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cm 단차⋯서소문 고가 붕괴, 예고된 ‘인재’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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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cm 단차⋯서소문 고가 붕괴, 예고된 ‘인재’였나

일요시사 2026-05-27 15:58:1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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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철거 공사 막바지에 접어들었던 서울 도심의 서소문 고가차도가 무너져 내리면서 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구조물 침하라는 이상징후가 나타났음에도 충분한 안전 보강 조치 없이 인력이 투입돼 안전 진단이 진행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아직 수사당국의 정확한 조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이번 사고 역시 건설 현장의 고질적인 ‘안전불감증’이 부른 인재(人災)일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27일 소방당국과 관계기관 등에 따르면, 전날(26일) 오후 2시33분께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차도 철거 현장에서 구조물이 붕괴하며 3명이 숨지고 3명이 크게 다쳤다. 사망자는 현장 관리소장, 감리단장, 외부 전문가 등 현장 안전을 책임지던 이들로 파악됐다.

사고의 발단은 이날 새벽 고가차도 상판 일부를 절단하던 중 발견된 약 2.9㎝의 침하(단차) 현상이었다. 전문가들은 2.9㎝의 단차가 발견된 시점 자체가 이미 ‘붕괴가 진행 중’이라는 위험 신호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통상 이런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 인력 접근을 먼저 통제하고, 드론이나 원격 장비로 상태를 파악한 뒤 임시 지지대 등을 설치해 구조물을 보강하고 나서야 현장 접근을 허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 같은 사전 보강 조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당일 오후 2시부터 9명의 인력이 구조물 주변에 투입돼 긴급 점검을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여러 명이 동시에 붕괴 위험이 있는 구조물 위에 오르며 가해진 ‘충격 하중’이 붕괴를 촉발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붕괴 위험 현장에 투입되는 점검 인력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여부도 향후 수사를 통해 규명돼야 할 대목으로 꼽힌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은 이날 성명을 통해 서소문 고가 철거 과정에서 무리한 시공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해당 철거 공사는 당초 오는 7월29일 준공 예정이었으나 야간 및 휴일 작업이 빈번하게 이뤄지는 등 공기(공사 기간)를 앞당기기 위해 무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관계 당국에 건축물관리법에 따른 ‘해체계획서’대로 시공이 이뤄졌는지 조사하라”고 촉구했다.

서소문 고가차도는 지난 1966년 개통한 뒤 2019년 정밀안전진단에서 ‘디(D)’ 등급 판정을 받았다. 이후 구조물 붕괴와 파손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9월부터 철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고는 최근 GTX-A 삼성역 철근 누락 사태와 맞물려 더욱 주목받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수년간 반복돼 온 건설 현장 대형 사고의 연장선이라는 점에서 우려가 깊다.

당장 2025년 울산 화력발전소 해체 공사 현장에서는 작업 순서 미준수 의혹 속에 노동자 7명이 목숨을 잃었고, 같은 해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도 교각 상판이 떨어져 4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 이 외에도 ▲광주 대표도서관 신축 공사 붕괴(4명 사망) ▲경기 시흥 월곶동 교량 상판 붕괴(7명 부상) ▲분당 정자교 보행로 붕괴 등 인명 피해가 줄을 이었다.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사고의 기저에 우리 사회 전반에 깔린 ‘사후 대응 중심’의 안전관리 체계가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위험 신호가 임계치에 도달해 실제로 무너지기 전까지는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현장의 낡은 관행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현장에서 단차나 균열 등 이상징후가 발견되더라도, 공기 지연이 곧 막대한 비용 손실로 직결되다 보니 작업을 완전히 멈추기보다 ‘일단 빨리 확인하고 넘어가자’는 식의 압박이 알게 모르게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류상으로는 작업 중지권이 보장돼있다고 하지만, 공기 준수에 쫓기듯 일할 수밖에 없는 건설 하도급 구조와 현장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유사한 비극은 되풀이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붕괴 사고의 여파는 도심 교통 마비로도 이어졌다. 무너진 고가가 아래 철로 부근을 덮치면서, 코레일은 복구 및 안전 점검을 위해 서울~행신역 구간 KTX를 비롯해 무궁화호, 전동열차 등 120여개 열차의 운행을 중지하거나 경로를 변경했다.

경부선 KTX는 서울~부산역, 호남선은 용산~목포·여수엑스포역, 강릉·중앙선은 청량리역 기준으로 각각 축소 제한 운행됐다. 일반 열차와 ITX 열차 운행도 일부 조정되면서 밤사이 통보를 받은 승객들의 불편과 항의가 빗발쳤다.

대형 복합 재난으로 사태가 확산하자 정부와 수사당국은 전방위 대응에 나서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해 검경은 대규모 전담 인력을 투입했다. 앞서 검찰이 별도의 전담수사팀을 꾸린 데 이어, 서울경찰청 역시 총경급인 광역수사대장을 팀장으로 중대재해수사계, 과학수사팀 등 50여명 규모의 전담수사팀을 즉각 구성했다.

경찰은 27일 오전 12시부터 오전 4시까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및 산업안전보건공단 등 관계기관과 함께 심야 합동 정밀감식을 완료했다.

경찰이 주목하는 핵심 수사 쟁점은 ▲철거 절차가 규정대로 안전하게 이행됐는지 ▲단차 등 붕괴 징후를 사전에 인지하고도 공기 단축을 위해 철거를 강행했는지 ▲현장 책임자 및 관계자들이 사고 예방 의무를 다했는지 등이다.

특히 경찰은 시공업체와 서울시의 안전 매뉴얼 준수 여부를 철저히 따지는 한편, 피해 규모와 현장 근로자 수(50인 이상 사업장 요건)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도 적극적으로 들여다볼 계획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사고 보고를 받고 “사고 수습과 부상자 치료에 만전을 기하고, 사고 원인을 엄정히 조사해 재발 방지 대책을 철저히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jungwon933@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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