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兒童]. 사전에 따르면 나이가 어린 아이, 대체로 유치원 시기부터 사춘기 이전까지를 의미한다. ‘아동복지법’에서는 이를 18세 미만의 사람으로 규정한다.
아동은 보호의 대상인 동시에 독립된 권리의 주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여전히 아동을 부모의 소유물처럼 인식하는 시각이 남아 있으며 이들을 스스로 판단하고 의견을 형성할 수 없는 존재로 간주해 그 가능성과 권리를 제한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아동의 삶은 제도적 사각지대와 한계 속에 놓여 있는 실정이다.
이에 본 기획에서는 아동학대, 정책 과정에서의 배제, 다양한 형태의 차별 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는 아동권리의 현주소를 짚어 본다. 더 나아가 정부의 대응을 점검하고 전문가와 현장 관계자들의 제언을 통해 실질적인 개선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선거철이면 청년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정치권은 앞다퉈 공약을 내놓고 사회는 미래 세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금의 아동·청소년은 머지않아 정책을 논하고 직접 정치인을 뽑으며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 권리를 행사하게 될 사람들이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동안에는 권리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 온 학생인권조례가 존폐 기로에 놓였고 정책 결정 과정에서도 아동·청소년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대상’으로만 머무는 경우가 많다. 자신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임에도 의견을 낼 통로는 제한적이고 결정 과정에 참여할 권리는 쉽게 후순위로 밀려난다.
법과 제도의 문턱 앞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부모의 이혼과 양육권 분쟁 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당사자는 아동이지만 정작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의사를 충분히 전달하거나 행정·민사 분야에서 법률적 조력을 받을 기회는 턱없이 부족하다. 누가와 어디에서 살아가게 될지와 같은 삶의 중대한 결정이 이뤄지는 순간에도 아동은 쉽게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아동권리를 단순한 보호의 차원이 아니라 ‘참여’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래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권리를 유예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아동·청소년의 의견을 실질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 A학생은 수업 중 소란스럽게 했다는 이유로 교사로부터 무릎을 꿇는 벌을 받고 모욕적인 발언까지 들었지만 이후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도 학교 측으로부터 진행 상황에 대한 안내나 적절한 조치,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B학생은 학교 안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학교의 지시 사항을 무조건 따르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강요받았다고 주장했다.
#. 한 시민단체는 2017년 대통령선거를 시작으로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국회의원선거, 2022년 대통령선거·지방선거, 2024년 국회의원선거 등 주요 전국 단위 선거 때마다 청소년 모의투표를 진행해 왔다. 현재까지 약 18만명의 비유권자 청소년이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다른 단체는 청소년 참정권에 대해 “청소년은 미성숙하고 쉽게 선동된다”, “학교가 정치화될 수 있다” 등의 우려가 나온 점을 규탄하며 아동·청소년의 권리 보장을 촉구했다.
이처럼 아동·청소년들은 여전히 스스로 의견을 내고 사회적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주체라기보다 보호와 통제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실제 현장에서는 정책 체감도와 신뢰도 모두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아동권리 NGO 세이브더칠드런이 지난 1월 13일 발표한 전국 10~18세 아동·청소년 1000명과 19~69세 성인 1000명 등 총 2000명을 대상으로 ‘아동·청소년 정책에 대한 인식 및 평가 조사’에 따르면 정부의 아동정책기본계획이 아동·청소년의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됐는지 묻는 질문에 긍정 평가한 비율은 아동 20.5%, 성인 34.4%에 불과했다.
특히 정책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아동·청소년의 경우, 부정적 평가(7.4%)와 ‘잘 모르겠다’(72.1%)는 응답을 합한 비율이 79.5%에 달했다. 실제 정책 수혜자들의 체감률이 적다는 의미다.
국가 정책을 통한 아동·청소년의 삶의 질 변화에 대한 인식도 전반적으로 미흡한 수준을 보였다. 교육과 놀이, 건강과 안전, 돌봄과 복지 등 주요 영역 전반에서 아동과 성인 모두 과반 이상이 “개선되지 않았다”거나 “잘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아동·청소년이 자신의 삶과 권리에 중대한 영향을 받는 상황에 놓여 있음에도 이를 스스로 설명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은 여전히 부족하다. 대표적으로 부모의 이혼과 양육권 분쟁 과정에서 아동의 의사는 고려 대상이 되지만 실제 결정 과정에서 그대로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은 아동의 연령과 발달 단계, 진술 형성 배경, 특정 부모의 영향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면서도 정작 당사자인 아동이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전달하고 법률적 조력을 받을 기회는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부당한 일을 겪은 아동·청소년들은 복잡한 절차와 두려움 속에서 스스로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국선변호사 제도가 형사·소년 사건 일부에만 편중돼 있는 반면, 정작 아동·청소년의 일상과 생존에 직결되는 민사·가사·행정·복지 영역에서는 법률 조력 체계의 공백이 뚜렷하다는 비판이다.
이에 따라 아동·청소년 대상 법률 지원을 단순한 복지 서비스가 아닌 국가가 책임지고 보장해야 할 필수적 기본권의 영역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3월 12일 국회에서 진행된 ‘아동·청소년 인권옹호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사회복지연구소 마실 조소연 대표는 “현재 한국의 아동·청소년 법률 조력은 사후 대처 중심, 형사 사건·피해자 지원 편중, 시혜적 관점의 일회성 지원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이로 인해 친권·후견·양육비 등 민사·가사, 학교 징계·복지 급여 등 행정, 사전 예방이 사각지대에 빠져있고 공익 전업 변호사의 수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가 책무와 생애주기별 통합 옹호로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며 “아동을 보호의 객체가 아닌 독립된 권리 주체로 인정하며 부모의 경제력과 무관한 직권 국선 변호 체계 확립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도 대표적인 아동·청소년 권리 침해 사례로 꼽힌다. 학생인권조례는 교육 현장에서 관행처럼 이어져 온 인권 침해를 바로잡고 학생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기 위해 마련됐다. 조례에는 성별, 종교, 출신, 언어, 장애, 임신·출산, 가족 형태,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성적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담겨 있다. 또한 체벌과 따돌림, 집단 괴롭힘, 성폭력 등 각종 신체적·정서적 폭력으로부터 안전할 권리와 이를 예방해야 할 학교의 책임 역시 명시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약화와 학습권 침해를 초래했다는 주장을 제기하며 조례 폐지를 요구해 왔다. 이에 따라 학생인권조례는 여러 차례 폐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서울시의회는 2024년 4월 본회의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처음 의결했으며 서울시교육청의 재의 요구 이후 같은 해 6월 다시 폐지안을 통과시키며 폐지를 확정했다. 이에 서울시교육청은 7월 대법원에 폐지안 무효 확인 소송과 집행정지를 신청했고 대법원이 집행정지를 받아들이면서 조례 효력은 유지됐다. 이후 서울시의회는 지난해 12월 16일 본회의에서 재석 의원 86명 중 65명의 찬성으로 폐지안을 재차 가결했으며 당시 서울시교육감 후보였던 정근식 교육감은 올해 1월 재의를 요구했다.
청소년단체 등은 학생인권조례가 학교 현장에서 학생의 인권과 존엄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학생인권조례가 학교 안 청소년의 권리를 보호하는 사실상의 마지막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둘러싼 사회적 장벽 역시 여전히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제도상 우리 사회는 연령 기준에 따라 선거권 등 참정권과 정당 가입·활동, 선거운동의 자유 등 일부 정치적 권한에 제한을 두고 있다. 청소년 참여기구 역시 정책 제안 기능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청소년의 정치적 기본권을 제한하는 주요 논거로 청소년을 ‘보호와 배려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지목되고 있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선거권은 만 18세 이상에게 부여되며 선거권이 없는 18세 미만 청소년의 공식적인 선거운동은 제한된다. 반면 2022년 ‘정당법’ 개정으로 정당 가입 가능 연령은 만 16세 이상으로 낮아지면서 16~17세 청소년도 정당 활동에는 참여할 수 있지만 선거권과 선거운동의 권한은 제한되는 구조가 형성됐다.
아울러 만 15세 이상 청소년은 일정 조건 아래 근로가 가능하고 경제활동 과정에서 세금을 납부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일부 부담하고 있음에도 정치적 권리는 획일적으로 제한되고 있다는 점에서 권리와 책임 간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아동·청소년을 독립된 권리의 주체로 보기보다 여전히 보호하거나 교정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시선이 청소년의 의견과 자율성을 제한하고 참여권 보장을 가로막는 구조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아동·청소년 참여 제도가 양적으로는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실질적인 권한 보장보다는 형식적 의견 수렴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봤다.
아동·청소년 인권 전문 이제호 변호사는 “최근 청소년 참여위원회나 간담회 등 당사자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는 확대되고 있지만 실제 정책 결정 과정에 반영되는 사례는 많지 않다”며 “아동·청소년은 정치적 영향력이 제한적인 데다 학령기가 짧아 지속적인 의제 형성과 압박이 어려운 만큼 참여가 형식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공현 활동가 역시 “학교 현장과 정치권에서 청소년 의견 수렴 절차와 참여 기회는 늘어나고 있지만 실제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반영되는 것이 제한적”이라며 “설문 문항과 참여 방식 자체가 성인 중심으로 설계되거나 일부 청소년만 상징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 청소년 참여가 실질적 권한 보장보다 ‘형식적 절차’에 머무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법률조력 한계에 대해 이 변호사는 “현재 사법 시스템이 아동을 포함한 법률적 약자 전반에 충분히 친화적이지 못하며 특히 아동 사건에서는 당사자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며 “아동 관련 전문성이 있는 판사·검사·경찰·변호사를 만나지 않는다면 아동의 의사와 욕구가 절차 과정에서 충분히 고려되지 못하고 보호자 중심으로 사건이 진행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특히 저연령 아동일수록 자신의 의사를 직접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아동 진술을 이끌어내고 권리를 보호할 전문성이 더욱 중요하지만 현재는 제도보다 개별 실무자의 역량과 감수성에 의존하는 상황”이라며 “아동보호 전담 인력 양성과 전문성 축적, 가사조사관 강화 및 확대 등 아동 친화적 사법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학생인권조례 폐지와 관련해서 이 변호사는 “학생인권조례는 인권교육과 학생인권센터 운영 등 학교 현장의 여러 제도 운영 근거 역할을 해온 만큼 폐지될 경우 관련 체계 역시 위축될 수 있다”며 “학생 인권 보장과 교사의 생활지도는 양립 가능한 문제임에도 현장에서는 대립 구도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며 실질적인 공론화와 대안 논의보다 폐지가 손쉬운 해결책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공 활동가는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논의 과정에서 아동의 권리가 쉽게 제한 가능한 가치로 취급되고 있으며 실제 당사자인 학생들의 의견은 여론 형성과 정책 결정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며 “특히 교권 강화 담론이 학생인권 논의와 충돌하는 구조 속에서 학생 인권 문제가 교실 운영과 교사의 노동환경 문제까지 포괄해 논의되면서 갈등이 더욱 첨예해지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에 그는 학생인권과 교권을 대립적으로 접근하기보다 교사의 업무·수업 환경 개선과 법적 부담 완화 등 현장 여건을 함께 개선해야 실질적인 대화가 가능하다고 짚었다. 더 나아가 학생 참여를 형식적 절차에 그치지 않도록 보장하고 학교 현장에서 학생 인권과 교육권이 함께 존중될 수 있는 제도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학교와 지역별로 인권 기준과 운영 방식이 제각각인 상황이 이어지면서 학생 인권에 대한 사회적 기준과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지 못했다는 지적하며 국가 차원의 통합적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청소년 참정권이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 활동가는 “청소년 참여가 단순히 의견을 듣는 절차에 그쳐서는 안 되며 충분한 정보 제공과 공론화, 일상적 활동 기반이 함께 마련돼야 실질적인 참여가 가능하다”며 “참정권 논의 역시 단순한 선거권 연령 하향을 넘어 정치적 표현과 활동의 자유까지 확대돼야 한다. 학교와 지역사회, 정당 안에서 청소년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정치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와 지원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향후 과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두 사람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청소년을 독립적인 권리 주체라기보다 보호하거나 교육을 통해 변화시켜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교육 정책 역시 청소년을 특정한 방향의 시민이나 인재로 ‘만들어야 할 존재’로 접근하는 경향이 반복돼 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청소년을 정책과 교육의 대상이 아닌 자신의 삶을 직접 만들어가는 주체로 바라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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