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곽호준 기자 | 현대차그룹이 순환출자 해소와 경영권 승계를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과제에 놓였다. 재계는 현대모비스 지분 직접 매입과 그룹 로봇 전문 계열사 보스턴다이나믹스의 나스닥 기업공개(IPO)를 연계한 지배구조 개편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향후 수년 내 순환출자 해소와 경영권 승계를 동시에 마무리하기 위한 대규모 지배구조 재편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보스턴다이나믹스의 미국 나스닥 상장이 정의선 회장의 승계 자금 확보와 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 현대차그룹 순환출자 4개 고리…지배구조 개편 필요성 부각
27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국내 주요 대기업 집단 가운데 순환출자 구조를 완전히 정리하지 못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과거 다른 대기업들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거나 계열사 간 지분 고리를 정리한 것과 달리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와 현대차·기아를 중심으로 한 복잡한 지배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네 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핵심 고리는 '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진다. 현대모비스는 현대차 지분 22.36%를 보유하고 있고 현대차는 기아 지분 35.17%를 들고 있다. 기아는 다시 현대모비스 지분 18.15%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현대제철과 현대글로비스가 연결된 추가 고리까지 포함하면 그룹 내 순환출자 구조는 4개로 분석된다.
이 구조는 적은 자본으로 대주주의 그룹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주주가치 훼손 우려도 존재한다. 특히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가 한국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과제로 거론되면서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필요성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문제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직접 지분율이 아직 낮은 수준이라는 점이다. 현재 정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율은 0.33%에 그친다. 현대차 지분은 2.73%, 기아 지분은 1.81% 수준이다. 그룹 경영권은 안정적으로 행사하고 있지만 지분 구조만 놓고 보면 주요 계열사에 대한 직접 지배력은 제한적이다. 순환출자 해소 과정에서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상속세 부담도 지배구조 개편을 압박하는 요인이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현대차 5.57%, 현대모비스 7%대, 현대제철 11%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해당 지분 가치는 약 4조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대기업 최대주주 지분 상속에 적용되는 할증 평가와 최고세율을 감안하면 상속세 부담은 최소 2조원대 중반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
세법상의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하더라도 매년 약 4700억원의 현금이 필요하다. 정 회장의 급여와 배당소득만으로는 대규모 상속세와 현대모비스 지분 인수 비용을 동시에 감당하기 쉽지 않다. 결국 정 회장이 보유한 비상장사와 고지분 계열사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려 유동성을 확보하는 전략이 승계 작업의 선결 조건이 됐다.
▲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 관건…'정공법' 시나리오 주목
가장 주목받는 자산은 보스턴다이나믹스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21년 소프트뱅크로부터 미국 로봇 전문기업 보스턴다이나믹스를 인수했다. 정 회장도 개인 자격으로 20%대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스턴다이나믹스는 4족 보행 로봇 '스팟'과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등을 앞세워 글로벌 로봇 시장에서 높은 인지도를 확보한 기업이다.
최근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이 결합된 '피지컬 AI' 신사업이 본격화되면서 보스턴다이나믹스의 기업가치도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 'CES 2026'에서 아틀라스를 공개 이후 제조 현장 자동화와 휴머노이드 로봇 상용화 기대감이 높아졌다. 증권가에서는 향후 나스닥 상장 시 기업가치가 최소 30조원대로 평가될 가능성이 거론되며 낙관적으로는 100조원 이상도 언급된다.
보스턴다이나믹스 상장이 현실화될 경우 정 회장은 보유 지분을 시장에 매각하는 구주매출이나 상장 이후 지분 유동화를 통해 대규모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이 자금은 정몽구 명예회장 지분 상속세 납부뿐 아니라 기아와 현대제철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이는 '직접 매입 방식'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정공법'으로 부상하는 배경이다.
직접 매입 방식 시나리오는 단순하다. 정 회장이 보스턴다이나믹스 상장과 보유 자산 유동화를 통해 자금을 확보한 뒤 기아와 현대제철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 총 24.22%를 사들이는 구조다. 예상 비용은 현대모비스 주가와 경영권 프리미엄에 따라 약 7조~9조원대로 추산된다.
이 방식이 실현되면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 고리는 상당 부분 해소된다. 정 회장은 구주매출과 사후 지분 매각을 통해 최소 6조원에서 최대 20조원 규모의 현금 실탄을 확보하게 된다. 동시에 현대모비스 지분율 24.55%까지 끌어올려 그룹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올라설 수 있다.
인적분할이나 합병 비율 산정을 둘러싼 논란을 피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지난 2018년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를 활용한 개편안이 주주 반발로 무산됐던 만큼 시장 가격에 기반한 직접 매입 방식은 투명성 측면에서 가장 설득력이 큰 카드로 평가된다.
금융 계열사 분리도 중장기 변수로 거론된다. 현대커머셜, 현대카드 등 금융 계열사는 제조 계열사의 순환출자 고리와 직접 연결돼 있지 않아 지배구조 조정의 유연성이 높은 독립 영역으로 분류된다. 현대커머셜은 현대차 지분율이 38.27%로 정명이 현대커머셜 사장·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측 합산 지분율(38.42%)과 비슷한 수준이다. 향후 정명이 사장 측이 상속받을 수 있는 산업 계열 지분과 현대차가 보유한 금융 계열 지분 간 정리가 이뤄질 경우 그룹은 금산분리 부담을 줄이고 제조 계열 중심 지배구조 개편에 집중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현대글로비스도 중요한 자금원이다. 정 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 20%(혹은 계열 분리 및 블록딜 전 세부 공시에 따라 최고 29.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다. 최근 현대글로비스는 배당 확대와 무상증자, 주주환원 강화 등 밸류업 정책을 이어가며 기업가치를 크게 키웠다. 안정적인 물류·해운·완성차 운송 사업을 바탕으로 현금창출력이 높다는 점에서 정 회장의 배당 재원 확보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 상법 개정·밸류업 압박…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시험대
다만 변수도 적지 않다. 최근 자본시장에서는 상법 개정에 따른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확대와 기업 밸류업 요구가 강화되고 있다. 과거처럼 대주주에게 유리한 구조조정 방식은 더 이상 시장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 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이 보스턴다이나믹스 상장과 현대글로비스 밸류업 정책, 현대모비스 지분 직접 매입을 결합한 정공법을 택할 경우 순환출자 해소와 승계 안정화를 동시에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공법 시나리오가 순조롭게 진행되기는 어렵다는 시선도 적지 않다. 우선 보스턴다이나믹스의 기업가치가 시장 기대만큼 인정받아야 한다. 기존 주주가 보유 지분을 시장에 매각하는 구주매출 과정에서 대주주 개인의 승계 재원 마련이라는 시각을 어떻게 해소할지도 과제다. 그룹 차원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투자한 로봇 사업의 가치가 오너 일가의 지배력 강화로 연결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은 단순 승계 문제가 아니라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 방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순환출자 해소와 승계 안정화, 주주가치 제고 사이 균형을 시장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맞춰가는 과정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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