 잘 맞아서 한 박스 정도 구매해서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밈 씨는 "인도에는 동결 건조한 딸기와 같은 간식들이 없는 만큼 한국에서만 판매하는 간식들을 사가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참기름, 곶감, 고춧가루와 같은 한국 식재료가 외국인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에는 드라마나 영화, 예능 프로그램과 같은 K콘텐츠를 통한 사전 노출 효과와 함께 한국 여행 중 실제로 맛본 음식에 대한 경험이 구매로 이어지는 '경험 기반 소비'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SNS와 유튜브를 통해 한국 음식과 식재료가 반복적으로 소개되면서 '한국에서 사야 하는 리스트'가 형성된 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문가들 역시 이러한 현상이 단순한 식품 소비를 넘어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경험 소비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외국인 관광객들의 소비는 단순한 기념품 구매를 넘어 여행 중 경험한 맛과 문화를 일상으로 가져가려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특히 SNS와 콘텐츠 플랫폼을 통해 사전에 노출된 제품들이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구조가 강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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