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 BH 엔터테인먼트
[스포츠동아 장은지 기자] 정확하고 사려깊은 관찰은 때론 애틋한 마음일 수 있다.
‘허수아비’의 박준우 감독은 ‘탐사보도 PD 출신’으로, 작품의 모티브가 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을 가까이서 취재한 외부인이다. 뉴스 보도가 여과한 얼굴들을, 돌이킬 수 없다면 정확히 관찰하고 꾹꾹 눌러 쓸 뿐이었다. 이 드라마가 호평을 얻는 배경에는 픽션으로 양감을 채웠지만 인물들의 복잡한 사정들을 영웅적으로도, 때론 악하게도 압축해 그려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ENA 드라마 역대 흥행 2위를 기록한 ‘허수아비’는 전국민을 사회적 트라우마로 몰고 갔던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 드라마의 제목은 극 중 범인의 범행 수법을 뜻하지만 동시에 가려진 진실과 공포, 숱한 것들 앞에서 무기력했던 얼굴들의 자화상으로도 읽힌다. 박해수와 이희준이 그 ‘허수아비’에서 치열하게 무력했던 시대의 얼굴을 대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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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형사 강태주 역을 맡은 박해수의 말처럼, 이 드라마는 ‘잃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 지역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이 피해자뿐 아니라 그 마을, 사회 전반까지 추깃물처럼 들러붙어 얼마나 더 많이 앗아갈 수 있는지를, 드라마는 섬뜩하리만치 쓸쓸하게 증언한다.
동시에 드라마는 멀리서 바라보면 차갑지만, 깊숙이 들춰보면 용광로처럼 끓었던 한때도 있었다고 말한다. 무언가를 잃을 수 있었다는 건 곧 치열하게 버텼단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맥락에서 강태주는 이 작품의 ‘끓는점’이다. 그는 진실을 가로는 막는 담을 넘고 벽을 뚫는 직선적인 인물이다. 설사 그 뒤에 자신을 아프게 하는 것이 있더라도 열어젖히기를 멈추지 않는다.
누군가의 아픔을 권력의 제물 삼는 이들에게 천둥같은 고함을 내지르고, 절규에 가까운 신음도 낸다. 다 태울 듯 뜨겁게 달아올랐던 그가 수십 년 세월 끝에 마주한 범인 앞에서 누구보다 차게 식은 얼굴을 한 건, 이 작품이 길어 올린 진실 가운데 가장 쓸쓸한 것이었다.
극 중 가장 선한 의도를 가진 인물인 태주가 많은 것들을 잃어가며 고통받는 과정은 시대의 아픔을 가장 가깝게 그려내기 위한 필연적 서사이기도 했다. 박해수 역시 “그게 바로 우리 드라마가 갖고 있는 다른 지점”이라는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드라마의 반응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건 가족들 덕분이었다.
“저희 누나가 맘카페의 열혈 회원인데, 거기서도 범인이 누군지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나봐요. 같이 분노하고 먹먹해하는 것 같아 감사했죠.”(웃음)
‘허수아비’는 그의 어머니도 울렸다. 빼앗는 실체도 없이 잃어가야만 했던 상실의 시대을 지나온 한 사람의 공포, 그리고 아픔이었다. “이 작품을 보시고는 정말 깊게 들어가셔서 제가 아닌, 강태주를 가여워하셨죠. 그때 피해자와 가족들, 억울함을 당한 청년들이 불쌍하다고 우셨어요. 그게 저에게도 의미가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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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수는 이희준에게 각별히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연기적인 고민이 있어거든요. 배우로서 드라마적 기능에 기여하는 것 말고 정말 ‘인간’을 표현하고 싶은 욕망이 드는 순간도 있을거잖요. 때마침 이 작품에 들어가면서 희준 형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정말 격의없이 도와줬어요.”
두 사람은 따로 연습실을 잡아 함께 캐릭터를 구축해 갔다. 대본 밖의 태주와 시영, 그리고 그들과 관계한 주변 인물들이 나눴을 법한 대화들로 ‘즉흥극’을 하며, 인물의 조각들을 함께 맞춰나갔다.
배우끼리 자칫 ‘낯간지러울 수도 있는 과정’이었지만 “희준 형이라 가능했다”며 두터운 신뢰를 드러내기도 했다.
7화에 정체를 드러낸 범인, 배우 정문성과의 호흡도 인상적이었다. 훗날 태주와 범인이 마주하며 과거를 회상하고 사건을 하나하나 해부해 가는 대화 장면은 과거의 풍경들과 병치 되며 서스펜스를 더한다. 작품 곳곳에 배치된 대화 장면은 사실 두 배우가 “통으로 대본을 외워 한 번에 촬영”한 것이다. 박해수는 겉으로는 평온하고 차분해보이지만 ‘숨 막히는’ 호흡 나눴다고 돌이켰다.
“대화 장면을 쭉 이으면 2~3시간 정도 돼요. 감독과 작가에게 연극으로 만들면 어떨까 제안도 했을 정도로 에너지와 향기마저 달랐던 현장이었어요.”
장은지 기자 eun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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