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최근 서울시 장기전세주택 입주민들이 임대기간 만기를 앞두고 재계약 보장과 분양전환 등을 요구한 입장문을 내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26일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에서는 서울 강동구 강일리버파크·고덕리엔파크 장기전세 입주민 명의의 입장문이 확산됐다. 이들은 20년 가까이 생활 기반을 쌓아온 단지를 떠나야 할 처지에 놓였다며 제도적 보완을 호소했다.
장기전세 입주민 일동은 입장문에서 “2027년부터 만기가 도래하면 현재 시세 약 10억인 집에 사는 전세 세대는 보증금 3억만 받고 나가야 한다”며 “동일 단지 재계약도 불가능해 이대로라면 수백 가구 이상이 동시에 퇴거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저희는 ‘임대 거지’가 아닌, 같은 동대표를 뽑고 아이를 함께 키운 20년 이웃”이라며 “분양·전세 동대표가 함께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공동 대응해야 명분과 실리를 모두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입장문에 따르면 이들은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에 ▲무주택 실수요자의 재계약 보장 ▲감정가 기준, 거주기여도를 반영한 분양전환 기회 부여 ▲만기 세대 대상 대출·공공전세 지원 ▲정책 수립 시 전세 대표자 공동 참여 등을 요구하고 있다.
장기전세주택(시프트)은 무주택자에게 주변 시세보다 낮은 보증금으로 최장 20년간 거주 기회를 제공하는 공공임대주택이다. 지난 2007년 오세훈 서울시장 주도로 도입됐으며, 서울시는 이듬해 강일도시개발구역에 전용면적 59㎡~114㎡ 규모의 장기전세주택 1652세대를 공급한 바 있다.
입주민들은 대규모 퇴거가 현실화할 경우 단지 공동화와 실거래가 하락이 발생할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이들은 “장기전세 만기 대책은 분양 세대도 함께 풀어야 할 문제”라며 “수백 세대 공실로 인해 단지가 슬럼화되면 실거래가 급락 위험도 크다”고 주장했다.
다만 해당 장기전세주택 물량은 기존 입주민이 퇴거하더라도 새 입주자를 모집해 다시 공급되는 구조다.
입장문을 접한 누리꾼들은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신혼부부 선호 지역이라서 재입주도 금방 될 듯” “힘들게 돈 벌어서 그 집을 산 사람들도 있다” “당초 20년 계약이었으니 미리 매매나 이사 계획을 세웠어야 했다” “재계약·분양은 다른 사람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 등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면 “20년 장기 거주를 정책적으로 허용한 상황에서 대규모 퇴거가 발생하면 사회적 혼란이 생길 수도 있다” “외곽으로 밀려나야 하는 사정 자체는 이해된다” 등 일부 공감 섞인 의견도 나왔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기존 장기전세 입주민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해석도 제기된다. 기존 장기전세주택인 ‘시프트’는 최장 20년 동안 전세계약 방식으로 거주 안정을 제공하는 제도이지, 임대기간 종료 후 분양전환을 전제로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또 이 같은 논의가 나오는 배경으로는 장기전세주택2 ‘미리내집’ 정책도 거론된다. 서울시와 SH는 지난 2024년 7월부터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한 미리내집 입주자 모집을 시작하면서, 자녀 출산 가구에 20년 장기 거주 외에도 우선매수청구권 등 강화된 인센티브를 부여하기로 했다.
그러나 기존 장기전세주택과 미리내집은 모집공고와 적용 조건이 다른 별도 제도다. 서울시 공공주택 건설 및 공급 등에 관한 조례 개정안도 우선매수청구권을 2024년 7월1일 이후 입주자 모집공고에 따라 해당 권리가 부여된 경우부터 적용하도록 했다.
공공임대주택은 무주택자의 주거 안정과 자립 기반 마련에 초점을 둔 주거복지 제도로, 관련 권리관계는 통상 모집공고와 임대차계약 내용을 기준으로 판단된다. 이에 따라 기존 입주자들에게 이를 사후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게 업계의 대체적 해석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현 장기전세 입주민들의 주거불안을 완충할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20년 가까이 같은 생활권에 머물러 온 입주민들이 자금 사정에 따라 타지로 이동해야 할 부담을 안게 되는 상황에서, 이주 과정의 충격을 줄일 연착륙 대책은 검토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취지다.
실제 정부가 지원책을 내놓은 사례도 있다. 지난 2018년 판교 등 10년 공공임대주택 단지에서는 분양전환가가 크게 오르면서 주민 반발이 거셌다. 당시 정부는 분양전환 선택 시 장기 저리 대출과 분할납부를 지원하고, 분양전환을 선택하지 않는 임차인에게는 4년간 임대 기간을 연장하는 대책을 내놨다.
다만 10년 공공임대주택은 모집 단계부터 분양전환을 전제로 한 제도였다는 점에서 기존 장기전세주택과는 차이가 있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 SH 관계자는 지난 27일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관련 요구를 인지했다”면서도 “기존 장기전세주택은 분양전환 대상이 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미리내집과 기존 장기전세주택의 차이에 대해 “공고 자체가 다르다”며 “기존 장기전세 입주민들에게는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되, 최장 20년 거주 이후에는 연장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안내해왔다”고 설명했다.
한편 오 시장 역시 지난해 6월 열린 서울시의회 시정질문에서 분양전환이나 기간 연장에 대해 선을 그은 바 있다. 오 시장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가 국가정책 수혜의 기득권화”라며 “20년 동안 상당히 낮은 주거비를 부담했으니 자가를 마련해 나가야 또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기회가 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존 장기전세주택 제도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재산을 축적, 주거를 마련해 나가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계약했다”며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고 못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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