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일·영 등 선진국의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창업주들이 글로벌 유력 언론에 버금가는 권력자로 급부상했다. 그들이 설립한 플랫폼이 단순한 소통 공간을 넘어 대중의 생각과 사회적 흐름을 주도하는 여론의 진원지로 자리매김한 덕분이다. 각국의 문화적 특성을 바탕으로 성장한 커뮤니티들엔 하루 최대 수억명의 이용자가 몰리고 있으며 그곳에서 형성된 여론은 사회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막강한 파급력을 자랑한다.
대학 기숙사에서 탄생한 미국 최대 커뮤니티 레딧…여행 가이드북서 출발한 중국 샤오홍수
세계에서 가장 큰 온라인 커뮤티인 미국의 '레딧'은 2005년 6월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의 졸업생인 스티브 허프먼과 알렉시스 오해니언이 공동 창업한 플랫폼이다. 사이트 명칭은 "내가 그것을 읽었다"라는 뜻의 영어 문장 "I read it"의 발음을 따서 지었다. 레딧의 가장 큰 특징은 '서브레딧(Subreddit)'으로 불리는 하위 커뮤니티 시스템이다. 이용자들은 관심사에 따라 주식, 정치, 과학, 게임, 유머 등 10만 개가 넘는 개별 주제별 게시판을 직접 개설하고 운영할 수 있다.
콘텐츠의 노출 방식은 철저히 민주적인 투표 시스템을 따른다. 이용자들이 게시글에 부여하는 추천과 비추천 수에 따라 인기 글이 메인 화면 상단에 노출되는 알고리즘을 갖추고 있다. 대중적 관심도가 높은 게시글일수록 더욱 큰 관심을 갖는 구조인 셈이다. 이러한 구조는 대중 여론을 형성하는 강력한 파급력의 결정적 요인이 됐다. 지난 2012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레딧의 실시간 질의응답 세션인 'AMA(Ask Me Anything)'에 참여하자 얼마 안가 서버가 다운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2021년에는 레딧의 주식 토론방인 '월스트리트베츠(WallStreetBets)'를 중심으로 뭉친 개인 투자자들이 대형 헤지펀드를 상대로 이른바 '게임스톱 공매도 전쟁'을 일으키며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든 바 있다.
레딧의 탄생은 버지니아 대학 시절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두 청년의 실패에서 시작됐다. 컴퓨터 과학을 전공한 스티브 허프먼과 역사 및 경영학을 전공한 알렉시스 오해니언은 원래 휴대폰으로 음식을 미리 주문하는 모바일 앱 개발을 구상했다. 이들은 당시 신생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였던 '와이컴비네이터(Y Combinator)'의 설립자 폴 그레이엄을 찾아가 아이디어를 설명했으나 모바일 환경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의 역량을 눈여겨본 폴 그레이엄은 모바일 대신 웹 기술을 활용해 사용자들이 링크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라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조언을 바탕으로 단 3주 만에 레딧의 초기 모델을 완성해 세상에 내놓았다.
창업 이후 레딧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서비스 개시 이듬해인 2006년 10월 두 사람은 미국의 대형 미디어 그룹 뉴하우스의 출판 계열사인 미디어 대기업 콘데 나스트(Condé Nast)에 레딧의 지분 일부를 매각했고 2009년에는 두 사람 모두 경영 일선에서 잠시 물러났다. 전문 경영인 체제 하에서 레딧은 심각한 커뮤니티 내부 갈등과 운영진과의 불화, 유해 콘텐츠 방치 문제로 위기를 맞았다. 결국 2015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기술 책임자 역할에만 집중했던 스티브 허프먼이 최고경영자(CEO)로 전격 복귀해 플랫폼의 전면적인 개편과 거버넌스(운영 체제) 확립을 주도했다. 스티브 허프먼의 지휘 아래 레딧은 사업 다각화와 체질 개선을 거쳐 2024년 3월 미국 뉴욕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하며 기업가치를 증명했다.
유명 테니스 선수 세레나 윌리엄스의 남편으로도 익히 유명한 알렉시스 오해니언 역시 비슷한 시기 레딧의 구원투수로 복귀해 이사회 의장 등으로 활동했다. 이후 2020년 흑인 인권 운동(BLM) 지지 의사를 밝히며 이사회에서 사임했다. 개인 이념에 치중한 대외 활동이 자칫 회사의 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벤처캐피털(VC) '세븐 세븐 식스(Seven Seven Six)'를 설립하며 전문 투자자로 변신했다.
중국에는 시각적 이미지와 정교한 알고리즘을 무기로 전 세계 젊은 층을 사로잡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겸 온라인 커뮤니티 플랫폼 '샤오홍슈(小紅書)'가 존재한다. '작은 빨간 책'이라는 뜻을 지닌 샤오홍슈는 영문명으로 '레드노트(REDnote)'로도 불린다. 현재는 3억명 이상의 월간 활성 이용자(MAU)를 보유한 거대 디지털 생태계로 성장했다. 특히 인스타그램과 유사한 바둑판 배열의 시각적 인터페이스에 핀터레스트 스타일의 정보 탐색 기능을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샤오홍슈는 2013년 8월 마오원차오(毛文超)와 취팡(瞿芳) 창업주가 공동 설립했다. 창업 초기엔 해외여행을 떠나는 중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현지 쇼핑 정보와 구매 팁을 담은 가이드북 제공을 주력으로 했다. 당시 중국 소비자들의 구매력은 급격히 상승하고 있었으나 해외 럭셔리 제품이나 뷰티 상품에 대한 신뢰할 만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에 착안한 아이디어였다. 이 가이드북이 첫 달에만 수십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자 두 사람은 사용자들이 직접 사진과 후기를 올리는 모바일 커뮤니티 앱으로 빠르게 전환했다.
샤오홍슈는 20~30대 젊은 여성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패션, 뷰티,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주도하는 거대 플랫폼으로 탈바꿈했다.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올리는 제품 리뷰가 신뢰를 얻으면서 막강한 구매 전환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샤오홍슈는 커뮤니티 콘텐츠와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시스템을 결합한 독특한 소셜 커머스 모델로 진화했으며 중국 시장 진출을 노리는 글로벌 브랜드들이 반드시 활용해야 하는 필수 마케팅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텐센트와 알리바바 등 중국 IT 대기업들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200억 달러(한화 약 30조원) 규모의 유니콘 기업으로 도약했다.
샤오홍슈의 성장 주역은 10년 이상 우정을 이어온 두 명의 젊은 엘리트 창업주들이다. 최고경영자(CEO)인 마오원차오는 상하이 교통대학교 기계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글로벌 컨설팅 펌을 거쳐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경영대학원(GSB)에서 MBA 과정을 거쳤다. 공동 창업자인 취팡은 글로벌 엔지니어링 기업의 임원 출신으로 비즈니스 개발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다. 다양한 여행 경험을 공유하던 두 사람은 중국 청년들이 고품질의 라이프스타일 정보를 원하고 있다는 시장의 틈새를 정확히 간파하고 상하이의 작은 사무실에서 의기투합했다.
창업 초기 마오원차오는 정교한 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AI) 기반의 개인화 추천 알고리즘 등 기술적 성장을 담당했고 취팡은 커뮤니티의 핵심 가치인 사용자 경험과 브랜드 협업 등 비즈니스 확장을 이끌었다. 이들은 특히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기업 문화를 앞세워 유수의 인재를 유치했다. 사무실 내에서 직급 대신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에서 따온 닉네임을 사용하도록 한 일화는 이미 중국 내에서 유명하다. 지금도 회사 내부에서 마오원차오는 '세이야(Seiya)', 취팡은 '뮬란(Mulan)'이라는 별칭으로 각각 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최대 커뮤니티 만든 유명 논객 '히로유키'…英 선거판 흔드는 맘스넷 창립자 '로버츠'
일본에는 현대 인터넷 밈(Meme)과 하부문화의 뿌리가 된 최대 규모의 익명 커뮤니티 '2채널(2ch, 현 5채널)'이 존재한다. 1999년 5월 개설된 2채널은 2000년대 일본 인터넷 트렌드와 여론을 독점하다시피 하며 오랜 기간 사회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2채널의 가장 핵심적인 정체성은 '익명성'과 '비회원제'다. 별도의 아이디나 가입 절차 없이 누구나 게시글을 작성해 공개할 수 있다. 현실의 신분이나 체면을 내려놓고 가장 솔직하거나 극단적인 의견을 쏟아내는 공간이라는 처음 취지를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다.
정치, 뉴스, 게임, 연애, 요리 등 수백 개의 전문 게시판으로 세분화된 2채널은 수많은 신드롬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2채널의 연애 상담 게시판 실화를 바탕으로 소설·영화·드라마화 신드롬을 일으킨 '전차남'이 대표적이다. 또한 문자를 조합해 만든 독특한 텍스트 이모티콘과 캐릭터(아스키 아트) 문화는 일본 대중문화 전반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다만 극단적인 익명성의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특정인에 대한 무분별한 사이버 불링, 사생활 침해, 허위 사실 유포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했으며 2000년대 후반 이후에는 사상적으로 우경화된 유저들이 결집해 혐오 발언을 쏟아내 '우익의 온상'이라는 비판에 휩싸이기도 했다. 2014년 운영권 분쟁을 거쳐 현재는 '5채널(5ch)'로 명칭이 변경된 상태다.
2채널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바로 창업주이자 초대 관리인인 니시무라 히로유키(西村博之)다. 통상 '히로유키'로 불리는 그는 1999년 미국 아칸소 대학교 유학 시절에 2채널을 개설했다. 그는 2채널을 운영하면서 수많은 법적 분쟁을 겪기도 했다. 익명 게시판 특성상 명예훼손, 저작권 침해, 범죄 예고 등 불법 게시물이 끊이지 않았고 피해자들은 운영자인 그를 상대로 수십 건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그에게 총 수억 엔에 달하는 배상금 지급 판결을 내렸으나 히로유키는 "법적 책임은 게시물을 올린 당사자에게 있다"며 배상금 지급을 거부하고 자산을 해외로 이전시키는 등 강경하게 맞섰다.
2010년대 중반 2채널의 실질적인 운영권을 잃은 후 프랑스 파리로 이주했으나 온라인 상에서 그의 영향력은 오히려 더욱 커졌다. 일본 최대 동영상 플랫폼인 '니코니코 동화'의 설립에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최대의 서브컬처 커뮤니티인 '포탠(4chan)'을 인수했다. 글로벌판 2채널을 새롭게 만든 셈이다. 실제로 포탠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음습하면서도 파급력 있는 막후 공론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히로유키는 현재 파리에 거주하며 시사 및 경제 이슈를 다루는 유튜버이자 방송 논객으로도 활동 중이다. 특유의 냉소적이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토론 스타일과 "그건 당신 개인의 생각이죠?" 같은 유행어를 히트시키며 일본 젊은층 사이에서 여전히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영국판 맘카페'로 불리는 영국의 '맘스넷(Mumsnet)'은 현재 월간 방문자 수만 수천만 명에 달하며 영국 전체 부모의 절반 이상이 이용하는 자타공인 영국 최대의 여성·육아 플랫폼이다. 2000년 설립 이후 양육이라는 관심사를 매개로 국가 정책과 선거판까지 뒤흔드는 가장 조직적인 정치·사회적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맘스넷의 강력한 힘은 육아 정보 공유를 넘어선 사회적 연대와 공론화에 있다. 초기에는 유모차 추천이나 수면 교육 같은 일상적인 육아 팁을 나누는 공간이었으나 이용자들이 낙태권, 성평등, 교육 정책, 보육비 지원 등 무거운 사회적 의제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하나 둘 밝히기 시작하면서 담론의 장으로 진화했다.
'맘스넷 선거(Mumsnet Election)'라는 신조어는 맘스넷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꼽힌다. 현재 영국의 주요 정치인들은 표심을 잡기 위해 반드시 맘스넷에 등장해 유저들과 실시간 질의응답을 가져야 하는 것이 일종의 필수 코스가 됐다. 고든 브라운, 데이비드 캐머런 등 전직 영국 총리들은 물론 주요 정당 대표들이 선거철마다 맘스넷을 방문해 직접 정책을 설명하고 검증을 받는 과정을 거친다. 기업들 역시 혹시나 모를 불미스러운 일을 방지하기 위해 맘스넷의 여론 동향을 실시간으로 살피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사회의 가장 강력한 권력으로 자리매김 한 맘스넷을 만든 주인공은 전직 금융 기자 출신의 저스틴 로버츠(Justine Roberts)다. 로버츠가 1999년 아이를 낳은 후 첫 가족 여행에서 겪은 끔찍한 경험이 계기가 됐다. 그는 아이와 함께 가기 좋은 리조트라고 해서 찾아갔으나 실제로는 홈페이지 설명과 전혀 다른 모습에 크게 실망했다. 당시에는 이용자들이 직접 겪은 생생하고 솔직한 후기나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소통 창구가 전무했던 탓이다. 이후 로버츠는 부모들이 출산이나 양육과 관련된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소통 창구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이듬해인 2000년 친구들과 함께 자신의 집 부엌 식탁에서 맘스넷을 출범시켰다.
창업 초기에는 수익이 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으나 로버츠는 철저하게 이용자 중심의 자율성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며 신뢰도를 쌓아나갔다. 기업의 광고 협찬보다 유저들의 솔직한 리뷰를 보호했고 이는 까다로운 영국 부모들의 폭발적인 지지로 이어졌다. 로버츠는 맘스넷을 단순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사회적 캠페인을 주도하는 시민운동의 구심점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유치원 보육 예산 삭감 반대 운동, 산후 우울증 지원 확대 요구, 아동 대상 성상품화 광고 반대 등 맘스넷 유저들의 목소리를 모아 실제 정부의 법 개정과 정책 발굴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로버츠는 2017년 영국 정부로부터 대영제국 훈장(CBE)을 수훈했으며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지금도 커뮤니티의 익명성과 책임감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 전문가들은 세계 각국에서 가장 성공한 온라인 커뮤니티들에 대해 자발적으로 모인 집단지성이 사회·경제적으로 얼마나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 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초창기 단순한 친목 도모나 정보 공유의 장에 머물렀다면 현재는 철저한 이용자 중심의 서비스와 알고리즘을 통해 막강한 팬덤 경제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며 "특히 레딧의 상장이나 중국 내의 샤오홍수의 인기 등은 자발적으로 모인 집단지성이 어떻게 거대한 기업 가치와 비즈니스 확장성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플랫폼 경영의 대표적인 사례다"고 설명했다. 이어 "글로벌 커뮤니티 창업주들의 공통점은 대중이 원하는 소통의 본질을 꿰뚫은 것에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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