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정부의 약가제도 개편을 앞두고 국내 제약업계의 하반기 수익성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복제약인 제네릭 최고 약가 산정률이 기존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53.55%에서 45%로 낮아지면서, 제네릭 의존도가 높은 국내 제약사들이 직접적으로 매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7일 글로벌 헬스케어 데이터 분석 기업 아이큐비아는 감소 폭이 단기에는 6% 수준에 그치지만 중기에는 10%, 장기에는 14%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제도 시행 초기에는 일부 기업이 연구개발 가산 우대 등으로 충격을 완화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존 제네릭 품목의 약가 인하 효과가 누적되면서 매출 방어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개편은 단순한 약값 인하를 넘어 국내 제약사의 기존 수익 구조를 흔드는 제도 변화로 평가된다. 그동안 상당수 국내 제약사는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가 끝난 뒤 제네릭을 출시해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해왔다. 제네릭은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낮추고 환자 접근성을 높이는 역할을 해왔지만, 국내 제약사에는 신약 연구개발에 필요한 현금을 만드는 ‘캐시카우’로도 기능했다.
이 같은 수익 구조는 8월 약가제도 개편 시행 이후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새로 등재되는 제네릭은 최고 산정률이 45%로 낮아진다. 자체 생물학적동등성시험 실시, 식품의약품안전처 등록 원료의약품 사용 등 품질관리 요건을 충분히 충족하지 못하면 약가는 36%, 29% 수준까지 더 내려갈 수 있다. 같은 약을 팔아도 제약사가 가져가는 금액이 줄어드는 구조다.
후발 제네릭 난립을 막기 위한 계단식 약가인하 기준도 강화된다. 기존에는 다수 업체가 위탁생산을 통해 비슷한 제네릭을 잇달아 출시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일정 품목 수를 넘어서면 약가가 추가로 낮아진다.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줄이고 품질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수익성 방어와 품목 구조조정이 동시에 필요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제도 변화는 제약사들의 사업 전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이다. 주요 제약사들은 제네릭 약가 인하에 대응해 위탁개발생산(CDMO)을 새 수익원으로 키우고 있다. CDMO는 다른 제약·바이오사의 의약품을 대신 개발하거나 생산하는 사업이다. 기존 공장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고, 해외 공급 계약을 따낼 경우 내수 제네릭보다 높은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안으로 거론된다.
유한양행은 자회사 유한화학을 앞세워 원료의약품(API) 공급 계약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 길리어드사이언스, 브릿지바이오파마 등과 계약을 맺으며 올해 누적 수주액이 2662억원에 달했다. 한미약품은 자회사 한미정밀화학을 통해 기존 원료의약품 중심 사업에서 바이오의약품 CDMO 비중을 늘리고 있는 모습이다.
보령도 세포독성항암제 생산 역량을 바탕으로 대만 제약사 로터스에 항암제 공급을 시작했고, 종근당 계열 경보제약은 항체약물접합체(ADC) 전용 공장에 투자하며 차세대 항암제 위탁생산 기반을 넓히고 있다.
정부는 약가 인하와 함께 신약·필수의약품 지원 장치도 병행한다는 입장이다. 다음 달부터는 약가유연계약제가 본격 시행, 약가유연계약은 외부에 공개되는 표시가와 실제 건강보험 청구에 적용되는 실제가를 분리하는 제도다. 국내 보험 재정 부담은 줄이면서도 해외에서 참고되는 표시가격은 일정 수준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국산 신약의 해외 약가 방어와 다국적 제약사의 국내 출시 유인을 높이는 장치로 작동할 수 있다.
첫 적용 대상은 8개사 12개 품목이다. 국내사에서는 대웅제약의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펙수클루와 당뇨 신약 엔블로 등이 포함됐다. 다국적사 품목으로는 아스텔라스의 전립선암 치료제 엑스탄디, 애브비의 중증 건선 치료제 스카이리치, 머크의 난임 치료제 퍼고베리스, 아스트라제네카의 유방암 치료제 파슬로덱스 등이 이름을 올렸다. 국내사는 수출 가격 방어, 다국적사는 글로벌 약가 훼손 방지가 주요 활용 목적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필수의약품 공급 안정 대책도 함께 추진될 예정이다. 정부는 소아용 의약품, 항생제 주사제, 국내 원료 직접 생산 품목 등에 약가 우대를 확대하고, 연구개발 투자 기업에는 ‘준혁신형 제약기업’ 기준을 신설해 혜택을 주기로 했다. 공급 중단 우려가 있는 필수약을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기업에는 ‘수급 안정 선도기업’ 지위를 부여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퇴장방지의약품 약가 기준도 8월부터 최대 10% 인상된다.
다만 업계의 우려는 남아 있다. 약가 인하는 8월부터 바로 적용되지만, 준혁신형 제약기업 지정이나 수급 안정 선도기업 우대 같은 보완책은 세부 기준과 적용 시점이 아직 불확실하다는 이유에서다. 제네릭 매출 의존도가 높은 중소형 제약사일수록 과도기 충격이 클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필수의약품 대책 역시 단순 약가 인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원료비와 인건비, 물류비가 오르는 상황에서 10% 안팎의 약가 조정만으로는 생산할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를 바꾸기 어렵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원가 상승분을 반영하는 약가 체계, 장기 공급계약, 원료의약품 국산화 지원, 국가 차원의 공급망 관리 체계가 함께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공익적 책임 때문에 적자를 감수하고 생산을 유지하는 품목이 적지 않다”며 “생산할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공급 불안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원가 상승분을 반영할 수 있는 약가 체계와 장기 공급계약 기반의 가격 보장 시스템이 함께 마련돼야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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