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윤의 디깅 #29] 피할 수 없는 것, 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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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윤의 디깅 #29] 피할 수 없는 것, 멀미

문화매거진 2026-05-28 10:34:09 신고

3줄요약

[문화매거진=전세윤 작가] 환상과 달리 HMD(Head Mounted Display)를 우리는 오래 착용할 수 없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에 워낙 강한 놀이기구도 서슴지 않고 연달아 탑승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자신만만하게 기기를 착용했었는데, 나 또한 HMD기기를 쉬지 않고 계속 착용하고 있기 어려웠다. 

이유는 바로 ‘멀미’였다. 

디깅 #25’에서 “‘운동감’은 “시각 정보와 맞지 않으면 멀미를 유발한다”고 언급했듯 ‘디깅 #25’에서 논했던 몰입감과 연결되어 있으며, ‘디깅 #26’에서 논했던 것들의 세부 개념이며, ‘디깅 #28’에서 다뤘던 혼합현실(MR),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에서 뺄 수 없는 요소다.

멀미유발 요소를 줄이는 방법에 대한 연구 결과 여덟 가지를 뽑아보겠다.
1. 피드백(시스템의 반응)이 빨라야 한다.
2. 시야를 어둡게 할수록 멀미가 감소한다. 
3. 회전운동을 최소화하면 멀미가 감소한다.
4. 시야 범위를 줄이면 멀미가 감소한다.
5. 정보가 많을수록 멀미가 상승한다.
6. 정보가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멀미가 없는 VR이 완성도가 좋다.
7. 현실과 다를 것이라면 아예 달라 현실감 없는 것이 멀미가 덜 난다. 현실감이 애매한 지점에 있으면 멀미가 가장 심하다.
8. 거의 완벽하게 현실과 똑같다면 멀미가 거의 없다.

▲ 실제로 연구에 사용했던 HMD기기 / 사진: 전세윤 제공
▲ 실제로 연구에 사용했던 HMD기기 / 사진: 전세윤 제공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금의 기술력이 완벽한 현실을 매 순간 구현해 내기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7번에서 언급한 현실감이 애매한 지점을 어떻게 넘어서야 할까? 단순히 해상도를 높이는 하드웨어적 접근을 넘어, 관람자의 뇌가 가상 세계를 거부하지 않도록 만드는 구체적인 전략 3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동적 시야 감쇄(Dynamic Vignetting)’ 도입
위 네 번째였던 ‘시야 범위를 줄이면 멀미가 감소한다’는 원리를 심화한 전략이다. 뇌는 시야의 중심부보다 주변부의 움직임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 사용자가 가상 공간에서 빠르게 이동하거나 회전할 때만 순간적으로 화면 외곽을 어둡게 가려주는 기능을 도입하면, 뇌로 유입되는 불일치한 이동 정보가 급격히 줄어든다. 위 방식은 몰입감(‘디깅 #25’에서 위 개념을 다루었다)을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도 멀미를 억제하는 가장 효율적인 UX 디자인 기법 중 하나다.

둘째, 뇌의 고정관념을 이용한 ‘가상 기준점’ 설계와 예술적 실재감
일곱 번째 ‘현실과 다를 것이라면 아예 달라 현실감 없는 것이 멀미가 덜 난다. 현실감이 애매하게 있는 것이 멀미가 가장 심하다’에서 말한 현실감이 애매해서 생기는 멀미. 이를 해결하는 방안 중 하나는 역설적으로 가짜 기준점을 심어주는 것이다. 두 가지 예시가 있는데, 첫 예시는 ‘정적인 프레임’(비행기 조종석(Cockpit))이나 자동차 대시보드처럼 내 몸과 함께 움직이는 고정된 물체가 화면에 존재하면, 뇌는 바깥 풍경이 아무리 흔들려도 나는 지금 안정된 공간 안에 있다고 판단한다.

두 번째 예시는 가상 신체와 수평 유지(Virtual Body & Horizon)로 직접적인 기준점을 제시하는 방법이다. 가상 세계 안에서 사용자의 손이나 발, 혹은 앉아 있는 몸의 일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면 뇌는 자기 수용 감각(내 몸의 위치를 느끼는 감각)을 시각 정보와 연결해 안정을 찾는다. 특히 이동 시 화면의 수평선(Horizon)을 고정하거나, 사용자의 실제 시선 방향과 가상 몸의 방향을 일치시키는 앵커(Anchor)를 두면 감각의 충돌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이러한 ‘가상 기준점’의 개념은 예술 작품에서 관객의 감각을 교란하거나 혹은 안착시키는 고도의 전략으로 사용된다. 

셋째, 감각의 몰입을 돕는 ‘오디오 비주얼 싱크(Audio-Visual Sync)’와 촉각적 피드백 
8번 항목 ‘거의 완벽하게 현실과 똑같으면 멀미가 거의 없다’는 지점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화면의 화질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다. 인간의 뇌는 시각 정보가 불완전하더라도, 다른 감각이 이를 보완해 주면 가상 세계를 ‘진짜’라고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활용한 것이 바로 청각과 촉각을 이용한 감각 통합 전략이다. 우선, 입체 음향(Spatial Audio)의 정교한 설계가 필수적이다. 가상 공간 내에서 사물의 움직임에 따라 소리의 방향과 거리감이 0.01초의 오차도 없이 일치할 때, 뇌는 시각적 왜곡에서 오는 피로감을 훨씬 덜 느끼게 된다. 소리가 시각 정보의 보조 역할을 넘어 공간의 물리적 기준점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더불어 최근 햅틱(Haptic) 기술을 활용해 이동 시 미세한 진동이나 저항감을 손이나 몸에 전달하는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시각적으로는 이동하고 있지만 몸은 가만히 있을 때 발생하는 ‘감각의 불일치’를 미세한 촉각 자극으로 상쇄시키는 것이다. 결국 완벽한 현실이란 단지 높은 해상도가 아니라, 시각·청각·촉각이 하나의 타임라인 위에서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갈 때 비로소 완성된다. 뇌가 ‘이것은 가짜’라고 의심할 틈을 주지 않도록 감각의 빈틈을 메우는 설계가 멀미를 정복하는 최종 열쇠가 될 것이다. 

결국 멀미는 우리 몸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보내는 감각의 불협화음이다. 시각 정보와 신체 감각이 0.01초라도 어긋나면 뇌는 이를 중독 상태로 오인하고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하지만 제작자의 관점에서 예술가들은 이 멀미라는 메커니즘을 역으로 이용해 새로운 경험을 설계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공포 게임이나 재난 시뮬레이션에서 의도적으로 미세한 지연 시간(Latency)을 주거나 시각적 왜곡을 가해 사용자에게 극도의 불안감과 긴박함을 심어주는 방식도 역으로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멀미라는 생리적 반응을 조절 가능한 연출 요소로 치환하는 것이다.

동시대 미술가들은 멀미를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활용한다. 첫 번째, 신체 자각 (Proprioception). 매끄러운 영상은 관객을 수동적으로 만들지만, 멀미는 관객으로 하여금 ‘나는 지금 어지러움을 느끼는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강제로 깨닫게 한다. 두 번째, 공간의 재정의. 현실의 물리적 공간과 가상의 공간이 충돌하는 지점을 멀미를 통해 시각화한다. 세 번째, 심리적 불안의 신체화, 불안, 공포, 혼란과 같은 추상적인 감정을 멀미라는 구체적인 신체 반응으로 치환하여 전달한다.

멀미는 정복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지만, 꼭 정복해야 할 오류만은 아니다. 인간이 가상 세계를 어떻게 인지하는지 알려주는 가장 정직한 지표이기도 하며, 동시에 예술이 탐구해야 할 정직한 신체의 생리적 반응이기도 하다. 현실을 복제하는 것에 매몰되기보다, 때로는 멀미를 억제하고 때로는 이를 활용해 감정을 증폭시키는 섬세한 설계를 고안하되, 도출해 내는 결과물에 따라서 이를 활용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된다.

창작자로서 멀미는 생리적 저항을 섬세하게 조율하며 활용할 줄 알아야 하며, 관객에게는 때로는 몰입하고 낯선 신체적 자각으로 멀미가 다가간다면 감각적 상호 작용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기대감을 남기며 이번 기고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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