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유권자가 승부 가른다
(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온라인 공간에선 이미 승패가 결정된 듯한 분위기다. 여권은 '내란 잔재 청산'을, 야당은 '정권 폭주 견제'를 각각 내세운다. 같은 여론조사를 놓고서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한다.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속 선거 분위기는 마치 두 나라가 치르는 '평행선거'를 보는 듯하다. 정책과 공약은 뒷전으로 밀렸다. 그저 알고리즘과 진영 논리가 만들어낸 의사(擬似) 여론이 조용한 민심을 압도한다.
이 같은 상황을 설명하는 첫 번째 실마리는 '확증 편향' 개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은 정보를 객관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 자신이 믿고 있는 방향으로 골라 받아들인다. 보수 성향 유권자는 보수 채널에, 진보 성향 유권자는 진보 채널에 각각 머문다. 알고리즘은 이런 성향을 놓치지 않는다. 유권자가 클릭한 영상과 비슷한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노출한다. 그렇게 정치 정보는 선택적으로 소비된다. 같은 사건도 진영에 따라 다른 의미로 읽힌다. 정보의 홍수 시대라고 하지만, 각자의 방에서 같은 메아리만 듣고 있는 형국이다.
선거 과정에서 악재가 터져 나와도 지지층이 등을 돌리지 않는 이유는 이성보다 감정에 있다. 이른바 '인지 부조화' 개념이다. 인간은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지 후보에게 논란이 생겨도 "언론이 왜곡한다", "그래도 상대보다 낫다", "지금은 뭉쳐야 한다"라는 합리화가 뒤따른다. 이는 특정 진영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정치가 정책보다 정체성 경쟁으로 변질될수록 유권자는 자기 확신을 방어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그래서 선거가 과열되면 분별은 사라지고 확신만 쌓인다.
선거철 모임 자리에서 정치 이야기가 나올 때, 자신이 소수라고 느끼면 조용히 화제를 돌리거나 입을 다문다. 이를 '침묵의 나선 이론'이라고 한다. 특히 상대방에 대한 공격과 조롱, 정치적 낙인은 침묵을 부추긴다. 그래서 숨은 민심이 여론조사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 '샤이 보수'나 '조용한 진보'라는 용어가 되풀이해서 나오는 이유다. 큰 목소리가 다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론은 드러난 의견의 총합만으로 헤아릴 수 없다. 침묵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민심은 종종 침묵 속에 숨어 있다. 문제는 그 침묵이 어느 방향으로 표출되느냐다. 여론조사가 놓친 표심은 개표가 시작돼서야 모습을 드러낸다.
확증 편향과 인지 부조화, 침묵의 나선은 서로 맞물려 있다. 확증 편향이 서로 다른 세계를 만들고, 인지 부조화가 자기 진영의 오류를 보지 못하게 하고, 침묵의 나선이 민심을 왜곡한다. 그 결과 대중은 같은 선거를 바라보면서도 다른 현실을 경험한다. 민주주의는 다른 생각을 가진 시민들이 공론장에서 논쟁하며 합의를 찾아가는 과정 위에서 작동한다. 그 논쟁이 성립하려면 상대를 인정하는 마음이 먼저다.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마음인지 모른다.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