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WORLD VENICE〉(2026) 중 ‘I live in your piss’의 전시 전경. 관객은 양옆에 있는 두 개의 간이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도록 안내받는다. © Nicole Marianna Wytyczak
THE HOLZINGER SYNDROME
비엔날레 공원, 이탈리아 말로 자르디니 델라 비엔날레(Giardini della Biennale)는 보통 ‘자르디니’라고 부른다. 이 자르디니의 정면으로 들어가면 스페인·벨기에·덴마크·독일·영국 등의 올드 파워들이 있고, 이 본섬 공간을 지나 미국 파빌리온과 헝가리 파빌리온 사이로 빠져나가 다리를 건너면, ‘이졸라’(섬)라 부르는 공간이 펼쳐진다. 자르디니 안에 있지만 다리 건너 있다는 의미로 섬이라 부르는 이곳에는 그리스, 폴란드, 브라질, 이집트, 세르비아, 베네치아 그리고 오스트리아 관이 자리한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프리뷰 기간에는 매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전시를 보려는 개개인들의 오픈런이 펼쳐지는데, 이때 관람객들은 보통 자르디니 정문으로 입장해 유럽과 아메리카 열강들의 전시를 먼저 차례차례 감상한 후에야 이졸라 파트로 넘어간다. 올해는 달랐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입장하자마자 다들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관에서 펼쳐지는 플로렌티나 홀칭어의 퍼포먼스에 줄이 얼마나 있는지를 보기 위해서였다.
프리뷰 기간 자르디니 개장 시간 동안 매시 정각이 가까워지면 음가를 알 수 없는 회색의 소음이 오스트리아 파빌리온에 설치된 거대한 스피커를 통해 나오고, 정각이 되면 옆구리에 벨트로 쇠공을 찬 전라의 여자가 등장해 거대한 종에 달린 밧줄을 타고 올랐다. 종 안에 들어가 몸을 돌리고 거꾸로 매달리고 나면, 회색의 소음이 일순간 사라지고 이졸라의 그 거대한 공간 안에 숨 막힐 듯한 적막이 흐른다. 수백 명의 사람들, 그냥 사람들도 아니고 프리뷰 기간에 자르디니 안에 들어와 있는 아티스트, 큐레이터, 미술 기자 그리고 베니스 비엔날레를 후원하는 골드 카드 홀더들이 모두 숨을 참아가며 사건을 기다린다. 정각이 되자 여자는 자신의 몸을 흔들어 옆구리에 달린 쇠공으로 종을 친다. 경종, 말 그대로 알람 벨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울린다. 이 경종의 퍼포먼스는 파괴적 안무가이자 현대 미술가인 플로렌티나 홀칭어의 전시 〈SEAWORLD VENICE〉가 펼쳐지는 오스트리아관 앞에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열렸다. 이 충격적인 퍼포먼스 덕에 관객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는 구조. 전시관 안에서 펼쳐지는 다른 작품들을 보기 위해 수백 명의 사람들이 수십 미터씩 줄을 서서 들어가야 했다.
나 역시 황금 같은 프리뷰 기간에 새치기를 하는 독일 사람들과 쉴 새 없이 싸워가며 두 시간 반 동안 오스트리아관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섰다. 그러나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신체가 변형되거나 타투로 몸을 뒤덮은 강인한 신체의 여성들이 클라이밍 하네스를 차고 거대한 기둥의 위아래를 오가며 모던 비너스의 심상으로 우리의 고정관념을 재구성했고, 나체로 실내 수조에서 매드맥스에 나올 듯한 동물적인 표정을 짓는 여자가 제트스키를 타며 내뿜는 소음이 주는 불쾌감은 전시관 앞에 울리는 경종의 소리와 공명했다. 전시관의 정면에는 파란 수조 안에 나체의 여성이 입에는 산소호흡기를 달고 허리에는 납덩이를 차고 우뚝 서 있었다. 이 모습은 밖에서도 종 울리는 퍼포먼스의 배경으로 볼 수 있었으나, 안에서 그 의미가 더 자세히 드러났다. 안에 들어서면 관객들은 안내자의 지시에 따라 간이 화장실에서 소변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소변은 최첨단 정화기를 거쳐 순수한 물의 형태로 정화되어 납덩이를 찬 여자가 서 있는 수조에 투입됐다. 지구온난화로 가라앉고 있는 베니스, 매년 아쿠아 알타(해수면 상승으로 섬이 잠기는 상태)가 들이닥치는 빈도가 점점 잦아지고 있다는 베니스에는 연간 3000만 명의 관광객이 온실 가스를 내뿜는 비행기를 타고 몰린다. 그 아이러니를 이보다 멋진 방식으로 감각하게 할 수 있을까?
노혜리의 작품 ‘베어링’ 중 소설가 한강이 참여한 애도 스테이션의 모습. 아래쪽에 있는 하얀 소금에 꽂혀 있는 검은 나뭇가지들이 그의 작품이다. © 감동환
FORTRESS & NEST
실린더 형태를 띤 한국관의 남쪽 부분에 거대한 동 파이프들이 날카롭게 꽂혀 있다. 창에 찔린 것 같기도 하고, 칼에 찔린 것 같기도 하고, 바늘에 찔린 것 같기도 한 그 모습. 유독 부드러워 보이는 무광의 흰색 외벽 탓에 구리 파이프들이 찌르고 들어간 단면들이 더 날카로워 보인다.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 최고은의 작품 ‘메르디안’이다. “메르디안은 지리학에선 지구의 남북을 잇는 자오선을 의미하지만, 한의학에서는 기와 혈이 흐르는 보이지 않는 통로인 경락을 뜻해요.” 최고은 작가가 말했다. “막힌 혈을 뚫는 침처럼 한국관을 관통하고 싶었어요.” 최고은의 침습적 작품이 외부에서 내부로 찌르고 들어갔다면,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한국관 안으로는 마치 에어캡 같은 반투명의 하얀 방울들이 벽을 이루며 부드럽게 흘러 건물의 내면을 마치 붕대처럼 감싸고 있다. 노혜리의 작품 ‘베어링’, 오간자(Organza) 천으로 만든 4000개의 방울로 세운 이 벽 안쪽으로는 여덟 개의 스테이션이 열심히 일을 하는 중이다. 내다보기, 애도, 살아가기, 계획하기, 기다리기, 수선하기, 기억하기, 나누기. 모두 여덟 개의 실천으로 이름 붙인 스테이션에서 작가 노혜리는 다른 문화 실천가들과 함께했다. 예를 들어 한강은 자신의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의 오프닝 장면을 시각화한 조각 작품 ‘장례식’으로 애도 스테이션에 참가했다. 한강이 구상한 하얀 눈에 박힌 검은 나뭇가지들에서 묘비를 읽어내기란 어렵지 않다.
한국관의 전시 〈해방공간 : 요새와 둥지〉 설치 전경. © 감동환
최고은의 작품 ‘메르디안’을 안에서 본 모습. 밖에서 뚫고 들어온 침이 한국관의 인대에 꽂혀 있는 듯 보인다. © 감동환
오프닝 행사가 있었던 지난 5월 6일 베니스에는 비가 쏟아졌고, 하늘은 어두웠다. “햇빛 나는 날 오면 좋은데, 아쉬워요.” 한국관의 개막 행사가 있었던 날 작가 최고은이 말했다. 하늘이 맑게 갠 다른 날 다시 한국관을 찾았다. 그날 한국관은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위한 베니스 비엔날레 파업에 동참해 하루 종일 문을 닫았으나, 오후 3시로 예정되어 있던 탑돌이 퍼포먼스만은 그대로 진행할 예정이었다. 일렬로 줄을 선 관람객들이 노혜리의 여덟 개의 스테이션을 일렬로 도는 이 퍼포먼스를 위해 나눔 스테이션에 참여한 가수 이랑이 신곡 ‘우리의 몸’을 연습 중이었다. 나는 멀리서 한국관을 지켜보며, 웅크리고 앉아 상처에서 회복 중인 고양이를 떠올렸다.
한국은 유난히 어린 나라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채 한 세기도 되지 않고, 자본주의의 뿌리도 얕으며,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제 규모를 가졌지만 그 제도적 토대는 굳지 않은 젤로처럼 유동적이다.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큐레이터 최빛나는 지난겨울 비상계엄 사태를 한국관의 전시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Liberation Space: Fortress/Nest) 프로젝트의 출발점으로 꼽으며, 민주주의와 자유는 고정되거나 완성된 조건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협상되는 것임을 다시 깨달았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는 1945년부터 1948년까지 일본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까지의 과도기를 ‘해방공간’이라 말한다. 그러나 외부 자극이나 내부의 균열에 의해, 경계를 필요로 혹은 우연히 무너뜨리고, 사회가 새로운 창조의 국면에 접어드는 모든 순간이 ‘해방공간’이다. 민주화, 촛불, 계엄. 모든 세대가 각자의 시절에 해방을 겪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파업으로 아무도 없는 한국관이 다르게 보였다. 최고은의 파이프는 침으로, 오간자 벽은 가피로, 여덟 개의 스테이션은 호중구와 대식세포로, 그 모든 게 회복 중인 신체의 기념비로 보였다.
5월 8일 베니스 거리에서 시위 중인 푸시 라이엇 시위대의 모습.
MORE POLITICAL THAN EVER
지난 5월 8일 프리뷰의 마지막 날, 나는 일어나자마자 호텔에서 20분을 걸어 자르디니 안에 있는 스페인 파빌리온을 찾았다. 전날 시간이 없어 스페인관을 보지 못해서 였다. 스페인관은 자르디니 입구 바로 옆에 있다. 모든 파빌리온 중 입구에서 가장 가깝다. 도착했을 때 스페인관 앞에는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무리의 안쪽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가 보니, 스페인관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파업했는데, 프리뷰에 입장할 수 있는 골드 카드 홀더들이 ‘오늘이 프리뷰 마지막 날인데 파업하면 어쩌란 거냐’라며 따지고 있었다. 골드 카드는 70만 원에 달한다. 게다가 기자들이 가진 프리뷰 티켓으로는 5월 6일부터 8일까지의 프리뷰 기간만 출입할 수 있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의 파업은 제스처뿐인 실천이 아니었다. 프리뷰 마지막 날의 파업은 자르디니를 혼돈으로 몰아넣었다.
베니스 비엔날레 131년의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주최는 ANGA(Art Not Genocide Alliance, 반학살예술연대). 파업의 요구는 두 가지였다. 이스라엘의 비엔날레 배제, 그리고 비엔날레를 둘러싼 불안정 노동 구조의 개선. 파업에 모두가 참가한 게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는 더 첨예해졌다. 참가한 파빌리온은 약 27개로 오스트리아, 벨기에, 스페인, 키프로스, 에콰도르, 이집트, 에스토니아, 핀란드, 프랑스, 영국, 아이슬란드, 일본, 라트비아, 레바논,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폴란드, 포르투갈, 한국, 스위스, 터키, 우크라이나 등이 포함됐다. 자르디니를 넘어 아르세날레까지 퍼져 있는 100개 국가관 중 약 4분의 1이 문을 닫거나 부분적으로 기능을 정지했다. 벨기에 파빌리온은 문을 걸어 잠그고 입구를 ‘STOP’이라는 글자를 새긴 하얀 석고 타일로 막았으며 한국관은 닫힌 문에 프로 팔레스타인 포스터를 붙였다. 일본 파빌리온은 문은 걸어 잠그지 않았지만, 프리뷰 기간 내내 인기 만점이었던 에이 아라카와-나시(Ei Arakawa-Nash)의 작품 ‘Grass, Moon and Babies’의 베이비들을 싹 치웠다. 대부분의 관람객은 문이 닫힌 파빌리온 관계자들에게 항의하기보다는 "당신들의 행위를 지지한다"라고 말하며 지나갔다. 심지어 아르세날레의 아티스트들은 자신의 작품에 팔레스타인 지지 포스터를 붙이는 걸 허락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스페인관 앞에서 싸우던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스페인관의 책임자는 “당신이 그렇게 우리의 파업을 무시하고 꼭 우리의 작품을 봐야겠다면, 들어가서 봐라”라며 그 남성의 출입을 허가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들이 들어가려는 그 남자에게 “창피한 줄 알아라”라며 소리쳤고, 결국 두 발자국 내딛던 남자는 사진만 몇 개 찍고 나왔다.
프리뷰 첫날인 5월 6일 오전 11시엔 자르디니 안 러시아 파빌리온 앞에서 분홍 연기가 피어올랐다. 약 15명의 여성 시위대들이 고딕 드레스에 분홍색 발라클라바를 쓰고 나타났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국기를 휘날리며 러시아 파빌리온을 막아섰고, “복종하지 마라!(Disobey!)”, “피가 러시아의 예술이다!(Blood is Russia’s art!)”라는 구호를 외쳤다. 페멘(FEMEN) 멤버들을 포함한 약 50명의 시위대가 파빌리온 주변을 점거했으며, 일부는 건물에 올라가 우크라이나 국기를 꽂았다. 푸시 라이엇과 페멘은 비엔날레 오프닝 주간 내내 베니스 전역에서 시위를 벌였다.
콜린 스미스가 천장에 선 걸개 작품 ‘We Could Be Heard for Miles in the Night’의 모습. 빛을 비춰 벽에 떨어뜨린 글씨마저 너무 아름답다.
INNER SANCTUARY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총감독 코요 쿠오는 57세의 나이로 스위스 바젤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사인은 암. 그녀의 남편에 따르면 진단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사망 날짜는 2025년 5월 10일. 2026년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 주제와 제목을 발표하기로 예정된 5월 20일을 불과 열흘 앞둔 시점이었다. 이번 비엔날레는 역사상 처음으로 총감독이 사망한 뒤 열린 비엔날레가 됐다. 그러나 그녀가 남긴 주제는 그대로다. 〈In Minor Keys〉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나라면 아마 ‘단조들로’라는 직역보다는 ‘작은 목소리들로’라고 할 것이다. 그녀가 꿈꾼 비엔날레의 제안은 “지금의 소음과 혼란 속에서 놓치고 있는 낮은 주파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자”는 것이었다. 조용하고, 섬세하고, 성찰적이고, 개인적인, 그러나 동시에 시대와 공감하는 전시.
유언처럼 시작된 전시는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작지만 다성적이고, 시적인 전시를 구상했던 쿠오의 비전이 막상 맞닥뜨린 건 가장 시끄럽고 분열적인 비엔날레였다. 전시가 열리기도 전에 심사위원단 전원이 사퇴했고, 황금사자상이 폐지됐으며, 유럽연합은 지원금을 삭감했다. 수백 명이 거리로 나왔고, 경찰이 아르세날레 앞에서 시위대를 막느라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131년 비엔날레 역사상 처음으로 파업이 일어났다. 이 모든 번잡함 사이에서 나의 발걸음을 붙잡은 것은 가장 내면적인 작품이었다.
아르세날레 입구에서 리파아트 알라에르의 시 ‘If I Must Die’(내가 만약 죽어야 한다면)를 마주친다. 2023년 가자 공습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 시인의 목소리가 벽면을 가득 채운다. "내가 죽어야 한다면 / 너는 살아라 / 내 얘기를 말하고 / 내 것들을 팔 수 있도록….(중략) 내가 만약 죽어야 한다면 / 그것이 희망이 되게 하라 / 하늘 위에 연처럼." 이 시 앞에 많은 사람들이 서서 먹먹한 가슴을 달랬다.
아르세날레를 감상하던 중 콜린 스미스(Cauleen Smith)의 〈We Could Be Heard for Miles in the Night〉를 만났다. 섬유유리 메시와 벨벳, 새틴, 스팽글로 직조되어 아르세날레의 높은 천장에서 마치 흘러내리는 듯한 이 작품을 보고 뭉클한 마음이 솟았다. ‘조용한 밤이라면, 우리의 목소리는 저 먼 곳까지 가 닿을 수 있을 거야’라는 그 말이 코요 쿠오가 남긴 전시 전체의 주제와 함께 작게 울리기 시작했다. 걸개 형식으로 된 콜린 스미스의 텍스트는 사실 그녀 내면의 성소로 들어가는 초대장이었다. 그 바로 옆에는 4채널 스크린이 영사되는 콜린 스미스의 거대한 이머시브 작품 〈The Wanda Coleman Songbook〉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다. 4개의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예닐곱 평 남짓한 누군가의 방 같은 공간에는 카펫이 깔려 있었고, 소파가 놓여 있었으며, 완다 콜먼의 시를 켈시 루, 샬라 밀러 등이 녹음한 바이닐이 플레이되고 있었다. 나는 거대한 병기창(아르세날레)에 세워진 간이 거실 소파에 앉아 ‘LA 블루스 우먼’으로 불리는 완다 콜먼의 시를 감상했다.
센트럴 파빌리온 입구에 전시된 카메룬 출신 웨레웨레 리킹(Werewere Liking)의 작업은 또 다른 내면의 우주론이었다. 나무껍질을 캔버스로 삼고, 태양과 달과 나무와 임신한 여성과 깨진 항아리를 반복적으로 그리는 그녀의 그림들은 치유 의식의 악보처럼 보였다. 그녀의 조각 시리즈 〈Genealogies of Lights〉는 수집되고 재활용된 오브제들로 만든 신체들이었다. 잊힌 것들을 불러내 새 우주를 만드는 행위는 시적이었고, 이는 한국관의 큐레이터 최빛나가 말한 ‘해방’의 행위였다. 전시장 곳곳에서 사라진 것들이 함께 앉아 무언가를 향해 고개를 드는 내면의 성소들이 우리를 위로했다.
‘보이지 않는 파빌리온’ 프로젝트의 게릴라 포스터. 러시아의 공격으로 사망한 작가들이 참여하기로 했던, 취소된 행사들의 알림이다.
WRITTEN ON THE WALLS
by 박재용(프리랜스 큐레이터)
비엔날레 시즌은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미술 종사자와 관객에게 자기를 어필할 절호의 기회가 된다. 억만장자에서 아티스트로 전향한 패트릭 밈란은 베니스 전역 42곳의 광고판을 사서 ‘미술에서는 가격 빼고 모든 게 너무 심각하다’와 같은 문장을 선보이는 ‘빌보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베니스와 상하이에서 동시에 열리는 보석 조각가의 전시 알림이나 곧 열리는 베니스 지방선거 후보 포스터도 보인다. 후보의 얼굴엔 히틀러를 연상케 하는 콧수염 낙서가 그려진 채다. 그러니까 비엔날레 관람을 위해 베니스 본섬에 도착하기도 전에, 전시보다 먼저 마주치는 건 압도적인 양의 포스터다. 베니스로 들어가는 출발점이 되는 공항이나 기차역은 물론 섬으로 가는 바포레토(수상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에서부터 이미 포스터가 빼곡하다. 비엔날레 기간 포스터와 벽보는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생태계를 이룬다. 시청에서 운영하는 수백 개의 게시판, 바포레토 정거장 광고판, 허가받지 않고 붙여진 거리의 종잇장들까지. 굳이 티켓을 구매해서 자르디니에 입장하지 않더라도 어디서 무슨 전시가 일어나고 있는지 대강 알 수 있을 정도다. (물론 모든 전시나 프로젝트가 베니스 시내에 공식·비공식 유인물을 부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거리의 종잇장들은 상황이 더 복잡하다. ‘CANCELLED’라고 쓰인 행사 포스터가 줄줄이 붙어 있어 가까이 가 보니, ‘이 행사는 저자(작가)가 러시아의 공격으로 사망해서 취소되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QR코드가 붙어 있다. 이탈리아에서 사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조직한 ‘보이지 않는 파빌리온’ 그룹이 시내 곳곳에 붙인 게릴라 벽보다. 수많은 행사 알림이 넘쳐나는 비엔날레 오프닝 시즌의 흥겨움에 냉정한 차분함을 주는 순간이다. 베네치아 시민들도 만만치 않다. 베니스 시내 곳곳에선 핸드메이드 정치 포스터가 출몰한다. ‘Tazebao’(대자보)라고 쓰인 A4 용지엔 손으로 직접 쓴 불만의 메시지가 쓰여 있다. 핵심 메시지는 이거다. ‘좌파도 우파도 다 그 나물에 그 밥. 마음에 안 든다!’ 종잇장 한 쪽엔 작성자의 이름과 이메일도 쓰여 있다. 비엔날레 본전시에 참여한 ‘fierce pussy’는 이 전통을 받아 거리에서 응답했다. 전시에 작품을 두는 동시에 도시 곳곳에 베네치아 사자상을 고양이로 그린 ‘환영합니다 퀴어와 트랜스 사람들’ 포스터를 부착했다. 베니스 시청은 이 거리 포스터를 검열했다. 비엔날레가 끝난 뒤, 베니스의 종잇장들은 어떻게 될까. 벽보 게시판을 자세히 보면, 몇 년 전 비엔날레 시즌의 흔적이 보인다. 이번 비엔날레가 끝나면 또 다른 시급한 일, 또 다른 새로운 프로젝트가 그 자리를 채우게 될 것이다.
‘함께 나아갑시다’라고 쓰여 있는 시장 후보의 선거 포스터와 대충 이 사람 뽑으면 히틀러 시즌 2가 시작된다는 뜻의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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